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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2부 자람 - 4장 세상의 중심이었던 중국, 안방의 세계 제국: 해프닝으로 끝난 복고주의②: 당현종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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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2부 자람 - 4장 세상의 중심이었던 중국, 안방의 세계 제국: 해프닝으로 끝난 복고주의②: 당현종

건방진방랑자 2021. 6. 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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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프닝으로 끝난 복고주의

 

 

여제가 이상하다면 아예 나라를 바꿔주마. 제위에 오른 무후는 대담하게도 신성황제(神聖皇帝)라고 자칭하면서 국호를 주()로 바꾸었다(여기서도 주나라는 중국 역대 왕조들의 이상향이자 영원한 고향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을 가리켜 무주혁명(武周革命)이라고도 부르는데, 제위를 잠시 찬탈한 것일 뿐 실제로 혁명적인 성격은 없었다.

 

측천무후의 지배는 15년간에 불과했다. 705년에는 아들 중종이 측천무후를 퇴위시키고 다시 황제로 복귀하면서 무후의 정치 실험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비해 그녀의 치세는 이후의 권력 구조에 상당히 의미심장한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첫째는 측천무후로 인해 관롱(關隴) 집단이 몰락했다는 점이다. 관롱 집단이란 관중(關中)과 농서(隴西) 일대의 귀족 집단을 가리키는데, 여기에는 오랜 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한족화된 선비족의 귀족 세력도 포함되어 있었다. 수와 당의 건국자인 양견과 이연, 나아가 두 나라의 개국공신 세력도 대부분 관롱 집단의 소속이었다. 개국한 지도 한참 되는 마당에 개국공신이라니, 눈에 거슬리는 그들을 측천무후가 가만 놓아둘 리 없다. 무후는 그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자신의 무씨 일가를 중용하는데(무후가 유달리 과거제에 집착한 이유도 그들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로 여기서 두 번째 후유증이 생긴다. 바로 외척 세력의 성장이다. 무씨 일가 자체는 중종이 복위하면서 몰락했지만, 이를 계기로 외척 권력이 당의 역사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일찍이 한 제국이 멸망한 것도 외척과 환관 정치가 주요 원인이었는데, 당 제국도 비슷한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측천무후 시대의 직접적 후유증은 무후를 폐위시키고 복위한 중종 대에 벌써 드러난다. 그것도 바로 전의 폐해를 그대로 답습한다. 무후의 며느리이자 중종의 황후인 위()씨가 정치에 관여하다 남편까지 독살한 다음 권력을 장악하고 일가붙이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녀도 시어머니처럼 아예 제위를 차지해버릴까 고려하던 중 예종의 아들 이융기(李隆基)가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복위시킨다. 그렇게 태자의 지위를 되찾은 이융기는 2년 뒤 아버지가 죽자 제위에 오른다. 그가 바로 당의 6대 황제인 현종(玄宗, 재위 712~756)이다.

 

 

최초의 여제 한 고조 시절 고조의 황후인 여태후가 세도를 부린 일이 있었지만, 정식 여제로는 당의 측천무후가 최초다. 온갖 치장에 화려한 옷을 입고 환관들의 보좌를 받으며 걷는 측천무후의 얼굴에서 첫 여제로서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그녀가 50년 동안이나 권력을 잡은 탓에 이후 제국의 권력 구조는 크게 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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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연표

십팔사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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