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Family)과 교회(Church)
회창폐불(會昌廢佛)【842년부터 4년에 걸친 당무종(唐武宗)의 불교탄압】 이래 지속된 송대의 배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선종(禪宗)이 쇠퇴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대장경의 율장, 그러니까 원시불교의 승가계율에 기초한 법규(法規)와는 달리, 독자적으로 중국사찰에 맞는, 승단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중국식 청규(淸規)가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타종파와는 달리 선종은 사찰 자체가 개별적으로 독립되어 있었으며 승려의 노동력에 기초한 자급자족체제를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대종(大宗)이 아니라 소종(小宗)이었던 것이다. 논장(論藏)【부처님의 말씀을 크게 경ㆍ율ㆍ논 삼장(三藏), 곧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으로 나눈다. 경장(經藏)과 율장(律藏)은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말씀이고, 논장(論藏)은 그 후 보살들이 나와서 부처님 말씀에 대하여 각자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부연 설명한 것이다】을 새로 쓴다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율장(律藏)을 새로 쓴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주자는 신유학운동의 생명력을 새로운 율장에서 확보하려고 했던 것이다. 참으로 탁월한 전략이요 선택이었다. 그러니까 주자는 육경의 주석을 통하여 경장(經藏)을 확보하고, 사서의 주해를 통하여 논장(論藏)을 확보하고, 『소학(小學)』과 『가례』를 통하여 율장(律藏)을 확보한 셈이었다.
신유학의 삼장 |
경장(經藏) | 육경(六經)의 주석 |
논장(論藏) | 사자서(四子書)의 주해 | |
율장(律藏) | 『소학(小學)』과 『가례(家禮)』 |
『효경간오』의 실패가 『소학(小學)』과 『가례』로서 보상을 받았다면, 『간오』의 실패는 한마디로 주자학의 ‘대박’이었던 셈이다.
주자학의 체계를 신봉하는 자들은 암암리 『효경』을 경시하고, 그 대신 『소학(小學)』과 『가례』를 중시한다. 재미있게도 우리나라 조선왕조의 주자학의 실상을 살펴본다면, 그것은 육경의 주자학도 아니요, 사서의 주자학도 아니며, 실상 『소학(小學)』과 『가례』의 주자학이다. “제읍(諸邑) 유생들에게 장유(長幼)를 막론하고 『소학(小學)』과 『가례』를 먼저 읽혀라!” “『소학(小學)』과 『가례』에 통달한 자만이 생원시험을 볼 수 있다”는 등등의 메시지는 「세종실록」이나 「성종실록」 등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왕조는 실상 『소학(小學)』과 『가례』의 왕국이었다. 나의 어머니께서도 수의를 지으실 때 항상 『주자가례』를 펴놓고 지으셨다. 어렸을 때 안방 장판 위로 펼쳐져 있는 『주자가례」를 신기하게 쳐다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주자는 『가례』를 효의 현실적 실천방안으로서 혁명적으로 기획했지만 불행하게도 『가례』의 소종주의(小宗主義)는 더욱 더 철저하게 사회를 도덕주의적으로 옥죄어 들어가는 기미가 된다. 대종주의(大宗主義)일 때에는 오히려 일반가정은 의례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구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종주의가 되면 오히려 모든 가정이 주자가례에 의하여 철저히 구속당한다. 쉽게 생각하면 가정이 모두 주자학의 작은 교회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교회가 가부장의 권위에 의한 종교재판(Inquisition)까지 행사할 수 있는 조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매우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종법의 굴레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내 말을 부정할 길이 없을 것이다. 얼마나 수많은 조선의 여인들이 시부모에게 야단맞고 우물에 몸을 던졌으랴!
주자의 『가례』는 결과적으로 가(家)를 국(國)의 규범에 의하여 규정하는 사태로까지 발전시킨다. 가(家)가 철저히 정치화되는 것이다. 가(家)가 모여서 국(國)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의 규범과 국의 규범이 일치되는, 그러니까 국(國)이 일가(一家)가 되고 가(家)가 일국(一國)이 되는 철저한 충ㆍ효의 일원화가 성립한다. 본문에서 세밀하게 주해를 가하겠지만 『효경』은 결코 그러한 틀의 경전이 아니었다. 주자는 『효경』을 너무도 협애하게 만들었다. 주자학의 저주가 바로 이 점에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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