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메이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순수
1921년 여성 작가 최초로 퓰리쳐상을 수상했던 이디스 워튼의 소설 『순수의 시대』. 이 작품은 흑인뿐 아니라 모든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인종주의가 클라이맥스에 달했던 19세기 말을 배경으로 한다. 황인종의 이민이 홍수를 이루자 미국인들은 이것을 ‘황색 위협(Yellow Peril)’이라 선포한다. 1882년에는 중국인의 이민을 합법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남부 유럽인들도 ‘반몽고인’이기 때문에 중국인과 똑같은 법을 적용해 이민을 금지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이 제기될 정도였다.
백인들은 황인종의 카테고리에 중국인은 물론 일본인, 피부색이 옅은 흑인, 유태인, 폴란드 인, 헝가리 인, 이탈리아 인, 아일랜드 인까지 포괄하여 ‘다인종사회의 위협’을 가시화했다.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우던 극우 비밀결사 KKK가 활개를 치던 시대가 바로 이때였다. 미국 앵글로색슨족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백인의 피가 외국인의 피와 섞여 ‘저열한 잡종(!)’을 생산해내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혼혈아란 ‘무정형적이며 형태가 없는 흐릿한 것’으로 규정되었다. 앵글로색슨의 피는 ‘친절하고 섬세한 피’라는 둥, 스페인 계·멕시코 계·포르투갈계의 피는 ‘야만적이고 타락한 피’라는 둥, 그 잔혹한 배제와 추방의 수사학은 실로 기상천외하기 이를 데 없었다(이 작품이 그리는 인종주의적 편견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에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허정애, '인종주의 우화로서의 『순수의 시대』', [영미어문학] 56호, 1999년, 65~84쪽).
『순수의 시대』는 ‘우리’라 불릴 수 있는 내집단(in-gruop)의 순수성을 위협하는 타자에 대한 은밀한 배제와 노골적인 혐오감을 그린 우화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앵글로색슨 상류층의 이익을 대표하는 상징적 마스코트가 바로 메이 웰렌드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관능적이며 예술을 사랑하고 독창적이며 반사회적인 엘렌과는 달리, 메이는 “경험이나 융통성, 판단의 자유 등을 갖지 못하도록 세심하게 훈련된” 양가집 규수다. 메이는 남과 다르게 보이는 것을 천연두에나 걸리는 것처럼 두려워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메이의 순수는 곧 ‘다인종 시대의 다양성’을 거부하는 백인 상류층의 공포와 불안을 상징한다. 메이가 보기에 엘렌이 불행해진 이유는 그녀가 ‘외국인’과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보기에 엘렌의 결혼은 가문의 혈통적 순수를 위협하는 ‘잡혼(雜婚)’이었던 것이다.
영화 『순수의 시대』는 ‘메이의 순수’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뉴랜드와 엘렌의 아슬아슬한 시소게임으로 점철된다. 그들은 처음에는 메이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사랑의 암호를 주고 받는다. 그러나 엘렌은 뉴랜드처럼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지 않는다. 뉴랜드가 엘렌에게 사랑을 고백하자마자 엘렌은 말한다.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면 당신을 사랑할 수 없어요.” 뉴랜드는 처음에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엘렌의 모순적 어법에 스민, 치유 불가능한 슬픔의 메시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엘렌이 뉴랜드의 첫 키스를 받아들이자마자 메이에게서 급작스런 편지가 도착한다. “드디어 결혼을 승낙받았어. 꼭 한 달 후야. 아처에게도 전보를 칠 거야. 말할 수 없이 행복해. 사촌 메이 보냄.”
뉴랜드의 사랑은 엘렌의 인내나 메이의 의지만큼 강하지 못했다. 그는 며칠 전에 메이에게 ‘빨리 결혼을 앞당기자’고 졸랐다가, 오늘은 엘렌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오늘 날아온 전보의 내용에 따라 다시 메이와 결혼을 수락하는 어처구니없는 우유부단함을 보인다. 그는 엘렌과 결혼함으로써 가문의 영광을 훼손할 용기도 없었고, 메이와 결혼하여 엘렌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접을 정도로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메이는 뉴랜드에게 뭔가 석연치 않은 감정의 변화가 있음을 직감하고 결혼을 앞당긴 것이다. 메이와 뉴랜드는 드디어 결혼한다. 엘렌은 마치 모든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초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여행을 떠나며 결혼선물을 남긴다. “아처는 전통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이 결혼을 받아들였다. 자기가 구속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아내를 애써 해방시킬 필요가 없었다.”
메이의 순수는 자신이 속해 있는 혈통과 취향의 커뮤니티 내에서는 한없이 친절하지만(그녀는 뉴욕 사교계 내에서는 최고의 현모양처다), 그 커뮤니티의 질서를 조금이라도 교란시키는 존재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잔인하다. 말하자면 메이는 부리는 하녀에게 헌옷을 던져줄 수는 있지만 그녀와 친구가 될 수는 없으며, 우연히 마주친 거지에게 적선을 베풀 수는 있어도 거지와 말을 섞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준수되는 게임의 법칙에 어긋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메이에게 엘렌은 그녀의 커뮤니티, 특히 미래의 가정을 위협하는 존재였고, 밍고트 가문의 순수를 더럽힐지도 모르는 위험한 존재였다. 그녀는 이제 대놓고 엘렌의 ‘행실’을 문제삼기 시작한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메이는 남편에게 엘렌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다.
“엘렌은 뉴욕과 집은 내팽개쳐두고 이상한 사람들이랑 어울려 다닌대요. 엘렌이 말도 안 되는 사람이랑 결혼이라도 해버릴까 봐 미도라 이모가 엘렌을 지키고 있다지 뭐예요. 무엇보다도 엘렌은 왜 남편과 잘 지내지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뉴랜드는 전에 없이 준엄하고 가혹하게 느껴지는 메이의 태도에 경악한다.
“당신이 잔인한 사람인 줄은 몰랐어.”
“잔인하다고요?”
“악마일지라도 지옥에 있는 사람이 행복할 거라고 말하진 않아.”
메이는 그 투명한 순수로 넘실거리는 눈동자를 굴리며 차분하게 대꾸한다.
“그러게 외국으로 시집가지 말았어야죠.”
메이의 눈에 비친 엘렌은 ‘외국에 시집간 중뿔난 사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디스 워튼, 송은주 역, 『순수의 시대』, 민음사, 2008
메이의 순수는 취향의 공동체 내부의 위생상태를 순도 99.99%로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타자’라는 오염물질을 여과시킴으로써 유지되는 순수다. 메이는 신혼여행 기간 동안 유럽에 있을 때 유럽 귀족들도 놀랄만한 화려한 의상을 입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난 유럽인들이 우리를 보고 야만인들처럼 옷을 입는다고 여기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 그녀가 말하는 야만인은 정확히 미국의 원주민 인디언이었다. 인디언은 야만인이고 자신은 문명인이라는 식의 태도는 명백히 인종주의적이었으며 이러한 태도는 ‘뉴욕 사교계의 순수성’을 대변하는 메이의 의식구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작가 이디스 워튼은 메이의 이러한 태도를 비판한다. 그것은 “포카혼타스가 격분할지도 모르는 경멸적인 태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