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자기편만 만드는 인간과 어우러지는 인간
2-1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두루 마음쓰고 편당 짓지 아니하며, 소인은 편당 짓고 두루 마음쓰지 아니한다.” 2-14. 子曰: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
앞서 서막에서도 논의한 바 있지만,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대비적 가치판단은 반드시 동일한 가치평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라는 것이 확실히 인식되어야 한다. 군자(君子)는 사(士)가 지향해야 할 이상이며 소인(小人)은 사(士)가 극복해야 할 현실이다. 다시 말해서 공자의 소인(小人)에 대한 비판은 사(士)에 대비되는 서민(庶民)에 대한 경멸의 언사가 아니라, 사(士)임을 자처하는 사회리더들에 대한 준엄한 비판이다. 다시 말해서 군자와 소인은 계급 적으로 준별되는 개념이 아니며, 둘 다 사회지도층이 되고자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가치개념(value terms)인 것이다. 공자는 저 민중을 무지랭이 소인(小人)들로서 바라본 적이 없다. 그리고 선택받은 자로서 자기를 우월하게 인식한 적도 없다. 민(民)은 존재의 기반이며, 그것은 치(治)의 대상인 동시에 지고의 가치다. 공자에게 오늘날과 같은 민주(民主)의 관념은 없다. 그러나 의회 민주주의의 정도(正道)에 의한 선거결과조차도 민의를 판가름하는 바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21세기 오늘날의 세계정세를 관망할 때, 민주(民主)라는 가치의 표현은 시대에 따라 그 양식을 달리했을 뿐이며 그 민주의 정신이 오늘날에만 있다고 농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공자에게도 민(民)이 사회적 가치의 주(主)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어느 고대사상가보다도 투철했다고 사료된다.
주(周)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지향이다. 비(比)는 비슷비슷한 똘만이들끼리 똘똘 뭉치는 현상이다. 공안국(孔安國)의 주에 ‘아첨하는 자들끼리 무리 짓는 것을 비라 한다[아당위비야(阿黨爲比)也)]’라 한 것이 그것이다. 주자는 ‘주(周)는 보편(普偏)이요, 비(比)는 편당(偏黨)이다, 주(周)는 공(公)이요, 비(比)는 사(私)다’라 했는데 비교적 그 의미맥락이 명료하다.
인간은 항상 자연스럽게 비슷비슷한 자들끼리 뭉치게 마련이다. 마음에 맞는 자들끼리 모여 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렇게 비슷비슷한 자들끼리만 뭉치고, 마음에 맞는 자들끼리만 모여 사는 것은 결국 소인(小人)의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마음에 맞는 자들끼리 모여 살더라도 그 모임이 하나의 편 당적 성격을 지녀서는 아니 되는 것이요, 그 붕당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에 대해 항상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하며, 자신의 감정적 궤적의 일상성을 탈피하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지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구상에 존속하는 모든 종교들이 인간세에 폐해를 끼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편당의식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공자가 외치는 것은 ‘해석의 지평의 열림(open horizon)’이 요, ‘민주의 개방성’이며, ‘우주의 에로스’다. ‘군자불기(君子不器)’의 해석에 있어서, 기(器)와 불기(不器)가 결코 대립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비(比)와 주(周)는 결코 서로를 부정하는 관계가 아니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비(比)하게 마련이지만, 비(比)에서 머무르면 그것은 소인(小人)이 되고 마는 것이다. 비(比, partiality)를 초극하여 끊임없이 주(周, universality)로 나아가는 삶의 과정이야말로 사람의 군자(君子)다움의 바른 기준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조가 탕평책을 실시할 때, 탕평비(蕩平碑)에 바로 이 『논어』의 구절을 적어 넣었다.
12ㆍ13ㆍ14장은 모두 군자(君子)를 테마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군(一群)의 연상된 전송로기온이었을 것이다.
‘比’는 필이(必二) 반이다. ○ ‘주(周)’는 두루두루 개방되어 있는 것이요, ‘비(比)’는 끼리끼리 무리 짓는 편당을 말한다. 둘 다 모두 사람들끼리 친하고 두터운 관계를 맺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단지 ‘주(周)’는 공(公)이 되는 것이요 ‘비(比)’는 사(私)가 되는 것이다.
比, 必二反. ○ 周, 普偏也. 比, 偏黨也. 皆與人親厚之意, 但周公而比私耳.
○ 군자와 소인의 소행이 같지 아니 함은, 마치 음과 양, 낮과 밤이 항상 상반되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그 양자가 나뉘어지는 까닭을 잘 캐어 보면 결국 공과 사의 구분의 터럭끝 만한 차이에 달려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성인께서는 주(周)와 비(比), 화(和)와 동(同), 교(驕)와 태(泰)와 같은 류의 짝을 항상 들어 대비적으로 말씀하시니, 그것은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대비되는 양자 사이를 잘 관찰하여 과연 무엇이 옳은지, 그 취사(取舍)의 기미를 살피게 하려 하신 것이다.
○ 君子小人所爲不同, 如陰陽晝夜, 每每相反. 然究其所以分, 則在公私之際, 毫釐之差耳. 故聖人於周比, 和同, 驕泰之屬, 常對擧而互言之, 欲學者察乎兩閒, 而審其取舍之幾也.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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