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순전한 무사유
존경받을 만한 사회 전체가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히틀러에게 굴복했기 때문에 사회적 행위를 결정할 도덕적 준칙들과 양심을 인도할 종교적 계명들(“살인하지 말라”)은 사실상 소멸해버렸다. 옳고 그름을 여전히 구별할 수 있었던 그 소수의 사람들은 실로 그들 자신의 판단들을 따라서만 나아갔고, 그래서 그들은 아주 자유롭게 행했다.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개별 사건들을 적용할 수 있는, 그들이 지켜야할 규칙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각의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왜냐하면 선례가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규칙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한나 아렌트, 김선옥 옮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2006, 400쪽.
유대인 학살의 핵심 책임자 아이히만이 체포된 후 예루살렘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밪자, 한나 아렌트는 모든 일을 중단하고 예루살렘에 체류하며 이 엄청난 ‘세기의 재판’에 대한 보고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집필한다. 이 책의 부제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다. 끔찍한 대량학살과 참혹한 전쟁, 이 모든 것이 과연 히틀러 한 사람만의 책임일까. 한나 아렌트는 뚜렷한 목적을 지닌 거대한 악행만큼이나 소름 끼치는 인간 본성 중 하나로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를 들었다. 무사유, 그것은 어리석음이나 사악함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인간성 내부에 존재하는 극악무도함을 초래한다. 어쩌면 ‘비범한 한 사람’의 엄청난 악행보다 무서운 것은 ‘주어진 의무로서의 악행’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성실하게 자행하는 대다수의 평범한 인간들의 ‘무사유’가 아닐까.
『타인의 삶』의 주인공 비즐러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닮았다. 그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만 바라보았을 때 관객들은 그에게서 특별히 사악한 본성을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그는 답답할 만큼 성실하고 우직하며 책임감 있는 인간이다. 이런 사람은 그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에 따라 그 운명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자신 앞에 주어지는 어떤 미션도 훌륭하게 완수할 수 있는 유능함, 그것이야말로 그의 최대 장점이면서도 동시에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다. 그는 드라이만 부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는 ‘임무’를 지나치게 성실하게 완수한 나머지, 자신의 ‘한계’ 그 이상의 영역을 침범하고 만다.
헴프 장관과 매주 목요일마다 밀회를 나누는 크리스타. 크리스타는 최고의 여배우로서의 사회적 위치를 잃지 않기 위해, 원치 않는 관계까지도 불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남편 드라이만을 깊이 사랑하는 그녀는 자신의 육체를 갈망하는 헴프의 탐욕 앞에서 매번 괴로워한다. 크리스타의 부부생활 뿐 아니라 혼외정사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어버린 비즐러는 비로소 ‘타인의 삶’을 엿보는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는 자신이 더없이 사랑하고 아끼는 대상이 눈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 비즐러는 질투와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복잡한 심정으로 그녀의 은밀한 사생활이 차라리 드라이든에게 노출되어버리기를 바라게 된다.
비즐러는 마침내 ‘선’을 넘는다. 타인의 정보를 착취하되 타인의 삶을 바꿔서는 안 된다는 작업의 불문율이 깨져버린다. 그는 ‘지나치게’ 크리스타를 동경했고, ‘지나치게’ 드라이든을 질투한 것이다. 그는 도청장치를 사용해 드라이든의 집에 초인종이 울리게 하고, 마침내 드라이든이 아내 크리스타의 불륜 장면을 목격하도록 만든다. 드라이든은 말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이지만 비즐러의 예상과는 달리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는다. 드라이든의 서늘한 침묵은 비즐러를 당황하게 만든다. 그는 어떤 놀라운 ‘사건’이 자신의 ‘헤드폰’을 통해 들리기를 바라지만, 드라이든의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속마음은 어떤 최첨단 도청장치로도 전해지지 않는다.
아이히만은 이아고도 멕베스도 아니었고, 또한 리처드 3세처럼 ‘악인임을 입증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그의 마음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떠한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 이 문제를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 원칙적으로 그는 이 모든 일의 의미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고, (……)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한나 아렌트, 김선옥 옮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2006, 391쪽.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