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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 고려시대 고문의식 본문

한문놀이터/논문

논문 - 고려시대 고문의식

건방진방랑자 2019. 6. 1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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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高麗)시대 고문의식(古文意識)

 

 

김건곤

 

 

나말여초(羅末麗初): 변려문(騈驪文)만당풍(晩唐風)

1. 문풍(文風): 만당풍(晩唐風)

특징: 고사(故事)와 정치(精緻)한 대구, 성률의 해화(諧和), 극도의 수식과 인위적 표현)

이유: 유미주의적 선집인 문선(文選)의 영향, 도당(渡唐)유학생인 최치원(崔致遠)을 비롯한 인물들이 저물어가는 당에서 배워왔기에.

고려초기에 만당풍이 완고해진 이유: 과거제 실시, 사학(私學) 흥기, 교육제도 완비, 예종인종의 호문 장려

 

 

 

여초(麗初): 변려문(騈驪文) VS 고문(古文)

1. 재도적(載道的) 문학사상(文學思想)의 대두와 변려문(騈驪文)의 비판

최승로시무이십팔조(時務二十八條)’, 최충(崔沖)은 사학으로 유풍 진작에 힘썼으며 예종ㆍ인종 연간에 와서야 변려문 비판 전개.

 

2. 김황원(金黃元)의 고문습작

고문을 배워 해동제일(海東第一)’로 불렸으며 그의 유풍은 김부식(金富軾)에게 전파되었음. 이를 계기로 시도하는 문인이 늘음.

※ 『동문선에 보이는 고려전기 ()’ 분석 결과: 김부철(金富轍) 이후로 고문체 사용이 많아져 허사의 쓰임이 증가함.

 

3. 김부식의 서한풍(西漢風)

특징: 사달(辭達)과 기사(記事) 위주의 사기에 가까운 문체인 고문체(古文體)

② 『삼국사기열전은 훌륭한 서사문학이고, 표문(表文)에까지 고문체를 써서 허사 사용이 많고 변려체 요소가 적음.

 

 

 

여중(麗中): 고문의식 성장

1. 임춘(林椿)의 고문의식

변려문을 배우지설(俳優之說)로 보고 서한풍(西漢風)으로 돌이켜야 한다고 했으나 그런 진보적 사상은 무신란(武臣亂)으로 실천되지 못함.

 

2. 무신란(武臣亂) 시기 소식(蘇軾)의 열풍이 불었음에도 고문의 대가가 없었던 이유

()보다 시()를 중시하는 풍조.

무신란으로 경학(經學) 진작 풍조가 끊김

과거제(科擧制)로 인해

 

3. 이인로(李仁老)

천부론(天賦論), 용사론(用事論)을 통해 고문에 능했다고 볼 순 없음.

 

4. 이규보(李奎報)

자기의 생각과 말(新語)로 문장을 쓰고자 했으며 그들의 문장만을 배우고자 함.

 

5. 최자(崔滋)

① 『보한집도처에서 사륙변려문의 근원과 발달과정 및 폐단을 상세히 기술함.

 

 

 

여말(麗末): 고문창도와 영향

1. 이제현(李齊賢)의 고문창작

정주학(程朱學)의 전래로 사상적 면모를 갖춰 경전에 충분한 문장을 쓰고자 함.

문장관: 독창성을 지닐 것, 번거로운 문장이 아닌 간결한 문장, 해당 분야에 깊은 조예가 있을 것, 사실적인 문장.

 

2. 고문 창도(唱導)의 공과 그 영향

문체 계승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정주학을 심화시키고 문이재도(文以載道)로 나감.

 

3. 이색(李穡)의 고문과 도학(道學) 창도

서한(西漢) 고문을 최고로 인정하고, 성리학을 통한 문풍쇄신에 기여함.

조선 초기 문학의 단초(端初)를 여는 역할을 함.

 

  문풍 사상 인물
羅末 晩唐風騈驪 風流(三道) 최치원
麗初 館儒佛心 김부식
麗中 古文(秦漢) 經學 이규보
麗末 古文(唐宋) 程朱學 이제현ㆍ이색

 

 

 

 

인용

목차

고문 / 한국사 / 한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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