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이 기생에 대해 시를 쓰는 이유
『소화시평』 권하 14번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권하 17번에서 나오는 선연동에서 읊은 시들과 함께 보면 더욱 좋다. 그건 한 때는 미모[春色]를 과시하고 맘껏 나래를 펼쳤지만 스러져가는 젊음에 대한 탄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기 때문이다.
기녀를 읊은 시들의 공통점이 바로 이것이다. 한때는 미모를 과시하며 고관대작들과 어우러지던 꽃들이 시간이 흘러 이젠 시들어졌고 그에 대한 서글픈 정조를 담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기녀에 대한 얘기일 뿐 아니라, 스러져 가는 자신의 청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그런 정조를 지닌 시인들이 기녀들의 무덤인 선연동을 지나치면서 가만히 있을 순 없었을 것이다. 기녀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에서 바로 자신들의 모습이 보였을 테니 말이다. 이런 자리에서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을까? 더욱이 정감이 일어나면 어떤 방식으로든 풀어내는 최적화된 조선의 시인들인데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녀의 삶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맘껏 풀어내며 시를 지었던 것이다.
瑤琴橫抱發纖歌 | 가야금 비껴 안고 가녀린 가락 부르던 이 |
宿昔京城價最多 | 지난 날 한양에서 몸값이 최고였다지. |
春色易凋鸞鏡裏 | 춘색 난새 거울 속에서 쉽게 시들어 |
白頭流落野人家 | 흰 머리로 야인의 집을 떠도는 구나. |
이 시에서 유근도 그와 같은 정조를 느끼고 있다. 이젠 더 이상 미색을 뽐내지 못하는 그렇게 스러진 늙은 기생을 만났다. 그 기생은 이제 어느 곳에 정착하지도 못하고 여러 곳을 다니며 자신의 특기인 가야금 실력을 품팔이 해야만 하는 신세에 놓여 있다. 늙음이란 이처럼 허무하고 서글픈 것이란 말인가?
유근의 삶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이런 시를 남길 땐 단순히 늙은 기생의 서글픔만을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런 기생의 모습에서 자신의 늙은 모습, 맘대로 안 되는 삶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입이야말로 이와 같은 시를 지을 수 있던 계기였을 것이다.
1~2구에선 과거의 영화롭던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춘색을 과시하며 한양에서 꽤나 높은 몸값을 받던 기생의 젊은 날, ‘내가 제일 잘 나가♬’ 하던 시절을 펼쳐내고 있다. 이런 서술을 통해 유근 또한 자신의 젊은 날을 회상했으리라. 자신도 그렇게 잘 나가던 시절, 그리고 무엇 하나 꿀릴 게 없던 시절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1~2구는 3~4구의 쇠락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한 구절일 뿐이다. 즉 3~4구의 서글픈 감정을 배가시키기 위한 과정, 전제일 뿐이다. 난새가 조각된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젊던 자신은 없어지고 이젠 주름 가득한 자신의 모습만 있다. 어찌 이리도 젊음은 쉽게 사라지는 것인가? 그러다 보니 이젠 여러 곳을 전전하며 가야금을 타야만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바로 이 구절에서 유근의 감정이입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유근도 어느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여기 저기 다니며 문장실력을 팔았을지도 모른다.
홍만종은 이 시야말로 서글픈 정서가 깊게 배어 있다고 보았는데, 유독 석주 권필은 이 시에 대해 “좋은 시다”라고 평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권필이 어느 시기에 이 시를 평가한 것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권필이 「궁류시(宮柳詩)」로 유희분의 분노를 사던 즈음의 평가가 아니었을까. 권필의 삶이야말로 파란만장함의 끝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는 서글픈 정서를 지닌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정서가 바로 이 시를 보고 ‘좋다’라고 평가할 수 있던 기저였을 지도 모른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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