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문명의 강점
대체적으로 고문명세계(Old World)에 관하여 우리의 인식의 창구가 차단되어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고문명세계의 근원적 축을 이루는 지역들이 모두 공교롭게도 이슬람문명권이라는 표피로 덮여 씌워져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세계나 서방세계와 근린정책을 펴는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아랍국가라 하면 악의 축으로 인식하거나 우호적이기 어려운 그 무엇으로 생각하는 편견을 암암리 저변에 깔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편견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묘한 국제관계 역학의 산물인 이스라엘국가의 탄생으로 악화되었고, 십자군시대의 오류가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이 고문명세계는 그 본질상 이슬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고문명세계와 이슬람종교의 결합은 AD 7세기 이후의 사태일 뿐이며 이슬람이라는 것도 기독교의 뿌리인 유대교와 적서의 우열을 다투는 후대의 종교현상이므로, 크게 보면 모두 인류역사의 말류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불행한 사실은 이슬람의 유포가 『꾸란(the Qurʼān)』이라는 경전을 강요하고, 그 아이코노크라스틱(iconoclastic, 우상파괴의)한 절대성ㆍ비형상성ㆍ추상성으로 인하여 『꾸란』의 언어인 아랍어(Arabic)가 모든 무슬림의 삶의 절대적 기준이 되어버림으로써, 인류 고문명들의 독자적인 아이덴티티가 상실되고, 고문명의 모든 가치를 담지하는 소중한 언어들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이집트인들도 프톨레미왕조의 성립과 함께 디모틱 문자(Demotic script, 민용문자)를 만들었고, 로마시대로 들어서면서 희랍어 자모를 이두문자로서 차용한 콥트어(Coptic)를 만들었지만 콥트어까지만 해도 성각문자와 연속성을 이루는 이집트인 자신들의 말이었다. 샹폴리옹도 콥트어의 지식 때문에 로제타 스톤의 성각문자를 해독하는 쾌거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콥트어는 아랍의 침공으로 사어가 되고만 것이다. 예수가 쓴 아람어도 시리아땅에 남아있던 것이나 사어가 되고 말았고, 바빌론의 언어도 사라졌다. 다행히 페르시아어, 터키어, 아르메니아어 등등이 겨우 살아 남았지만, 여하튼 그나마 히브리말이라도 살아 남은 것이 천행이라 할 것이다.
아시아대륙의 고문명세계의 눈부신 성취가 이와 같이 우리의식의 저켠으로 아련히 사라져 버리고, 서구문명을 인류문명의 정본으로 생각하며, 그 원류를 아시아 고문명의 말류인 그레코ㆍ로만문명으로 착각하는 19ㆍ20세기의 사관은, 평심(平心)하게 형량하자면 그 나름대로의 충분한 이유가 있다. 아무리 아시아 대륙과 나일강역의 고문명이 찬란한 문명의 축적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그 축적을 토양으로하여 새롭게 개화한 희랍고전문명이 인류문명사에 보다 획기적인 새 국면을 도입시켰기 때문이다. 그것은 페니키아 알파벳으로부터 진화한, 편리한 표음문자인 희랍어를 매개로 하여 인간에게 연역적 사유의 명증성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연역적 사유는 이성의 초월성과 관념의 실재성을 존재론적 기반으로 하여 물리적 현상을 공제(控制)하는 막강한 힘을 과시한다. 물론 이 연역적 사유의 핵심에는 기하학(geometry)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기하학의 발생연원을 소급한다면 그것은 모두 이집트문명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희랍인들은 기하학의 원리를 측량이나 축조기술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 원리를 인간의 사유의 원리로 심화시켜 우주를 관통하는 신적인 제일원리로 확대시켰다.
이 세계의 진보를 위한 희랍인들의 진정한 중요성은, 그들이 바로 인간의 사변이성도 어떤 질서정연한 방법에 귀속된다고 하는 거의 믿을 수 없는 엄청난 비밀을 발견했다고 하는 데 있다. 희랍인들은 이성으로부터, 정해진 한계를 초월하는 기능을 손상함이 없이, 이성이 가지고 있던 혼돈스럽고 신비로운 성격을 박탈해버렸다. 이 때문에 바로 우리가 영감(Inspiration) 대신에 사변이성(the speculative Reason)을 지금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변이성이라는 말에서, ‘이성’은 합리적인 것의 질서정연함에 호소한다. 그러나 ‘사변’은 어떤 특정한 방법을 끊임없이 초월하는 것을 표현하는 말인 것이다. 희랍인의 비밀(the Greek secret)이란, 바로 이러한 초월에 있어서조차도 방법의 구속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희랍인들은 그들 자신의 이 위대한 발견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것이 2천년 동안 작동해온 기나긴 역사를 목격할 수 있는 행복한 입장에 있다. … 희랍인들은 논리라는 말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넓은 함의에 있어서 논리를 발명했다. 그들의 논리는 바로 발견의 논리(the logic of discovery)였다.
-화이트헤드 지음, 도올 역안, 『이성의 기능』, 263~7.
인간의 논리에 있어서 귀납과 연역의 두 축을 논의한다면, 경험적 사실과 일치하는 명제의 발견이라고 하는 귀납적 측면에 있어서는 어떠한 고문명도 희랍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그러나 희랍인들이 절대적인 우위를 갖는 것은 바로 연역적 사유였다. 연역의 대전제가 근원적으로 부당할 경우, 그것은 귀납적 연구에 의하여 시정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귀납에 근대과학은 개가를 올렸다. 그러나 서구과학의 주된 장점은 아직까지도 경험과학이 아니라 연역적 사유의 고도성과 정밀성에 있는 것이다.
조금 쉽게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그동안 인류문명의 원류가 희랍문명인 양 착각해왔던 모든 관념의 저변에는 인류의 근세문명을 보편적으로 지배한 과학문명과 민주제도의 원류가 희랍의 고전시대에 있다고 하는 통념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 통념을 크게 반박할 생각은 없다. 오늘날의 근세 의회민주주의가 방대한 노예계층을 전제로 한 희랍의 민주주의와 연속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근대 과학의 눈부신 발전이 희랍인의 과학적 사유와 같은 맥락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BC c.460~370)의 원자와 달톤(John Dalton, 1766~1844)의 원자는 그 존재론적 기반이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에게 과학정신이 싹튼 배면에는 사라센문명이 유럽인들에게 다시 각인시켜준 희랍고전의 사유가 르네상스정신을 지배하였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고, 민주주의만 해도 플라톤의 저작 속에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언급되는 것이지만, 데모(démo, 다중)에 의한 크라티아(kratia, 지배)가 시도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후대에 어떤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 영감)을 전달한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약점을 은폐하거나 강변해서는 아니된다. 굳이 그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약한 것은 남의 강한 것을 배워 보충하면 되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동아시아의 문명이 서양문명을 접하는 과정에서 열세를 느꼈던 제1의 요인은 무력(military might)이었다. 그러나 그 무력의 강세의 배경에 있는 것으로서 열등감을 강하게 느꼈던 것은 다음의 3가지 요인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1) 자연과학(natural science)
2) 민주주의(democracy)
3) 자본주의(capitalism)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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