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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사, 목릉성세의 풍요와 화미 - 7. 난중의 명가(임숙영)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목릉성세의 풍요와 화미 - 7. 난중의 명가(임숙영)

건방진방랑자 2021. 12. 21.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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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숙영(任叔英, 1576 선조9~1623 인조1, 茂叔, 疎庵)은 광해군의 난정과 척신(戚臣)들의 무도함을 논박하다 유배의 어려움을 겪는 등 직절청명(直節淸名)으로 이름을 남긴 문신이다. 소암은 특히 대책문(對策文)에 능했는데 그의 변려문(騈儷文)은 육조(六朝)의 서릉(徐陵)과 유신(庾信), 초당사걸(初唐四傑)인 왕발(王勃)ㆍ양형(楊炯)ㆍ노조린(盧照隣)ㆍ낙빙왕(駱賓王)의 체제를 본받아 정두경(鄭斗卿)의 가행체(歌行體)와 병칭될 정도로 알려져 있다.

 

임숙영(任叔英)은 시()보다는 문()에 능했지만 특히 시에 있어서는 굉편거제(宏編巨製)의 장편에 보였다. 오언배율(五言排律) 술회(述懷), 칠언배율(七言排律) 관창(觀漲)삼수(三首)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원제(原題)술회기정강화이동악안눌사군칠백십육운(述懷寄呈江華李東岳安訥使君七百十六韻)술회(述懷)는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에게 부친 오언배율(五言排律) 716()의 장편시로 우리나라의 역사, 동악의 덕행에 대한 찬사와 자신과의 교우관계 및 인생관을 함께 말한 작품이다. 두보(杜甫)의 시(), 이규보(李奎報)의 삼백시(三百詩) 등의 장편시는 예로부터 있어왔지만, 소암처럼 칠백운(七百韻)이나 되는 장편을 창작한 것은 그 유례가 없었다. 그래서 김득신(金得臣)종남총지(終南叢志)16에서 이 시를 광박기벽(廣博奇僻)하여 진실로 천재걸작(千載杰作)이라고 고평하였다.

 

 

다음의 조행(早行)임숙영(任叔英)의 강개지정(慷慨之情)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客子就行路 早乘西北風 나그네 길 떠남에 새벽에 서북풍 맞으며 간다.
鷄聲月落後 水氣曉寒中 달 진 뒤 첫 닭이 울고 새벽 추위에 물기운 인다.
孤店鳴雙杵 空林語百蟲 외로운 주막에 쌍다듬이 울고 빈 숲에 온갖 벌레 울어댄다.
自憐千里外 長作一飛蓬 가련쿠나, 천 리 밖에서 오래도록 떠돌이 신세 된 것이!!

 

임숙영(任叔英)은 권세에 아부하지 않고 광해군(光海君)의 난정(亂政)에 직언을 서슴지 않아 절의지사(節義之士)로 명망이 있었다. 인목대비(仁穆大妃) 폐위 문제로 초야(朝野)의 의론이 분분할 때 임숙영은 폐비론의 부당함을 간언하다가 폄출(貶黜) 당하여 외방을 전전하다 광주(廣州)에 은거하였다.

 

위의 시는 바로 이 때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암울한 현실에의 울분과 여수(旅愁)를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고점(孤店)’공림(空林)’ 등은 자신의 비절(悲切)한 처지를 신외(身外)의 물을 통하여 강하게 드러내는 데 매우 적절하게 선택된 것이다. 수련(首聯)과 함련(頷聯)은 제명(題名) 그대로 새벽에 길을 떠나는 나그네의 움직이는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경련(頸聯)과 미련(尾聯)에 이르러서는 적막한 나그네의 처지를 진솔하게 그려내는, 정적(靜的)인 구성의 묘를 얻고 있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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