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선연동의 기녀를 기린 윤계선
『소화시평』 권하 17번을 보려면 이미 말했던 권하 14번의 글과 함께 보면 도움이 된다. 선연동에 대한 얘기는 이미 『우리 한시를 읽다』의 8번째 단원인 ‘대동강 부벽루의 한시 기행’에서 익히 봤었고 여기선 박제가의 시가 실려 있다.
선연동은 기녀들이 집단으로 묻힌 곳으로 을밀대 동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어느 깊숙한 골짜기에 마련된 것이 아니라 주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 맘만 먹으면 어느 시인이고 이곳에 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시 한 수를 남기는 건 ‘체면’을 무척이나 중시하던 조선시대에도 크게 흠이 되지 않았던가 보다.
瑤琴橫抱發纖歌 | 가야금 비껴 안고 가녀린 가락 부르던 이 |
宿昔京城價最多 | 지난 날 한양에서 몸값이 최고였다지. |
春色易凋鸞鏡裏 | 춘색 난새 겨울 속에서 쉽게 시들어 |
白頭流落野人家 | 센 머리로 야인의 집을 떠도는 구나. |
유근이 지은 시는 아직 죽지 않은 늙은 기녀를 만난 감상을 적은 것이다. 그러니 그 시에 짙게 배어 있는 정서는 ‘서글픔’이나 ‘처량함’일 수밖에 없다. 그 감정이야말로 시인이 감정이입을 한 것이기 때문에 드러나는 정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편에 나오는 두 시에선 그와는 다른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그건 어디까지 죽은 넋을 기리는 진혼제(鎭魂祭)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넋을 위로하고 기리는 것이다.
佳期何處又黃昏 | 아름다운 기약은 어디에 두고 또 황혼이런가. |
荊棘蕭蕭擁墓門 | 가시나무 쓸쓸히 무덤 문을 에워쌌구나. |
恨入碧苔纏玉骨 | 한이 서린 푸른 이끼는 옥 같은 뼈를 감쌌건만, |
夢來朱閣對金樽 | 꿈결에 온 붉은 누각에서는 금 술잔을 마주하네. |
花殘夜雨香無迹 | 밤비에 꽃이 져서 향기 자취도 없고 |
露濕春蕪淚有痕 | 봄밭은 이슬에 젖어 눈물 자욱 남았구나. |
誰識洛陽遊俠客 | 누가 알았으랴. 한양의 유협객이 |
半山斜日弔芳魂 | 산 중턱 석양 속에 꽃다운 넋을 조문할 줄을. |
그런데 넋을 위로하는 방식에 있어서 윤계선과 권필은 다른 방법을 구사한다.
윤계선의 시는 스산한 무덤가의 분위기를 묘사한다. ‘가시덤불로 싸인 문’, ‘밤비에 져버린 꽃엔 향기마저 없다’, ‘봄밭엔 이슬 나려 눈물 자욱이 선명해’라는 구절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선 마지막 구절에 이와 같이 조문하는 행위는 예정에 없던 것인데 갑작스레 하게 됐다고 마무리 짓고 있다. 어찌 보면 사족 같은 느낌이 들지만 이런 식으로 끝맺지 않으면 양반 체면에 누가 된다고 생각한 게 분명하다. 그러니 자신은 엉겁결에 와서 조문하게 됐다는 말을 함으로 체면도 살리고 한 편의 시도 살렸으니 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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