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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효경한글역주, 제11장 『여씨춘추』 「효행」 편 역주 - 8장. 발을 다치자 근심스런 낯빛이 어린 악정자춘 본문

고전/효경

효경한글역주, 제11장 『여씨춘추』 「효행」 편 역주 - 8장. 발을 다치자 근심스런 낯빛이 어린 악정자춘

건방진방랑자 2023. 4. 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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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발을 다치자 근심스런 낯빛이 어린 악정자춘

 

 

효행8은 다음과 같다.

 

 

악정자춘(樂正子春)이 당()에서 내려오다가 발을 다쳤다. 다 나았는데도 수개월 동안 외출을 하지 않았고, 또한 근심어린 낯빛이 있었다.

樂正子春, 下堂而傷足, 瘳而數月不出, 猶有憂色.

 

악정자춘의 문인(門人)이 그에게 물어 가로되: “선생님께서는 당에서 내려오시다가 발을 다치셨는데, 다 나았는데도 수개월 동안 외출도 안 하시고, 또한 근심어린 얼굴빛이시온대, 감히 그 까닭을 여쭈어도 되겠나이까?”

門人問之曰: “夫子下堂而傷足, 瘳而數月不出, 猶有憂色. 敢問其故?”

 

악정자춘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훌륭하도다, 그대가 이런 것을 질문하다니! 나는 일찌기 증자에게서 들었고, 증자께서는 중니 어른께 들으셨나니라. 그 말인즉 다음과 같다: ‘부모께서 온전하게 나를 낳아주셨으니 자식인 나 또한 온전하게 내 몸을 되돌려야 한다. 그 몸을 훼손하지 말아야 하고, 그 형체를 이그러뜨리지 말아야 가히 효라 일컬을 수 있나니라.’ 그러니 군자는 한두 걸음 사이에서도 이러한 효를 잊어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 나는 효를 잊어버리고 몸을 다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근심하고 근신하고 있는 것이다.”

樂正子春曰: “善乎而問之. 吾聞之曾子, 曾子聞之仲尼: ‘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不虧其身, 不損其形, 可謂孝矣.’ 君子無行咫步而忘之. 余忘孝道, 是以憂.”

 

그러므로 말한다. 나의 몸이라는 것은 결코 내가 사유(私有)하는 것이 아니다. 엄친(嚴親: 존엄한 부모)의 몸의 연장태인 것이다.

故曰: 身者非其私有也, 嚴親之遺躬也.

 

 

신체의 온전함의 보존이라는 몸의 테마가 계속 강조되고 있다. 우선 악정자춘(樂正子春)이라는 인물에 대해 우리는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악정자춘 자신의 말로써 살펴볼 때, 그는 증자의 직전제자인 것처럼 기술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공자의 손제자(孫弟子)가 되며, 자사와 비슷한 시기가 될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가능성은 희박하다. 증자의 문인이며 효로써, 혹은 효에 관한 이론가로서 이름이 높았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증자의 직전제자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훨씬 후대에 이름이 난 인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하여튼 여기서는 증자의 직전 제자로서 기술되고 있다.

 

춘추공양전소공(昭公) 19년 하휴(何休)의 주()악정자춘은 증자의 제자이며 효로써 이름을 날렸다[樂正子春, 曾子弟子, 以孝名聞].’라고 되어 있고, 한비자』 「현학(顯學)편에 공자가 죽고나서 공자의 학풍이 8파로 나뉘었다고 했는데, 8파 중에 악정씨지유(樂正氏之儒)’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효에 관하여 증자의 학풍을 이어 일가를 이룩한 인물이라고 평가된다. 그리고 설림하(說林下)편에는 제나라가 노나라를 정벌하여 노나라의 보물인 참정(讒鼎: 거대한 세발솥)을 요구했으나 노나라의 군주가 가짜 참정을 내놓자, 제나라 사람이 그럼 악정자춘에게 감정을 의뢰하자고 한다. 그의 말이라면 믿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맥락에서 보면 악정자춘은 노나라 사람일 것이다. 당대의 제후들에게 신망이 높았던 인물로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맹자(孟子)라는 서물 속에서는 악정자(樂正子)는 맹자의 제자로서 이름이 극()인 인물로서 나온다.

 

효행편이 악정자춘 학파의 사람에 의하여 쓰여진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진기유陳奇猷), 그것은 너무 안이한 비약일 것이다. 악정자춘도 효행의 한 전형적 모델로서 그 캐릭터만 빌려온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효행편의 악정자춘 이야기가 예기』 「제의편에 나오며, 대대례기』 「증자대효(曾子大孝)편에도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의증자대효는 거의 비슷한 양식으로 기술되고 있는데, 효행과는 양식적으로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문장양식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제의증자대효효행의 기사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효행편의 기술이 더 간략하며 오리지날한 형태임이 틀림이 없다. 대체적으로 효경』 「효행」 「제의」 「증자대효는 동일한 시대의 패러다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시기적으로 보자면 효경(전국말기) → 「효행(진제국형성시기) → 「증자대효(한초 대덕戴德 편찬) → 「제의(한초 대성戴聖 편찬)의 순서로 배열될 수 있다.

 

효경 효행 증자대효 제의
전국말기 진제국형성시기 한초 戴德 편찬 한초 戴聖 편찬

 

 

 

 

인용

목차

원문 / 呂氏春秋』 「孝行/ 五倫行實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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