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이 3가지 중에서 가장 쉽게 습득되는 것은 자본주의일 것이다. 인간의 욕망의 확대를 위한 자본의 확대재생산이라고 하는 것은 체제만 잘 갖추어지면 인간세는 그러한 체제에 거의 본능적으로 적응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의 폭력에 관하여 이미 서구사상 자체 내에 균열이 생기면서 그 정당성에 관한 끊임없는 회의가 발생하였고, 그것이 지고의 선이라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동방문명도 그것을 전적으로 수용하지는 않았다. 자본주의라는 것의 규정 자체가 애매하기 때문에, 무엇이 과연 좋은 자본주의인가에 관하여서는 인류가 아직도 모색 중에 있다.
그 다음으로 민주주의라는 것은 정치제도로서 동방인들에게 충격과 매력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들이 여태까지 운영해왔던 어떠한 사회 제도보다도 더 바람직한 것이라는 생각에 가치관의 일치가 이루어진 것 같다. 그러니까 동방에서의 근대화라는 작업은 그들이 대안없이 유지해왔던 군주제를 민주제로 바꾸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그 에너지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도 볼 수 있다.
자본주의는 가치평가 자체가 애매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가치평가는 확실하게 되었지만, 그만큼 달성하기가 어려웠다. 제도는 제도를 운영하는 인간들의 사유나 삶의 방식, 일상적 가치관이나 행태가 그 제도와 일치되지 않으면 제도 자체가 유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동방세계에 있어서 서구 의회민주주의의 가능한 최선의 형태를 구현하는 데 성공한 사례로서 두 나라를 꼽다면 대한민국과 대만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나라가 모두 객관적인 선거제도에 의하여 정권의 교체를 달성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평가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겠지만, 이 두 나라가 도달한 의회민주주의의 수준은 최소한 일본인들의 정치의식을 능가하는 다이내믹한 것이다. 두 나라가 다 국공내전, 남북내전이라고 하는, 20세기 냉전체제를 결정한 세계사적 축의 변화 속에서 일어난 동족상잔의 비극을 감내해야만 했고 그 뒤로 치열한 반독재투쟁을 벌이면서 민주가 무엇인지를 민중 스스로 자각해간 정치과정을 체험했다. 20세기 전반의 세계 제국주의의 한 주역이었고, 패전 국가로서 제국주의의 죄악을 민중 스스로 청산할 기회가 없이 의타적으로 미군정의 치세에 의존하여 사회적 안정과 부를 획득한 일본의 정치과정과는 매우 대조적인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아직도 제국주의적 환상에 함몰되어 그 보편적 가치의 모범을 인류사에 제공하고 있질 못한 것이다.
가치평가가 유동적일 수 있는 상황에 대하여 결정적인 판단은 유보해야 마땅하지만, 지금 우리가 지적해야 할 명백한 사실은 의회민주주의의 바람직한 형태가 서구문화권을 벗어나서도 이미 충분히 실현될 수 있다고 하는 가능성을 이미 몇몇 국가들이 실험적으로 예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미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관하여서는 서구문명이 프라이오리티(priority, 상위)를 지니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이미 우열을 가리기 힘든 인류사의 가치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끝으로 동방의 문명이 가장 콤플렉스를 느꼈고, 느끼고 있는 주제는 ‘자연과학’일 것이다. 그리고 자연과학이야말로 가치관의 우열에 있어서 그 보편주의적ㆍ합리주의적 성격 때문에 서구문명이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한 주제였다. 따라서 서구문명에 대한 동방인들의 열등의식의 근저에는 모두 자연과학의 후진성이 자리잡고 있다. 마테오 릿치(Matteo Ricci, 1552~1610)의 시대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동방인들은 서구로부터 과학을 배워야 한다는 신념의 일관성에는 크게 변화가 없다. 아직도 과학문명이라는 측면에서는 서양문명이 대체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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