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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노자와 21세기, 1장 - 사랑한다 말해본 적이 있는가? 본문

고전/노자

노자와 21세기, 1장 - 사랑한다 말해본 적이 있는가?

건방진방랑자 2021. 5.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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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名可名, 非常名
명가명, 비상명.
이름을 이름지우면
그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無名, 天地之始;
무명, 천지지시;
이름이 없는 것을
천지의 처음이라 하고,
有名, 萬物之母
유명, 만물지모.
이름이 있는 것을
만물의 어미라 한다.
故常無欲以觀其妙,
고상무욕이관기묘,
그러므로
늘 욕심이 없으면
그 묘함을 보고,
常有欲以觀其徼,
상유욕이관기교,
늘 욕심이 있으면
그 가장자리만 본다.
此兩者同,
차양자동,
그런데 이 둘은
같은 것이다.
出而異名
출이이명,
사람의 앞으로 나와
이름만 달리했을 뿐이다.
同謂之玄,
동위지현,
그 같은 것을 일컬어
가믈타고 한다.
玄之又玄,
현지우현,
가믈고 또 가믈토다!
衆妙之門
중묘지문
모든 묘함이
이 문에서 나오지 않는가!

 

 

1. 대만대학에서 최소저를 만나다

 

1972년 여름, 나는 드디어 유학의 장도에 올랐다. 내 책상 한 구석에 쑤셔박혀 있는 옛날 여권을 뒤적거려 대북(臺北) 쏭산 비행장, 입경(入境)도장이 1972811일로 찍혀있다. 눈물겨웠던 여권이다. 나의 청춘의 모든 꿈을 간직했던 소책(小冊)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누렇게 바래버린 이 여권 하나를 얻기 그때는 얼마나 피눈물나는 노력을 했어야만 했던가?

 

나의 비행기가 타이뻬이 시내를 누비며 고도를 낮추었을 때 내가 처음 본 이국의 모습은 무언가 우울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구중중한 느낌이 드는데 사방에서 독특한 중국인의 한 내음새가 풍겼다. 하여튼 그렇게 해서 나는 대만대학(臺灣大學)엘 갔고 야자수가 늘어선 시원한 교정의 대로를 걸어 들어갔다. 나의 전학에 대한 열망의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렇게 우울한 남방의 늦여름, 매일 비가 구중중하게 관절염으로 습기라면 질색하던 나의 몸둥아리는 다시 쑤셔 시작할 즈음, 나는 그곳에서 지금 나의 아내, 최소저(崔小姐, 췌이 샤오지에)를 만났다. 중국학생들 사이에서 빠이빠이팡팡더라는 이 붙었던 최소저(崔小姐)는 너무도 발랄하고 하이얗고 아름다운 선배였다. 나보다 유학을 4년이나 먼저 가 있었던 고참 선배였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하게 그렇지만 필연적이었던 것처럼, 그러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이루어졌다. 물론 결혼전의 일이다. 최소저는 나에게 학교 근처의 영화관 하나를 소개했다. 최소저는 대만의 지리와 풍물에 밝았던 선배였고 나는 남방풍토에 아직 익숙치 못한 풋내기였을 뿐이다. 모든 것이 신기했다. 최소저가 길거리 지나가다 파란 과일을 몇 개 사더니 그 자리에서 껍질을 까니, 향기가 진동하고 그 속엔 말캉한 과일이 초록 껍질과는 대조적으로 바알간 색깔을 드러냈다. 우아! 귤이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첫 선을 보였던 푸르고 싱싱한 귤껍질을 벗겨대는 그녀의 손놀림 하나하나가 경이로왔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선 귤 구경을 하기가 힘들었다.

 

 

2. 사랑한다 말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간 곳이 똥난야시위앤(東南亞戱院)’이라는, 대만대학생들이 잘 가는 극장이었다. 그 앞에 즐비하게 널려져 있던 노점상들, 큰 도라무통 같은 데다가 달걀을 잔뜩 집어넣고 찻잎과 간장국물로 바글바글 끓이고 있는 모습들이 참 이색적이었다. 그렇게 비좁은 길들을 헤치고 난생처음 들어가 본 외국극장! 중국의 젊은이들이 가득 찬 객석의 느낌은 옛날 내가 자주 가던 삼선교의 동도극장에 앉아있는 듯한 어지러운 느낌을 주었지만 때마침 보게 된 영화는 내 평생 두고두고 있지 못할 명화였다. 우연히 외국 나간지 며칠도 안 되어 처음 들어가 본 영화, 중국어자막이 밑에 깔리는 것도 매우 이색적이었지만 나는 곧 그 영상 속에 무아지경으로 빨려 들어갔다. 제목은 옥정상적소제금(屋頂上的小提琴)!’ 바로 피들러 온 더 루프(Fiddler on the Roof)’라는 이름의, 러시아 다이애스포라(Diaspora)에서 사는 유대인의 애환 서린 파란만장한 가족사를 그린 작품이었다.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이 이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기억할 것이다. 사실 나는 지금 이 작품의 스토리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20세기 영화사상 그 찬란한 이름이 빠질 수 없는 뮤지칼 명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자봉틀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 뼈빠지게 고생하던 딸 사위! 자봉틀을 사서 손으로 굴리는 그 바퀴가 돌아갈 때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그들이 기억난다. 하나 둘씩 사랑하던 자식들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떠나간다. 어느 장면에선가 막내까지 결혼식을 올리고 난 노부부, 뚱뚱한 부인과 노신사는 환갑이 넘은 자신들의 삶을, 결혼식의 소음이 다 지나간 정적의 공허한 자리에서 문뜩, 번개같이 회고한다. 그리고 그 노신사는 늙은 아내에게 외친다. ‘우리는 왜 저 아이들처럼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해 볼 수 없었는가? 우린 과연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를 단 한 번이라도 말해본 적이 있었던가?’ 부인은 소리 없이 수줍은 눈물을 떨구며 고개를 저민다.

 

나의 희미한 기억 속에도 각인되어 남아있는 인상적이었던 이 장면은 바로 이들의 최초의 사랑의 고백 장면이었던 것이다. 그 많은 자식을 낳아 소리 없이 키우느라, 손바닥 발바닥이 다 닳도록 쉴 새 없이 노동하면서 박해를 받아가면서 살아야 했던 그들, 정말, 정말, 깊게 사랑하고 산 그들이었지만 사랑한다라는 단 한마디의 말을 해볼 여유가 없이 산 그들이었다. ‘우리는 사랑한다 말해 본 적이 있는가?’ 사실 우리 동양인들의 모든 선남자 선여인의 삶은 이렇게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똥난야시위앤(東南亞戱院)’의 어둠과 빛 속에서 서로를 훔쳐보며 다소곳이 얼굴을 붉히었던 소저(小姐)와 도올, 그땐 우린 새악씨였고 총각이었다. 그 최소저(崔小姐)와 도올이 이제 세 아이를 키웠고 막내까지 대학에 보내버리고 난 고적한 신세가 되었다. 우리는 과연 사랑한다 말해본 적이 있는가? 과연 사랑한다 말해야 할까?

 

 

3. 항상 그러함과 불변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라는 동양 제일의 지혜의 책 첫머리는 바로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과도 같이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사랑이 아니다.’

 

여기 늘 그러한[]’이라는 말을 많은 노자(老子)의 번역자들이 영원불변의라는 말로 잘못 해석한다. 첫 장부터 이렇게 노자(老子)를 잘못 해석하면 노자의 지혜는 마치 영원불변의 이데아적인 그 무엇을 추구하는 서양철학이나, 잠정적이고 덧없는 이 세상을 거부하고 천국의 도래를 갈망하는 기독교의 초월주의가 되기가 쉽다. 기독교의 본의가 원래 그런 것이 아니지만 후대의 헬레니즘과의 잘못된 결합으로 결국 서양의 초월주의는 기독교 문명의 상식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노자는 항상 그러함만을 말하지 불변(changelessness)’을 말하지는 않는다. 동양인들에게는 불변이라는 것이 도무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동양인들에게 영원(permanence)’이란 변화의 지속일 뿐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단지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생각이다. 그 생각을 노자는 여기 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도를 도라고 말한다는 것은 곧 시시각각 변하지 않을 수 없는 도를 변하지 않는 우리의 생각 속에 집어넣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속에 집어넣어져 버린 도[可道之道]는 항상 그러한 실제의 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서양인들이 불변의 영원을 추구했다면 동양의 지혜는 변화의 영원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4. 이름이란 실체의 현실이 아닌 그들의 관념일 뿐

 

아까 그 지붕위의 바이올린 속(Fiddler on the Roof)’에 나온 유대인 노부부는 평생을 항상 늘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왔다. 늘 그러한 변화의 모습은 사랑이라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나와 아내가 매일 아이 러브 유, 허니(I love you honey)” 이따위 소리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늘 그러한 감정의 소통의 실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동양인들의 언어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거부감이 우리의 삶의 지혜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여기 어느 회사에 강남의 명문고를 나오고 서울대를 우수하게 나와 입사한, 말을 또박또박 잘하고 모든 것을 명료하게 말로 잘 따지는 사원이 한 명 있고, 시골 고등학교를 나오고 좀 시시한 대학을 나왔지만 과묵하여 여간해서 입을 열지 않고, 어른이 핀잔을 주어도 따지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정확한 판단력을 지닌 사원이 한 명 있다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의 가치관은 과연 누구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줄 것인가? 우리는 어른 앞에서 똑똑한 체 잘 따지는 젊은이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이성 간의 사랑에 있어서도, 입발림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연발하는 남자를 여자는 선호하지 않는다. 부부지간에 아이 러브 유를 연발해야 한다면 그들은 곧 이혼소송법정으로 가야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동양의 지혜는 인간의 언어에 대한 깊은 거부감이 있다. 이것은 언어의 명료함을 거부하는 흐리멍텅함이나 모호함을 선호한다는 뜻이 아니다. 언어의 한계를 자각하지 못하는 자는 언어를 참으로 명료하게 인식할 수 없다함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은 고착화 되어버린 이름이 아닐 때만 항상 그러한 이름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김용옥하면 김용옥이라는 이름으로 김용옥을 인식한다. 김용옥? ! 그 한복 입고 머리 깎은 사람! ! 그 말 시원하게 하는 사람! ! 그 특출난 사람! 김용옥은 양복을 입고 있을 수도 있고 머리가 금방 기를 수도 있다. 시원하게 욕잘하는 것이 아니라 공손하기 그지없고 남 칭찬만 잘 할 수도 있다. 특출난 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다. 김용옥이라는 이름은 나의 현실이 아닌 그들의 관념인 것이다.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이러한 노자의 언어의 거부가 동양문화 전통에서 과학문명의 저해를 가져왔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과학문명의 발전을 촉진시켰다는 상반되는 설이 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그릇된 선입견을 제거시키고 자연의 객관성을 있는 그대로 확보해주었다는 가설이 가능한가 하면, 언어의 거부가 이성연역적 체계까지를 거부함으로써 과학언어의 근원적 가능성을 봉쇄시켰다는 가설이 동시에 가능한 것이다. 그대들은 과연 노자(老子)와 동양문명의 관계는 어떠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는가? 곰곰이 잘 생각해보라!

 

 

 

 

인용

목차 / 서향 / 지도

노자 / 전문 / 1 / 노자한비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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