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가위손’을 닮은 천재 소년, 사랑에 빠지다
영화 『가위손』에서는 흥미로운 퀴즈가 등장한다. ‘가위손’ 에드워드(조니 뎁)의 기이한 외모와 천재적 재능에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킴(위노나 라이더)과 가족들. 킴의 아버지는 에드워드의 ‘정상성’을 시험하기 위해 퀴즈를 낸다. “네가 길에서 돈가방을 봤다고 하자. 주위엔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어떻게 하겠니? A. 돈을 갖는다. B. 친구나 사랑하는 이에게 줄 선물을 산다. C. 불쌍한 이들에게 나눠준다. D. 경찰에 신고한다.” 킴의 동생들은 “나라면 그냥 갖겠다”고, 에드워드의 대답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시시덕거린다. 에드워드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킴의 눈빛도 덩달아 흔들린다. 에드워드는 창백한 얼굴에 투명하게 묻어나는 진솔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킴의 눈동자를 뚫어질 듯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에게 주겠어요.” 킴의 아버지는 한심하다는 듯이, “그러고 싶겠지만 그래선 안 돼”라고 타이르고, 아이들은 에드워드를 한껏 놀리며 “바보야, 누구나 경찰에 신고해야 되는 걸 알아”라고 떠들어댄다. 그러나 그 순간 킴은 가위손을 향한 사랑에 빠진다.
에드워드는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만, 자신이 다가가는 모든 존재에게 ‘가위손’이 상처를 입힐까 봐 두려워한다. 가위는 에드워드의 천재적 재능을 실현시키는 도구지만 본의 아니게 킴의 물침대에 구멍을 내고, 킴의 동생을 자동차 사고에서 구해주려다가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 여기저기에 난 그로테스크한 흉터 또한 스스로 낸 상처다. 사랑하는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가는 순간 가위손은 상처를 내고 만다. 그가 사랑하는 자리마다 폐허의 공포가 드리운다. 에드워드는 킴을 안고 싶지만, 킴이 가위에 찔릴까 봐 포기하고 만다. 그러나 킴은 에드워드를 사랑하기 위한 좁은 문을 발견한다. 그의 가위손을 겁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에드워드의 ‘등 뒤’로 다가가 그를 따스하게 안아주는 것이다. 정면의 포옹이 열정적인 욕망이나 달콤한 행복의 표현이라면, 등 뒤의 포옹은 ‘당신의 등 뒤에 내가 있으니, 불안해하지도, 걱정하지도 말라’는 따스한 응원의 메시지를 담는다. 이 아름다운 백 허그(back hug)는 타인의 고통을 분석하거나 해부하지 않고 다만 등 뒤에서 조용히 껴안는, 사랑의 묘약이 된다.
우리의 천재 소년 윌 헌팅도 에드워드를 닮았다. 윌의 내면은 가위손의 얼굴처럼 상처투성이다. 양아버지의 알코올중독과 밤마다 계속되는 린치, 몇 번이나 버려지고 파양되었다는 사실, 세상에 의지할 곳이 없다는 공포는 윌의 치명적인 내상을 더욱 깊게 만든다. 윌은 자신의 상처가 폭로될까 봐 두렵기도 하지만, 자신의 상처가 지닌 기묘한 전염성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마이다스의 손이 닿는 곳마다 딱딱한 황금으로 변해버리듯이, 자신의 손이 닿는 곳마다 폐허로 변해버릴까, 윌은 두렵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면 차라리 사랑하지 않는 길을 택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발랄한 하버드생 스카일라(미니 드라이버)에게 호기심을 느끼지만 좀처럼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스카일라와 ‘데이트’는 하지만 그녀에게 솔직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는 않는 것이다. 하지만 윌은 알고 있다. 스카일라와의 만남은, 지금까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숀과 가까워지는 윌은 스카일라와의 만남도 그에게 털어 놓는다. 호감은 가지만 자신이 먼저 전화하지는 않을 거라고. 이게 다 작업의 기술이라고.
윌: 그 여자 애는 정말 예쁘고 똑똑하고 재밌어요. 그간 사귄 여자들하고는 달라요.
숀: 그럼 전화해, 로미오.
윌: 왜요? 그러다 똑똑치도 않고 재미없는 여자란 것만 알게? 지금 그대로가 완벽하다구요. 이미지 망치기 싫어요.
숀: 반대로 완벽한 네 이미지 망치기 싫어서겠지. 정말 대단한 인생철학이야! 평생 그런 식으로 살면 아무도 진실 되게 사귈 수 없어.
윌: …….
숀: 내 아내는 긴장을 하면 방귀를 뀌곤 했었어. (죽은 아내가 생각나 애틋하지만 우스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여러 가지 앙증맞은 버릇이 많았지만 자면서까지 방귀를 뀌곤 했어. (이때부터 숀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 시작한다) 지저분한 말 해서 미안하군, 큭큭. 어쨌든 어느 날 밤엔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강아지까지 깼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당신이 뀌었수?’ 하길래, 차마 용기가 안나 얼떨결에 ‘응!’ 하고 말았다니까!
윌: (키득거리며) 자기 방귀에 놀라서 깨요?
숀: 아내가 세상 떠난 지 2년이나 됐는데 그런 기억만 생생해. 멋진 추억이지. 그런 사소한 일들이 말야. 제일 그리운 것도 그런 것들이야. 나만이 알고 있는 아내의 그런 사소한 버릇들. 그게 바로 내 아내니까.
윌: (웃음이 잦아들며 갑자기 진지한 표정이다. 자신은 알지 못하는, 소중한 사랑의 추억을 지닌 숀이 부러운 듯 애잔한 표정을 짓는다.)
숀: 반대로 아낸 내 작은 버릇들을 다 알고 있었지. 남들은 그걸 단점으로 보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야. 인간은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이니까. 너도 완벽하진 않아. (……) 그 여자애도 완벽하진 않아. 중요한 건 과연 서로에게 얼마나 완벽한가 하는 거야. (……) 이 세상에 모르는 게 없는 너라도 짝을 찾으려면 노력이 필요해. 내게서 그 방법을 배울 순 없을 거다. 안다 해도 너같이 건방진 녀석에겐 알려주기 싫어.
윌: 왜요? 딴 얘긴 주절주절 다 해줬잖아요. 빌어먹을! 그쪽처럼 말 많은 의사는 처음 본다구요!
숀: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다 아는 건 아냐.
윌은 어느새 숀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신경질도 낸다. 숀은 윌을 분석하거거나 해부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가르칠 수 없는 종류의 지식’이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이론은 빠삭해도’ 실천할 수 없는 지식, 그것은 사랑의 기술이라는 것을, 몸으로 부딪혀야만 알 수 있으므로. 윌은 아름다운 액자 속에 끼워진 흑백사진처럼 멀리 있어 아름답던 그녀를 가까이서 보고 싶어진다. 처음으로 스카일라가 살고 있는 하버드 기숙사로 찾아가는 윌. 스카일라는 윌이 반갑지만 급한 숙제가 있다며 내일 만나자고 한다. 할 수 없이 돌아서는 윌. 그런데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표정. 그는 스카일라의 급한 숙제를 대신 해준다. ‘수재’ 스카일라라면 밤을 새겠지만 ‘천재’ 윌이라면 3분 만에 후딱 풀 수 있는 그 숙제를. 그리고는 말한다. “내일까지 못 기다리겠어.”
첫 번째 발걸음을 떼기가 우주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한 번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처음 마음을 열기가 어려웠지만 한 번 마음을 열자 봇물 터지듯 열정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이제 해석하고 계산하고 짐작하고 미리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먼저 전화하고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하고 먼저 사랑하고 싶다. 그러나 ‘관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과거만 연관되면 자신도 모르게 천연덕스레 거짓말을 한다. 스카일라가 ‘형제가 몇 명이냐’고 묻자 윌은 불에 덴 듯 뜨끔한 표정으로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다. 형만 열 두 명이라고. 신에 맹세코 정말이라고. 행운의 13번째이니까 자신은 행운아라고. 아직은 쉽지 않다. 그러나 윌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닫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윌은 처음으로 여인의 품에서 쾌락과는 다른 종류의 불가해한 따뜻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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