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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색 & 계와 롤랑 바르트[풍크툼, 세계와 나는 ‘상처의 틈새’로만 만난다] - 2. 탐색전: 무대 위의 연극 vs 무대 뒤편의 침묵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색 & 계와 롤랑 바르트[풍크툼, 세계와 나는 ‘상처의 틈새’로만 만난다] - 2. 탐색전: 무대 위의 연극 vs 무대 뒤편의 침묵

건방진방랑자 2021. 7. 2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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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탐색전: 무대 위의 연극 vs 무대 뒤편의 침묵

 

 

섹스 자체가 삶의 욕망과 분노와 슬픔, 그 모든 것의 알레고리인 영화는 수없이 많았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감각의 제국, 그녀에게등등 수많은 영화에서 섹스는 단지 몸과 몸의 얽힘이 아니라 삶과 삶의 뒤얽힘이었고 인간의 근원적 소통불가능성의 뼈아픈 확인이었다. 그러나 & 에서 그들의 섹스의 이미지가 유독 슬프고 힘겹게 느껴지는 까닭은 아마도 장 지아즈, 즉 막 부인(탕웨이)의 캐릭터 탓인 것 같다. 그녀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여주인공 마리아 슈나이더처럼 발랄하고 앙큼하면서도 본질적으로 쾌활한 캐릭터가 아니다. 또한 감각의 제국의 여주인공 마츠다 에이코처럼 나른하게 몽환적이면서도 의외로 강인한 캐릭터도 아니다. 장 지아즈는 그녀에게의 투우사 리디아처럼 팜므파탈적인 매력을 뿜어내지도, 아름다운 무용수 알리샤처럼 생기발랄하고 투명한 캐릭터도 아니다. 그런데 & 의 탕웨이는 그 모든 기념비적인 캐릭터들보다도 확실하게 관객을 압도적인 슬픔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왜 그럴까.

 

 

 

 

그녀는 이 모든 여인들보다 너무 느리고,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예민하다. 그녀는 한 가지 행동을 결정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신중하다 못해 조금은 답답한 여인이다. 그래서 그녀는 누구와도 함부로 사랑에 빠지지 못한다. 그녀를 연극의 세계로 이끌었던 광위민에게 잠깐 호감을 느꼈지만, 열혈남아 광위민은 아직 여인보다 신념을 사랑하는 순수 청년이었다. & 2시간 40분 동안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지루한 것인지 긴장감 넘치는 것인지 자꾸만 헷갈리게 만드는 이유는, 남녀주인공 모두가 돌다리도 수백 번 두들겨보고 끝내는 건너지도 않을 것 같은 극도로 예민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 만난 순간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면서도 한사코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항시적으로 암살 위험에 처해 있는 매국노(선생: 양조위)와 그를 암살하기 위해 그의 불륜녀라는 배역을 맡은 여자가 만났다.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경계심 많은 남자와 세상에서 가장 예민한 여자가 만난 셈이다.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핑계 삼아 흐느끼는 여자와 영화를 보고 싶어도 어두운 곳이 무섭고 싫어 영화관에 갈 수 없는 남자가 만났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서로의 임무를 수행하는 그들의 침대에서는, 그들의 내면에서는, 어떤 감정의 해일이 몰아치게 될까.

 

1942년 상하이. 막 부인(탕웨이)은 한껏 긴장된 몸짓으로 전화를 건다. 일상적인 대화를 가장한 암호임이 분명한 대화를 주고받은 그녀는 까페에 앉아 과거를 회상한다. 4년 전, 그녀는 홍콩의 대학생이었다. 2차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영국으로 떠나버린 아버지를 기다리는 왕 치아즈. 그녀의 본명이다. 그녀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아버지는 재혼했다는 소식만을 달랑 보내오고, 그녀는 아버지에게 심심한 축하 편지를 쓴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심상하게 축하 편지를 쓰지만, 그녀는 어두운 영화관에서 마치 슬픈 영화 탓인 양, 숨죽여 흐느낀다. 그녀는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철저하게 고독하다.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마저 재혼한 후, 그녀의 고독을 어루만져준 것은 연극이었다.

 

 

 

 

그녀는 항일 급진파 청년 광위민의 권유로 연극반에 가입한다. 입센의 인형의 집부르주아 연극이라 몰아붙이고 항일운동의 기치를 높이 들어 올리는 연극으로 나태한 홍콩의 인민들을 각성시켜야 한다고 부르짖는 이 청년에게, 왕 치아즈는 순수한 매력을 느낀다. 그녀는 자신이 여주인공으로 데뷔한 연극에서, 지금까지는 느껴보지 못했던 강렬한 희열을 느낀다. 무대 위에서, 그녀는 더 이상 나약하고 내성적인 소녀가 아닌 자신을 발견한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며 환호하는 그 열광적인 분위기에 사로잡혀, 왕 치아즈는 연극하는 자아를 향한 나르시시즘적 사랑에 빠지게 된다.

 

 

 

 

광위민은 급진파 항일단체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친일파 핵심인물인 이() 선생(양조위)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광위민의 친구들과 왕 치아즈는 그 계획에 합류한다. 광위민은 말한다. “이번엔 연극이 아니야.” 그러나 이 말은 반어적으로 들린다. 이 선생을 암살하기 위해 그들은 신분을 위장하여 이 선생의 주변으로 침투해야 한다. 이제 그들은 더욱 판돈이 커진 또 하나의 거대한 연극적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여배우 탕웨이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녀는 현실이 아니라 연극 안에서 오히려 편안해 보인다. 탕웨이는 장 치아즈이기보다 맥 부인일 때 오히려 생기발랄하고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녀는 차라리 조작된 연극 속에서 암살 대상과 유일하게 친밀한 인간적 관계를 맺고 있으며 연극 밖에서는 한없이 외롭고 불안한 존재로 전락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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