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왕필주가 달린 노자도덕경을 저본으로 삼다
왕필이 『노자(老子)』를 주석했다 하는 것은, 요새 우리가 고전을 주해하는 책을 쓰는 것과는 좀 개념이 다르다. 우리는 기존의 텍스트가 대부분 이미 정본화(正本化)되어 있기 때문에 그 텍스트를 전제로 해서 주해를 단다. 그러나 왕필이 『노자(老子)』나 『주역(周易)』을 주해했다 하는 것은, 그때까지 내려오던 다양한 전승의 텍스트 그 자체를, 자기의 주석적 견해의 일관성의 틀 속에서 정비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포함한다.
왕필은 물론 이러한 작업을 텍스트의 ‘왜곡’이라고 생각치 않았다. 왕필의 손에서 일어난 텍스트의 변형 내지 왜곡에 관하여 나는 매우 새로운 견해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견해들을 여기 피력할 생각은 없다. 그 또한 너무도 충격적이고 너무도 전문적인 논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가 현재 『노자도덕경』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단 왕필이라는 어린, 그렇지만 만고의 걸출한 사상가의 손에서 변형된 텍스트이며, 대강 우리의 『노자도덕경』의 이해의 틀도 왕필의 현학적(玄學的)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대전제를 확실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기 피력하는 것으로 우리의 논의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왕본(王本)의 가치는 근 두 밀레니엄 동안 인류의 『노자』 이해의 다양한 틀을 형성해온 것이며, 어떠한 타 판본의 재해석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인 가치가 인정된다는 것을 밝혀둔다. 그리고 왕본(王本)의 텍스트는 백서(帛書)나 간본(簡本)과는 다른 또 하나의 전승(傳承)의 소산일 가능성이 높다. 왕본(王本) 텍스트의 독립적 가치는 마치 산스크리트 원본의 『바즈라 째디까 수뜨라((Vajra-Prajna-Paramita-Sutra)』가 엄존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금강경(金剛經)』하면, 구마라십(꾸마라지바, 鳩摩羅什)의 한역본(漢譯本) 텍스트가 더 총체적인 금강의 지혜의 이해의 틀을 형성해온 것과도 같다.
우리의 『노자(老子)』 강해는 바로 이 왕본(王本)의 해석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적인 학도들은 백서(帛書)나 간본(簡本)에서 제기된 많은 문제들을 비교적으로 검토ㆍ파악하는 자세를 잃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나 역시 왕본(王本)을 해석해가는 과정에서 백서(帛書)와 간본(簡本)의 연구성과를 도입할 필요가 있을 때는 그를 충분히 반영하도록 할 것이다. 왕본(王本)에 문제점이 발생할 때, 백서(帛書)나 간본(簡本)의 기준이 더 진실하다고 판명되면 물론 새 자료에 의하여 왕본(王本) 텍스트의 의미를 정확히 형량해야 할 것이며, 왕본(王本) 텍스트의 정정이 요구될 때는 그를 정정하는 것이 당연한 학문적 자세일 것이다.
나의 요번 『노자(老子)』 강해는 1999년까지의 세계적으로 노출된 모든 정보를 종합하는 가장 새로운 『노자(老子)』 강해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사부집요(四部集要) 자부(子部)에 수록된 가장 흔한 청대(淸代)의 화정장씨본(華亭張氏本) 왕필주(王弼注)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을 나의 강해의 저본(底本)으로 삼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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