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극상의 시대: 윗물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 우리 현대사에서 군사쿠데타의 대명사인 박정희가 온몸으로 증명해준 격언이지만, 그의 까마득한 선배격인 정중부도 역시 그 철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단 출발은 좋았다. 1953년 장성이 되고 나서 8년 동안 겨우 별 하나 늘렸다가 쿠데타 이후 2년 만에 별 두 개를 제 손으로 갖다 붙인 게 박정희라면, 정중부 일당은 한 술 더 떠서 집단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정중부의 벼슬 자체는 종2품인 참지정사(參知政事)에 머물렀지만 드디어 그때까지 ‘신성불가침’이었던 2품의 관문을 뚫은 데다 문관직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제 무관이 오르지 못할 나무는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쿠데타 정권의 근본적인 문제는 정통성의 결여에 있다. 쉽게 말해 한 번 하극상이 용인되었으니 그 다음의 하극상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권위로 권력을 유지하지 못하니까 모든 일에 힘을 앞세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정중부는 젊은 시절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는 데다 나이도 있는 만큼 모든 일에 조심했다. 문관 최고직인 시중 자리까지 욕심내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신중한 태도는 부하들에게까지 전달되지 못한다. 사실 쿠데타로 집권한 자가 비둘기처럼 군다면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정중부는 점차 상징적인 존재로 물러나앉고 실권은 매파인 이의방과 이고가 장악하게 된다(사실 쿠데타를 모의하는 과정에서도 두 사람의 입김이 강했다. 수박 놀이에서도 이고가 분을 참지 못하고 현장에서 칼을 빼들려는 것을 정중부가 만류한 바 있다).
성질 급한 두 이씨가 마냥 사이좋게 지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일단 갓 태어난 정권을 안정시킨다는 점에서는 이해관계가 일치했으므로 초기에 그들은 중방(重房)을 사랑방이자 오락실로 삼고 국정을 주무르며 별 마찰 없이 지냈다【중방은 원래 존재하던 군 지휘관들의 회의 기구였는데, 정중부의 난 이후 실질적인 최고 정치기구로 형질이 변경되었다. 중방 정치가 실시되면서 국왕은 상징적인 존재로 물러나고 상장군이 실권을 장악하는 묘한 ‘이중권력’의 군사독재가 자리잡게 되는데, 이 점은 때마침 같은 시기 일본의 정정과도 비슷한 면이 있어 흥미롭다. 12세기 중반 일본에서는 천황의 권위가 무너지고 사무라이 가문들끼리 치열한 내전을 벌이게 된다. 여기서 승리한 미나모토 가문의 요리토모가 1190년 가마쿠라(도쿄 인근)에 최초의 바쿠후를 설치하고 세이이다이쇼군(征大將軍), 즉 쇼군(將軍)이 되면서 바쿠후 정치라는 특유의 무신정권 시대를 여는 것이다. 이후 일본의 바쿠후는 고려의 중방처럼 장군이 지배하는 최고 정치기구가 된다. 또한 일본의 천황은 무신정권 시기 고려의 국왕처럼 명맥은 유지하면서도 무신들의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상징적인 존재로 전락한다. 이웃이지만 서로 교류가 거의 없었던 두 나라의 묘한 일치다】. 1171년에 일부 문ㆍ무관들이 무신정권을 처음으로 비판했을 때는 그들을 모두 잡아죽여 ‘살벌한 우의’를 다지기도 했다. 문제는 한 둥지에 매 두 마리가 함께 살기에는 너무 좁다고 여기는 데도 그들의 의견이 일치했다는 점이다. 식구를 줄이기로 먼저 결심한 것은 이고였고, 선수를 친 것은 이의방이었다. 이고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이의방이 먼저 궁성 밖에서 기다렸다가 이고를 쇠망치로 때려죽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권력은 독점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중방을 룸살롱으로, 정치를 오락으로 이해하고 있는 이의방이 새삼 개과천선할 리는 만무하다. 더구나 정부 내에서 무신정권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었음에도 이의방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딸을 태자비로 집어넣는 고도의(?) 정치 행위를 감행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무신경 덕분이다. 정부 바깥에서 무신정권에 처음으로 도전한 인물은 김보당(金甫當, ?~1173)이었다. 문신으로서 동북병마사였던 그는 1173년 군대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내려와 거제도에 유배되어 있던 의종을 받들고 거사했다. 전직 왕이자 현직 왕의 형이 현직 왕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셈인데, 결과적으로 의종은 유배 생활을 계속하느니만 못했다. 진압군으로 내려온 이의민(李義旼, ?~1196)이라는 자에게 살해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 후유증으로 김보당은 물론이고 다시 수많은 문신들이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떼죽음을 당했다.
반란은 그럭저럭 진압되었지만 이제 고려는 본격적인 하극상의 시대를 맞았다. 전통적인 서열은 이미 무너진 데다가 누구보다 서열을 특히 따지는 문신들도 거의 씨가 말랐을 정도니 나라꼴은 말이 아니다. 이듬해인 1174년에는 서경유수인 조위총(趙位寵, ?~1176)이 들고 일어나 북부 40여 개의 성을 장악하고 개경까지 쳐들어 오는 기세를 떨친다. 비록 개경 점령에는 실패했지만 그는 금나라에까지 구원을 요청하며 서경에서 2년간이나 버텼다(당시 금나라는 40여 개 성을 바치겠다는 조위총의 요구를 거부하고 그가 보낸 사신을 고려 정부에 인계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자 국정의 총책임자도 룸살롱에만 틀어 박혀 있을 순 없게 되었다. 그러나 진압 사령관으로 서경에 간 이의방은 오히려 반군에게 패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정중부의 아들 정균(鄭筠, ?~1179)이 보낸 자객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결국 조위총의 난은 윤인첨(尹鱗瞻)이 맡아서 진압했는데, 그는 바로 윤언이의 아들이었으니 대를 물려가며 서경 세력과 맞싸운 셈이다(문신으로서 어렵게 살아남은 그는 여러 차례 무신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왔는데, 이를 계기로 파평 윤씨 가문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정중부는 아들 덕분에 정권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으나 곧 그 아들 덕분에 안락한 노후를 맞지 못하게 된다. 그 자신은 칠십 줄에 들면서 권력 욕심을 버렸지만 아들 정균의 입장에서는 이제 막 권력의 단맛을 보기 시작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상상력이 부족했을까? 정균은 자신이 죽인 이의방을 본받아 왕실과 혼맥을 맺으려 했다가(그는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이려 했다) 무신 세력 내부에서조차 거센 반발을 산다. 5년 동안 권력을 누리던 정중부 가문은 결국 1179년 스물네 살의 경대승(慶大升, 1154~83)이 일으킨 반란으로 일가가 모두 도륙당하면서 칼로 일어난 죄과를 호되게 받는다.
나이가 적은 것도 특이하지만 경대승은 여러모로 다른 무신들과는 다른 이색적인 인물이다. 그는 음서(蔭敍)를 통해 무관직에 오를 만큼 가문도 좋았고, 정중부의 난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게다가 문신을 적대시하기만 했던 이전의 단순무식한 무신들과 달리 문신들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었다. 그런 탓에 대다수 무신들과 등을 돌리게 된 그는 집권한 직후 중방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새로 도방(都房)을 설치했는데, 이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친위대 조직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것을 알 만큼 균형잡힌 사고를 했던 듯하다. 비록 중방 정치 대신 도방 정치를 열었지만 도방을 오락장으로 전락시키지는 않았고 문신들을 기용하는 데도 인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아버지가 빼앗은 토지를 농민들에게 돌려주어 사람들의 칭송을 받기도 했다). 그는 5년 동안 집권하다가 병으로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만약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아마 무신정권은 단순한 쿠데타 권력에서 벗어나 그 시기 일본의 바쿠후처럼 집권 능력을 갖추게 됐을지도 모른다.
사실 고려 왕실에게 경대승의 죽음은 무신정권을 끝장낼 수도 있는 찬스였다. 그 찬스를 무산시켜 버린 것은 못난 왕 명종이다. 이름만 왕일 뿐 어느덧 꼭두각시로 지내는 데 익숙해진 그는 자신의 팔다리를 묶고 있던 끈이 끊어지자 자유를 누리는 대신 오히려 겁을 집어먹었다. 그래서 명종은 부랴부랴 새 주인을 찾는데, 하필이면 바로 김보당의 난에서 자신의 형 의종을 살해한 이의민이었으니 얄궂지 않을 수 없다(당시 명종은 이의민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그를 불러들였다고 한다). 경대승(慶大升)을 피해 고향인 경주로 달아나 있던 이의민은 이렇게 해서 화려하게 중앙 무대에 복귀했다. 명종은 과연 새 주인을 맞아 만족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의민은 그의 주인 노릇을 끝까지 책임졌다. 자신의 아들들과 더불어 마음껏 권세를 휘둘렀을 뿐 아니라 1196년 그가 최충헌(崔忠獻, 1149~1219)에게 살해당하면서 이듬해 명종도 폐위되었기 때문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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