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규(李南珪, 1855 철종6~1907 융희1, 자 元八, 호 修堂)는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ㆍ석루(石樓) 이경전(李慶全)의 예손(裔孫)이다. 북인(北人)의 중심세력에서 일탈하여 남인(南人)으로 색목(色目)을 옮기는 동안, 그 가문은 지배벌열(支配閥閱)에서 소외되었으며, 그 뒤로 그들은 문장(文章)과 풍절(風節)을 닦는 사대부의 수업으로 일관해 왔다.
이러한 가학(家學)의 전통에 의해 체질화된 수당(修堂)의 사대부적 사고는 격동하는 구한말의 정치적 와중에서도 불굴의 주체적 의지를 다지는 데 큰 힘이 되었다. 28세가 되던 해, 즉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나던 해에 문과에 올라 갑오(甲午)ㆍ을미(乙未)의 격동 속에서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ㆍ동부승지(同副承旨)ㆍ영흥부사(永興府使)의 벼슬을 거치기는 하였지만 갑오(甲午)ㆍ을미(乙未) 연간에 있었던 왜병의 범궐사건(犯闕事件)에 대해서는 준엄한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이렇듯 비타협적인 체질 때문에 당시의 개화세력에게 미움을 받아 마침내는 그의 아들과 함께 왜병의 칼날 아래 유린당했다.
이처럼 관인으로서의 수당(修堂)은 현달(顯達)하지 못하였지만, 타고난 문장의 솜씨는 그로 하여금 일세의 문장가로 이름을 드날리게 했다. 시보다는 특히 고문(古文)에 뛰어난 솜씨를 보여 영재(寧齋)와 더불어 당대의 명문장가로 이름을 나란히 한 사실에 대해서는 창강(滄江)의 「독이승지소(讀李承旨疏)」 3수 중에서 보인 「전어마산이시랑(傳語摩山李侍郞)」에 그 사정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소차(疏箚)에서 문명(文名)을 얻고 있는 그의 문장 솜씨는 「척동서사학소(斥東西邪學疏)」를 비롯하여 「논비요급왜병입도소(論匪擾及倭兵入都疏)」, 「청절왜소(請絶倭疏)」, 「청부왕후위호토적복수소(請復王后位號討賊復讐疏)」와 「기삼비사(記三婢事)」와 같은 명문(名文)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밖에도 탁월한 그의 시국관은 「영흥잡영(永興雜詠)」과 「한서문답(寒棲問答)」 등의 시작(詩作)에 그 진면목이 두드러지게 부각되어 있다. 또한 비운(悲運)의 역사적 사건인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을 되새기며 쓴 「삼전도탄(三田渡嘆)」에서는 그의 역사인식을 살펴볼 수 있으며, 이충무공(李忠武公)을 기리며 쓴 「과이충무공순신묘(過李忠武公舜臣墓)」는 날로 더해가는 일제의 만행을 통분해 하는 시인의 고뇌를 보여 준다.
『대동시선(大東詩選)』에 「박충민서원견허비영흥(朴忠愍書院遣墟碑永興」(五絶), 「문영관신명유음(聞瀛館新命有吟)」(七律), 「증손침랑(贈孫寢郞)」(七律) 등이 선발되어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는 「삼전도탄(三田渡嘆)」을 보기로 한다.
昔時三田渡 有碑屹如植 | 그 옛날 삼전도에는 비석이 심은 듯 높이 솟았었지. |
今日三田渡 有碑沙中踣 | 오늘날 삼전도에는 비석이 모래 속에 묻혀있네.. |
踣豈非更快 所嗟由人逼 | 비석 묻힌 것은 통쾌하지만은 한스러운 것은 사람들에게 핍박받는 것이라네. |
舊恨新憤難洗盡 | 옛날의 한과 오늘의 분함은 씻기 어렵지만 |
江流日夜無終極 | 밤낮으로 강물은 쉬임없이 흐르네. |
願言執殳爲前駈 | 원하는 바는, 몽둥이 잡고 선구가 되어 |
北踏燕雲東日域 | 북으로 연운과 남으로 일본을 짓밟고 싶다.. |
歸來斲得丈餘珉 | 돌아와 한 길 남짓의 옥돌을 깍아 |
銘我萬年君王德 | 만년토록 우리 군왕의 덕을 새길 것이네. |
오칠언(五七言) 고체(古體) 형식으로 구성되고 있으며, 특히 이러한 우국시는 작품의 예술성보다 지사적(志士的) 회한이 앞서고 있으므로 시작(詩作)으로서의 수준을 평가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다만, 청 태종이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조선을 침략하고 항복의 징표로 세운 치욕스런 삼전도비를 모래 속에 묻어버린 일을 통쾌하게 여기면서도 지금 일본의 침탈로 백성들이 핍박받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청의 침입과 일본의 침탈로 인한 구한(舊恨)과 신분(新憤)모두 다 씻어 버릴 수야 없지만 남정북벌(南征北伐)하여 군덕과 국위를 떨쳤으면 하는 소망을 피력하여 국치를 설욕하고자 하는 심사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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