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전환기 시대의 자유로운 영혼
이 시는 17세기 동북아의 전환기적 상황에서 한 파란의 인생역정을 장편으로 엮은 내용이다. 시인이 작중 서술자로서 주인공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형식인데,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곧 시의 현재다. 따라서 주인공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작품의 중심부를 이루는데, 앞에 서장이 붙고 뒤에 시인의 말로 마무리 지었다.
주인공은 지금 95세의 늙은 중이다. 첫 구절에서 대뜸 “이화암 옛 절에 스님 한분/아흔다섯 나이에도 눈에 정기가 번쩍[梨花古庵一老釋 九十五歲猶矍鑠]”이라 하여 그 인물에 관심을 비상히 끌도록 하는데, 게다가 “부처님 앞에 향불도 피우는 법 없이 나무아미타불 외우지도 않고[不念菩薩不燒香]”라고 하여 더욱 기묘한 느낌을 준다. “이상도 하지요, 우리 스님의 행적[異哉此僧平生跡]”이라는 구절로 주인공의 성향을 요약하고 있다. 거기서도 ‘다를 이(異)’ 한 글자는 전체의 눈동자요, 이 한 글자가 전편을 끌어간 것이다.
천안 고을의 아전으로 태어나 병자호란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여진족ㆍ몽고족 사이에서 용맹을 날리더니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이윽고 출가해서 외롭게 떠돌다가 지금은 이화암에 머물고 있는 낙백한 늙은이. 이 노인을 보고 시인은 “조물주 이 스님에 대해 너무도 희롱이 짓궂었구나[造物於師偏戲劇]”라고 탄식하였다.
17세기 동북아의 역사는 우리의 주관적 염원과 관계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작중 노인의 형상은 이 전환시대에 처한 삶의 한 전형, 당시 역사의 구체적 투영인 것이다. 그의 인생역정은 방향성을 명확히 찾지 못했거니와, 결국 고독하고 영락한 신세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푸른 눈동자 광채를 쏘는 듯[碧眼閃睒光如射]” 기백이 상기 무섭게 살아 있다. 시를 끝맺는 구절에서 “스님이여 스님이여! 지금은 어디 계시오? / 차가운 하늘 눈여겨 바라보니 한마리 새 솟구쳐 날아오르네[師乎師乎今安在 注目寒空飛鳥驀]”라고 자유를 지향하는 불굴의 영혼을 느끼게 한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2020년, 113쪽
인용
3. 군대에서 인정받으며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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