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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공자의 생애와 사상 - 예수 탄생과 베들레헴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공자의 생애와 사상 - 예수 탄생과 베들레헴

건방진방랑자 2021. 5. 2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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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탄생과 베들레헴

 

 

우리는 예수가 베들레헴(Bethlehem)의 어느 말 구유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동방박사 세 사람이 와서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는 사실을 크리스마스설화의 주요테마로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는 분명 갈릴리(Galilee)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요셉도 분명 갈릴리의 나자렛(Nazareth)사람이고, 예수도 나자렛에서 성장하여 갈릴리 바다의 북단에 있는 가버나움(Capernaum)에서 활동을 개시한 사람이다. 그런데 베들레헴이라는 곳은 남쪽 유대지방 예루살렘에서도 더 남쪽으로 6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편벽한 곳이다. 저 북방에 위치한 나자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그야말로 험준한 광야의 천리길이다. 그런데 왜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나야만 했을까? 왜 북방 갈릴리사람인 예수가 저 남방 유대아 광야의 베들레헴에서 나야만 했을까? 이 사실에 대하여 누가복음의 저자는 매우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시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

(누가 2:1~5)

 

 

누가기자에 의하면 예수가 태어난 해에 바로 캐사르를 이은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Caesar Augustus, 아구스도)에 의하여 로마제국 전역에 걸친 총호구조사(general census)가 실시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호구조사를 현주소가 아닌 본적지에서 받기 위해 요셉이 애기를 밴 마리아를 데리고 천리길인 베들레헴으로 가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매우 정확한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지방사적인 사실을 하나 더 첨가하고 있다. 이 총호구조사는 퀴리니우스(Quirinius, 구레뇨)가 시리아(Syria,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실시한 것이며, 바로 헤롯이 유대아의 왕이었을 때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이다. 누가의 기자는 이러한 사건이 매우 역사적 배경 위에서 진행된 사실인 것처럼, 마치 역사가가 당대의 역사를 기술하듯이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로마사는 우리에게 매우 정확하게 알려져 있다.

 

시저 아우구스투스의 로마제국 전역의 총호구조사명령이라면 그것은 정확한 연대추정이 가능한 것이다. 우선 로마제국의 총호구조사는 세금의 부과를 목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식민지의 피지배인인 요셉이 애기 밴 마리아를 데리고 나자렛에서 베들레헴까지, 단지 본적지에서 호구등록을 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걸어갔다는 것은 도무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더욱 명백한 사실은 아우구스투스의 총호구조사명령은 AD 6년에 한 번 있었으나 예수가 탄생한 시점을 전후로는 그러한 사실을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는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AD 37~c. 100)와 같은 당대의 사가의 증언에 의하여 이러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헤롯왕의 치세 기간은 BC 37년부터 BC 4년까지에 걸치고 있다. 예수의 탄생이 헤롯왕 치세기간의 사건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BC 4년 이전의 사건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헤롯의 치세기간 동안에 퀴리니우스(구레뇨)는 시리아의 총독이 된 적이 없다.

 

그렇다면 누가기자의 이 모든 기술은 날조된 것인가? 물론 명백한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말한다면 그것은 날조된 것이다. 그런데도 누가는 그것을 태연하게 마치 당대의 정확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듯이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예수는 나자렛에서 태어나도 마리아의 처녀잉태를 정당화시키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텐데 왜 하필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어야만 했을까? 예수의 인간적인 측면을 잘 서술했다고 여겨지고 있는 제4복음서인 요한복음은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까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요한복음7:41~42). 그렇다고 우리는 요한의 기자가 누가마태의 기자보다 더 사실적인 실증적 사료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여기 우리가 신약성서를 읽을 때 중요한 사실은 그것을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s)로서 읽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누가마태의 기자들이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사건을 기술하는 것은 그 자체로 어떤 내면적 논리와 목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내면적 논리와 목적이 바로 케리그마(Kerygma)라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가 단지 역사적 인간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다. 구약의 예언의 성취를 위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이 땅에 보내여졌고, 천국의 도래를 외쳤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죽은 자로부터 부활했으며,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시리라고 하는 신념의 선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포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 대가로 죄사함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 선포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기술된 것이 바로 복음서인 것이다.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케리그마의 맥락 속에서만 명백해질 수 있는 것이다. 베들레헴은 바로 골리앗을 무너뜨린 이스라엘의 영웅 다윗왕의 고향이다. 다윗은 베들레헴의 농부의 아들이었으며 양떼를 지키는 목동이었다.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만 바로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 혈통의 정통성을 인정받게 된다. 마태는 예수의 베들레헴탄생을 선지자 미카(Micah, 미가)의 예언의 성취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또 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마태2:6, 미가5:2

 

 

이러한 성서의 케리그마적 기술과 사마천의 공자세가(孔子世家)의 기술은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기 쉽다. 공자는 처녀에게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죽었다 다시 살아나야 할 아무런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마천의 공자기술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의 편년체적(編年體的) 기술처럼 보인다. 공자의 삶에는 케리그마를 비신화시켜야만 할 만큼, 신화적 요소가 염색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신화를 우리의 상식적 인과적 틀에서 벗어나는 사태로서만 생각하기 쉽다. 처녀잉태(parthenogenesis)라든가 죽은 자의 부활(resurrection)이라든가 하는 것은 분명 우리의 상식적 인과 속에서 가능한 사태가 아니다. 확률적 예외일 가능성조차 없다.

 

그러나 신화는 불가능한 것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신화는 있을 수 있는 것, 즉 현실이 아닌 가능한 사태 속에서도 얼마든지 전개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현존재의 행위는 항상 수없이 가능한 사태 속의 한 실현이다. 그러나 이 실현이 그 수많은 가능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가능한 사태 속에 무한히 신화적 기술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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