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잘못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을 알 수 있다
4-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의 과실이란 각기 그 습벽(習癖)을 따른다. 그 사람 의 과실을 보면 곧 그 사람의 인함을 알 수 있다.” 4-7. 子曰: “人之過也, 各於其黨. 觀過, 斯知仁矣.” |
이 장의 해석에 있어서 고주와 신주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으나, 신주의 해석이 탁월하다. 고주는 도무지 명료한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 공안국은 말한다.
당(黨)이란 끼리끼리 같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소인은 도저히 군자의 행동을 할 수가 없으니 그러한 것은 소인의 과실로 볼 수가 없다. 그러니 당연히 용서하고 책망하지 말아야 한다. 그 과실을 보아서 현명하고 어리석은 무리들이 각기 제자리로 귀속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곧 인을 실천하는 것이다.
黨, 黨類也. 小人不能爲君子之行, 非小人之過也. 當恕而無責之. 觀過, 使賢愚各當其所, 則爲仁也.
이에 대한 황간의 소는 다음과 같다.
과(過)는 과실이라는 뜻이다. 당(黨)은 당류, 즉 비슷비슷한 무리라는 뜻이다. 사람에게 과실이 있을 때, 그 과실은 각기 그 당류를 따라 일어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소인이 군자의 행동을 흉내내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소인의 과실로 간주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농부가 밭을 갈지 못하면 그것은 그의 과실로 시인되는 것이지만, 만약 그가 글을 쓰지 못한다 해서 그것을 농부의 과실로 간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과실을 책망할 때는 반드시 그 무리의 상황에 따라 책망해야 하는 것이다.
過, 猶失也; 黨, 黨類也. 人之有失, 各有黨類. 小人不能爲君子之行, 則非小人之失也. 猶如耕夫不能耕, 乃是其失. 若不能書, 則非耕夫之失也. 若責之, 當就其輩類責之也.
그러니까 공안국의 고주는 사람을 군자와 소인의 당류로 나누고, 사람의 과 실은 군자와 소인의 당류의 차원에 따라 제각기 다른 유형이 있게 마련이므로, 그에 대한 책망도 그 유형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관과(觀過), 사지인의(斯知仁矣)’를 ‘과실의 차원을 잘 분류하여 용서할 것은 용서하여 주는 것이 곧 인을 아는 사람의 행동이다’라는 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신주, 즉 주자의 집주의 입장은 고주의 ‘당류(黨類)’ 개념을 계승하면서도 보다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주자는 당(黨)이 곧 무리[류類]라는 것을 시인한다. 그러나 ‘각어기당(各於其黨)’이라는 의미를 고주처럼 소인과 군자의 차원이 혼동되는 오류라는 맥락에서 해석하지 않는다. 인간의 오류는 그 당류에 맞게 일어나고 있다는 식으로 그 해석의 가닥을 잡는다. 즉 군자는 군자다운 오류를 범하며, 소인은 소인다운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즉 군자는 인정이 후하기 때문에 과실을 범하고, 소인은 인정이 박하기 때문에 과실을 범한다는 것이다. 군자는 지나치게 사랑하기 때문에 오류를 범하고 소인은 너무 잔혹하기 때문에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주의 입장에는 인에 대한 매우 중요하고 참신한 시각이 포섭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인한 사람이나 군자라 해서 오류가 없을 수는 없다는 현실주의적, 그리고 보편주의적 사고가 배태(胚胎)되어 있는 것이다. 즉 군자는 완벽하고 소인은 오류투성이라고 하는 식의 이원론적 인간상이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의 과실의 형태만 보아도, 그 과실의 주체인 인간이 인한지, 인하지 못한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인간은 허물을 저지르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 허물 그 자체가 인한 허물이 있고, 불인한 허물이 있다. 그 허물을 보아서 우리는 그 인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인의 정체는 그것의 부정적 상태에서 드러난다는 신주의 입장은 공자사상의 매우 소박한 인간 공자를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양백준(楊伯峻)은 ‘사지인의(斯知仁矣)’의 인(仁)을 인(人)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은 본문을 제대로 읽지 못한 단견에 불과하다. ‘과실을 보아 그 사람을 알아본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누구든지 쉽게 할 수 있는 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발언의 본래적인 초점은 ‘과실을 보아 그 사람의 인함을 알 수 있다’는데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장을 우리말로 옮기는데 있어서 다산의 입장을 따랐다. 다산은 당(黨)을 당류(黨類)라는 인간의 유형의 분류로 보지 않는다. 다산은 당(黨)이라는 것을 인간에게 고유하게 형성되어 있는 편벽한 습벽과 같은 것으로 해석한다. 다산은 말한다.
과(過)는 허물이다. 당(黨)은 편벽과 같은 뜻이다. 지혜로운 자의 허물은 항시 지혜 때문에 생겨나며, 용기있는 자의 허물은 항시 용기 때문에 생겨난다. 이는 제각기 그 편벽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 인한 자의 허물 또한 그러한 것이므로, 그의 허물을 보면 또한 그의 인함을 엿볼 수 있다.
過, 愆也. 黨, 猶偏也. 智者作過恒以智, 勇者作過恒以勇. 是各於其黨也. 仁之過亦然, 觀過斯知仁矣.
다산의 입장은 매우 명료하다. 그러면서 다산은 고주에 대하여 다음의 통렬한 한마디를 휘날린다: ‘도통 뭔 말인지 모르겠다[부지하설(不知何說)]’. ‘인한 자의 허물’을 명료하게 언표하는 다산의 주야말로 이장의 본의를 간파하고 있다 할 것이다.
‘관과(觀過), 사지인의(斯知仁矣)’ 구문에서 신주는 ‘사(斯)’를 ‘즉(則)’의 뜻으로 읽고 있다.
‘당(黨)’은 류(類)이다. 정이천이 말하였다: “사람의 과실이란 각기 그 류(類)대로 하는 것이니, 군자는 항시 후(厚)한 데서 실수를 범하고 소인은 항시 박(薄)한 데서 실수를 범한다. 군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서 허물을 범하고, 소인은 잔인한 데서 허물을 범한다.”
黨, 類也. ○ 程子曰: “人之過也, 各於其類. 君子常失於厚, 小人常失於薄; 君子過於愛, 小人過於忍.”
윤언명이 말하였다: “여기에서 관찰한다면 사람의 인하고 불인함을 알 수 있다.”
○ 尹氏曰: “於此觀之, 則人之仁不仁可知矣.”
○ 오역이 말하였다: “후한의 오우(吳祐)가 말하기를, ‘하급관리 손성이 아버지로 인하여 독직의 오명을 쓰게 되었구나. 『논어』에 ‘과실을 보면 그 인함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라고 말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 吳氏曰: “後漢吳祐謂: ‘掾以親故, 受汙辱之名, 所謂觀過知仁’ 是也.”
나 주희가 생각건대, 이것은 단지 사람이 어쩌다가 과실을 범하게 되면, 그것에 즉하여 그 사람의 후박(厚薄)을 알 수 있다는 것이지, 반드시 사람이 과실을 범하는 것을 기다린 후에 비로소 어진지 어질지 못한지를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愚按: 此亦但言人雖有過, 猶可卽此而知其厚薄, 非謂必俟其有過, 而後賢否可知也.
주희의 걱정이 참으로 소상하다. 오우(吳祐)의 이야기는 『후한서(後漢 書)』 권94, 「오우전(吳祐傳)」에 실려있다. 오우는 자가 계영(季英)이며 진류(陳留, 하남성), 장원(長垣) 사람이다.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벼슬이 주천(酒泉) 태수에 이르렀다. 그의 정사는 인간(仁簡)했으며 백성들의 쟁송(爭訟)을 잘 듣고 항상 자신을 반성했다. 색부(色夫: 하급 세리)인 손성(孫性)이라는 자가 백성으로부터 과도하게 세금을 부과했는데 그 이유인즉 아버님께 시장에서 좋은 옷을 사서 갖다드리기 위함이었다. 아버지께 그 옷을 진(進)하자, 아버지가 ‘임금을 모시는 자가 어찌 사기를 칠 수 있느냐’하고 옷을 들고 와서 아들의 잘못을 관청에 고발하였다. 사또인 오우가 자세한 전말을 조사하고 손성 부친의 말을 듣고 한 말이 바로 여기 오역이 인용한 것이다. 오우는 판결을 내리면서 이 『논어』의 구절을 인용하고 아들로 하여금 옷을 들고 가서 아버지에게 다시 드리고 사죄케 하였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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