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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13. 재상의 기운을 담아 장난스럽게 쓴 이항복의 한시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13. 재상의 기운을 담아 장난스럽게 쓴 이항복의 한시

건방진방랑자 2021. 10. 2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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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의 기운을 담아 장난스럽게 쓴 이항복의 한시

 

 

常願身爲萬斛舟 몸이 만 섬을 실을 수 있는 배가 되어
中間寬處起柁樓 중간 넓은 곳에 선실을 세워둔 채
時來濟盡東南客 때가 되면 동쪽과 남쪽의 나그네를 모두 건네주고서
日暮無心穩泛遊 해지면 말없이 평온하게 떠다니리.

 

소화시평권하 13에 소개된 이 시는 제목이 따로 없고 시를 짓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수초ㆍ인수와 함께 강가 집에 있었는데 여러 날 동안 배를 물색했지만 구하질 못하자 수초는 매우 울적해했었다. 그러자 수초가 탄식하며 말했다. “어떻게 하면 몸이 큰 배가 되어 바람을 타고서 풍랑을 깨뜨릴 수 있을까?” 그래서 내가 장난삼아 이 시를 지었다.

與守初仁叟同在江舍, 數日索舟不得, 守初甚欝欝. 歎曰: “安得身爲巨艦, 乘風破浪.” 余戲而作此.

 

이처럼 이 시를 짓게 된 배경은 화딱지가 난 상황에서 그 상황을 좀 더 유머러스하게 넘기기 위한 분풀이였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맘대로 되지 않은 현실에 대해 무작정 분개하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짓는 여유를 보여준 것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할 수도 있지만, ‘장난은 장난일 뿐, 너무 확대해석하지 말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홍만종은 이미 이항복을 어떻게 서술할까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여러 시를 찾다가 이 시를 보는 순간 이항복이란 사람을 나의 방식대로 평가할 때 딱 맞아떨어지는 시다라는 느낌으로 삽입했다는 걸 알 수 있다.

 

홍만종은 그렇기 때문에 율시 전체를 싣지 않고 절구만을 편집하여 실었다. 왜냐하면 바로 앞부분엔 배가 오지 않아 화딱지가 난 상황, 그래서 이런 시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감정이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홍만종은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걸 싫어하는 편이고 여기까지 인용해버리면 자신이 구성하려는 이항복의 남다른 기상이 묻힐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부분은 댕강 잘라버리고 뒤의 네 구절만 소개함으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이항복이란 인간에 대한 의미를 강화하는 요소로 사용하고 있다.

 

1~2구는 자신이 배가 된다면 만 섬을 실을 수 있는 큰 배가 될 것이고 그 규모에 걸맞게 가운데엔 선실도 크게 짓겠다는 마음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그런 배로 무얼 할 것인가? 그건 바로 3~4구에 드러난다. 때에 맞춰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실어 날라주고 해가 저물면 그저 말없이 두둥실 떠있고 싶다는 것이다.

 

이렇게만 읽는다면 홍만종이 평가한 재상의 기상을 볼 수 있다[可見濟川氣像].’을 볼 수 있다는 평가는 매우 정확해 보인다. 자신이 배가 되어 사람을 건네주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임금을 보좌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느낌을 피력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배경 설명을 충분히 인지하고 이 시를 읽어보면 그건 굳이 재상의 기상 운운하는 느낌보단 배를 며칠 동안 구해봤지만 맘처럼 되지 않으니 화가 나서 그럴 바에야 내가 배가 되고 말지라고 툭 뱉어내는 정도의 느낌으로 보아야 맞을 것이다. 그건 마치 임용이 하도 되지 않으니 내가 임용만 되어 봐라 키팅 선생 저리 가라하는 명교육자가 될 테니라는 한풀이 같은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도 한참 길게 썰을 풀어야 할 내용이지만, 이미 내용이 한참 길어졌으므로 나중에 참고자료로 쓸 수 있도록 잠깐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조선시대엔 그 사람을 칭찬할 때 학문이 깊다인품이 뛰어나다와 같은 말을 썼다고 한다. ‘문장을 잘 짓는다라는 말은 칭찬 축에 못 꼈는데 그 이유는 글에 대해 무작정 수식만 가하고 인품과 문장이 따로 노는 걸 싫어하는 풍조와 관련이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의 마지막에도 그런 풍조는 반영이 되어 있어 정사룡의 사람들이 숙부의 문장을 칭찬하지 않았던 건 공덕이 워낙 뛰어나서 그게 가려질까봐 그런 거지, 문장이 졸렬했던 건 아니었습니다[世不以文章稱叔父者, 掩以功德也].’라는 예를 들고 있다. 이 말을 통해 홍만종이 생각하는 이항복은 재상으로서의 공덕도 당연히 뛰어나지만 문장도 뛰어난 어르신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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