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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옹야 제육 - 21. 물을 좋아하는 인자와 산을 좋아하는 지자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옹야 제육 - 21. 물을 좋아하는 인자와 산을 좋아하는 지자

건방진방랑자 2021. 6. 2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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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물을 좋아하는 인자와 산을 좋아하는 지자

 

 

6-2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지자(知者)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한다. 지자는 동적이고 인자는 정적이다. 지자는 즐길 줄 알고 인자는 수()할 줄 안다.”
6-21.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소라이(荻生徂徠)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은 공자시대의 말이 아니고[非孔子時辭氣], 공자가 암송했던 고언(古言)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4구절 이 옛날의 법언(法言) 같은 것을 해설한 공자 자신의 주석이라는 것이다. 매우 그럴듯한 분석방식 같지만, 소라이의 이러한 분석방식 자체가 매우 상투적이며, 그가 고언(古言) 운운하는 그 고언이 도무지 무슨 근거가 있는 것인지 아무도 밝힐 수가 없다. 그 자신만의 머리를 맴도는 독단일 때가 많다. 여기서도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말 자체가 그 뒤의 말과 단절되어 생각되어야 할 하등의 고언적 특수성이 엿보이지 않는다. 이 장의 전체맥락이 정확하게 공자가 말한 것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만을 그 뒤의 구절들과 격리시킬 수 있는 하등의 필연성이 없다. 더군다나 언어학적 근거는 전무하다. 지자(知者)와 인자(仁者)의 세 세트를 연속된 하나의 테마 전개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전체 맥락의 흐름상 강조점이 요수ㆍ요산의 첫 세트에 있다기보다는 지자동(知者動), 인자정(仁者靜)’이라고 하는 두 번째 세트에 있다. ()과 정()이라고 하는 개념을 클라이막스의 축으로 해석해야만 앞뒤의 흐름에 확연한 테마가 형성되는 것이다. 전체 언어의 흐름이 아주 째즈적이라 해야 옳다. 명료한 해석을 거부하면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코드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자(知者) 인자(仁者) 코드의 흐름
I 요수(樂水) 요산(樂山) 암시적 프롤로그
II ()
Dynamism)
()
Quietism
클라이막스
III () () 여운 있는 에필로그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테마를 분석해낼 수 있다. 우선 당시 사람들에게 지()와 인()이 거의 대등한 개념으로서 대비적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둘째로 지()를 매우 다이내믹(dynamic)한 것으로 파악하였고, ()을 매우 콰이어티스틱(quietistic)한 것으로 파악하였다는 것이다. 이 동(, Dynamism)과 정(, Quietism)의 분별을 통해 우리는 역으로 지()와 인()에 관한 당대의 관념을 역추리해볼 수가 있는 것이다. 안다고 하는 것은 매우 다이내믹한 삶을 전제로 하는 것이요, 인하다고 하는 것은 매우 정적이고 조용하고 관조적이며 달관된 어떤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자동(知者動), 인자정(仁者靜)’에서 우리가 분석할 수 있는 것은 이 이상의 세부적인 의미규정을 거부한다. 그러나 이미지상 동과 물을, 정과 산을 연결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쉽다. 물은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며 간단의 정지도 없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산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며 모든 가능성을 온축하면서 그 아름다움을 발하는 방식도 매우 은근하고 자족적이다. 산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철따라 느끼고 해석해내는 아름다움일 뿐이며, 산 자신은 그 아름다움을 능동적으로 과시하지 않는다. 요즈음의 스포츠로 말한다면, 산의 이미지는 조용한 하이킹 등산에 비유할 수 있고 물의 이미지는 계곡의 급류를 따라 내려가는 래프팅(rafting)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이킹은 여유로운 전체적 파악이 중요하다. 몇 시간이 걸리며 산세가 어떠하고 식사는 어떻게 하고 등등. 그러나 래프팅은 초를 다투는 판단력과 과감한 결단, 집중력과 체력, 팀웍 등등 하여튼 다이내미즘의 극치라고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동()과 정()을 이해하고 나면 낙()과 수()도 저절로 풀린다. 다이내믹할수록 삶의 순간순간의 즐거움은 극대화될 것이다. 그러나 정적인 전체파악을 더 중시하는 삶은 자연히 수()를 향유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내가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누()가 될 것이다.

 

북한산의 인수봉(仁壽峰)’이라는 거대한 바위의 이름은 바로 이 논어구절에서 유래된 것이다. 우리나라 지명에 담긴 고인들의 깊은 뜻을 한번 되새겨 볼 만하다.

 

 

()’는 거성이다. 앞의 두 구절에 있는 두 개의 은 모든 오교(五敎) 반이다가 될 것이다. 중국발음도 ‘yao’가 된다. 그러나 뒤에 있는 자는 락()으로 발음한다. ()’이란 기뻐하고 좋아 하는 것이다. ‘지자(知者)’는 사리에 달통하여 두루 흘러 응체됨이 없는 인격의 품새가 물과 비슷하기 때문에 요수(樂水, 물을 좋아한다)’라고 한 것이다. ‘인자(仁者)’는 의()와 리()에 편안함을 느끼며 중후하여 방정맞게 움직이지 않는 인격의 품새가 산과 비슷하기 때문에 요산(樂山, 산을 좋아한다)’이라 한 것이다. ‘()’()’은 체()로써 말한 것이고, ‘()’()’는 그 몸체의 나타나는 효과로 말한 것이다. 움직여도 응체됨이 없으므로주역(周易)』 「계사5장에 출전이 있는 말 즐길 줄을 알고, 고요하며 항상스러움이 있는 고로 수()할 줄 안다고 말한 것이다.

, 去聲. , 上二字並五敎反, 下一字音洛. , 喜好也. 知者達於事理而周流無滯, 有似於水, 故樂水; 仁者安於義理而厚重不遷, 有似於山, 故樂山. 靜以體言, 壽以效言也. 動而不括故樂, 靜而有常故壽.

 

정이천이 말하였다: “인과 지를 참으로 깊게 체득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와 같이 멋있게 형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程子曰: “非體仁知之深者, 不能如此形容之.”

 

 

지자(知者)의 다이내믹한 삶을 설명하는 계사동이불괄(動而不括)’ 이라는 말과 연관시켜 설명한 것은 참으로 탁월한 견해이다. () 괘의 상육(上六)의 효()를 풀이한 말인데, 완성시킨 덕을 체현하고 행동하는 사람의 품새를 형용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구문을 보통 지자는 즐기고, 인자는 수한다로 직역하는데, 나는 지자는 즐길 줄 알고, 인자는 수할 줄 안다로 번역하였다. 지자라고 해서 반드시 즐기기만 하는 것도 아니요, 인자라고 해서 반드시 오래 사는 것만도 아니다. 그러한 직역 때문에 오히려 공자의 말이 왜곡되고 뜻이 안 통하는 것이다. 고전이란 일차적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하며,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그 뜻이 료해되고 삶에 의미를 던져주는 것이어야 한다. 논어는 읽혀야 한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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