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高麗)시대 고문의식(古文意識)
김건곤
나말여초(羅末麗初): 변려문(騈驪文)과 만당풍(晩唐風)
1. 문풍(文風): 만당풍(晩唐風)
① 특징: 고사(故事)와 정치(精緻)한 대구, 성률의 해화(諧和), 극도의 수식과 인위적 표현)
② 이유: 유미주의적 선집인 『문선(文選)』의 영향, 도당(渡唐)유학생인 최치원(崔致遠)을 비롯한 인물들이 저물어가는 당에서 배워왔기에.
③ 고려초기에 만당풍이 완고해진 이유: 과거제 실시, 사학(私學) 흥기, 교육제도 완비, 예종ㆍ인종의 호문 장려
여초(麗初): 변려문(騈驪文) VS 고문(古文)
1. 재도적(載道的) 문학사상(文學思想)의 대두와 변려문(騈驪文)의 비판
① 최승로는 ‘시무이십팔조(時務二十八條)’로, 최충(崔沖)은 사학으로 유풍 진작에 힘썼으며 예종ㆍ인종 연간에 와서야 변려문 비판 전개.
2. 김황원(金黃元)의 고문습작
① 고문을 배워 ‘해동제일(海東第一)’로 불렸으며 그의 유풍은 김부식(金富軾)에게 전파되었음. 이를 계기로 시도하는 문인이 늘음.
※ 『동문선』에 보이는 고려전기 ‘기(記)’ 분석 결과: 김부철(金富轍) 이후로 고문체 사용이 많아져 허사의 쓰임이 증가함.
3. 김부식의 서한풍(西漢風)
① 특징: 사달(辭達)과 기사(記事) 위주의 사기에 가까운 문체인 고문체(古文體)
② 『삼국사기』 열전은 훌륭한 서사문학이고, 표문(表文)에까지 고문체를 써서 허사 사용이 많고 변려체 요소가 적음.
여중(麗中): 고문의식 성장
1. 임춘(林椿)의 고문의식
① 변려문을 배우지설(俳優之說)로 보고 서한풍(西漢風)으로 돌이켜야 한다고 했으나 그런 진보적 사상은 무신란(武臣亂)으로 실천되지 못함.
2. 무신란(武臣亂) 시기 소식(蘇軾)의 열풍이 불었음에도 고문의 대가가 없었던 이유
① 문(文)보다 시(詩)를 중시하는 풍조.
② 무신란으로 경학(經學) 진작 풍조가 끊김
③ 과거제(科擧制)로 인해
3. 이인로(李仁老)
① 천부론(天賦論), 용사론(用事論)을 통해 고문에 능했다고 볼 순 없음.
4. 이규보(李奎報)
① 자기의 생각과 말(新語)로 문장을 쓰고자 했으며 그들의 문장만을 배우고자 함.
5. 최자(崔滋)
① 『보한집』 도처에서 사륙변려문의 근원과 발달과정 및 폐단을 상세히 기술함.
여말(麗末): 고문창도와 영향
1. 이제현(李齊賢)의 고문창작
① 정주학(程朱學)의 전래로 사상적 면모를 갖춰 경전에 충분한 문장을 쓰고자 함.
② 문장관: 독창성을 지닐 것, 번거로운 문장이 아닌 간결한 문장, 해당 분야에 깊은 조예가 있을 것, 사실적인 문장.
2. 고문 창도(唱導)의 공과 그 영향
① 문체 계승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정주학을 심화시키고 문이재도(文以載道)로 나감.
3. 이색(李穡)의 고문과 도학(道學) 창도
① 서한(西漢) 고문을 최고로 인정하고, 성리학을 통한 문풍쇄신에 기여함.
② 조선 초기 문학의 단초(端初)를 여는 역할을 함.
문풍 | 사상 | 인물 | |
羅末 | 晩唐風ㆍ騈驪 | 風流(三道) | 최치원 |
麗初 | 館儒ㆍ佛心 | 김부식 | |
麗中 | 古文(秦漢) | 經學 | 이규보 |
麗末 | 古文(唐宋) | 程朱學 | 이제현ㆍ이색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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