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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옹야 제육 - 19.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사람에게 말하라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옹야 제육 - 19.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사람에게 말하라

건방진방랑자 2021. 6. 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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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사람에게 말하라

 

 

6-1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지력이 중등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곧바로 고등한 지식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중등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고등한 지식을 곧바로 가르치면 아니 된다.“
6-19. 子曰: “中人以上, 可以語上也; 中人以下, 不可以語上也.”

 

소라이(荻生徂徠)는 송유들이 모든 사람이 다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가설 때문에 이 장의 해석도 그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균일하게 깨우칠 수는 없는 것이며, 성인은 지력이 못 미치는 것을 인간에게 강요하지 않는다고 설파한다. 놀라운 우민(愚民)의 낭설이다. 자신의 기설(奇說)을 위해 공자의 말 그 자체를 왜곡하는 우()을 펼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여기 공자는 근원적으로 인간의 지력의 선천적 불평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교학(敎學)의 방법론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양화(陽貨)3에 상지(上知)와 하우(下愚)는 불이(不移)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어 많은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들지만 그것 또한 교육자로서의 실존적 체험을 토로하고 있는 아주 제한된 의미로 새겨야 할 것이다. 공자는 원칙을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로기온자료들간에 연역적 전제를 일관되게 적용하려는 태도를 지양시켜야 한다. 인간의 지력에 대체로 차등이 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교학의 방법론에 있어서 고등한 지식을 곧바로 지력이 모자라는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많은 부작용을 초래한다. 그러나 공자는 중인(中人)을 상ㆍ하의 모든 지식의 공통분모로 삼고 있다. 이것은 상ㆍ하의 지식 그 자체에 절대적 고정성을 부여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고주에도 왕숙은 이와 같이 말한다.

 

 

중인을 두 번 거론한 것은, 중인은 상으로 올라갈 수도 있고 하로 내려갈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兩擧中人, 以其可上可下也.

 

 

공자는 여기서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을 권유하고 있을 뿐이다. 상ㆍ중ㆍ하의 방편적 설법은 노자에도 나온다. 아마도 이 논어의 파편이 성립할 때에는, 그러한 이야기 방식이 매우 흔한 방편설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근이 높은 상사가 내가 말하는 도를 들으면 그것을 열심히 배우고 실천하려 할 것이다. 중사가 내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 아리송한 모습을 지을 것이다. 지근이 낮은 하사가 내 도를 들으면 깔깔대고 크게 웃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깔깔대고 웃지 않으면 내 도는 도가 되기에 부족하다 (노자 41).

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不笑, 不 足以爲道.

 

 

노자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노자의 인간관에 상ㆍ중ㆍ하의 차등이 있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도() 앞에서의 인간의 평등을 말할 뿐이다.

 

 

이상(以上)’()’은 상성이다. ‘()’는 거성이다. ()’는 말씀해주시는 것이다.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마땅히 상대방의 지근(智根)의 높고 낮음에 따라 친절히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가르침이 쉽게 쏙쏙 들어가 주책없이 건너뛰는 폐단이 없게 될 것이다.

以上之上, 上聲. , 去聲. , 告也. 言敎人者, 當隨其高下而告語之, 則其言易入而無躐等之弊也.

 

장경부가 말하였다: “성인의 도()는 고매하고 정밀한 세계와 거칠고 소략한 세계가 두 길로 나뉘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사람에게 가르침을 베풀 때에는 반드시 그 대상의 재량에 따라 독실하게 한다. 대저 중등 이하의 수준의 사람들은 갑자기 너무 고매한 것을 말해주면 비단 그 말이 먹혀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장차 망령된 생각으로 지식의 단계를 뛰어넘으려 하고 또 자기 자신에게 절실하지 못한 폐단이 생겨나 결국 저열한 수준에 머물고 말 뿐이다. 그러므로 항상 그 사람이 미칠 수 있는 수준에서 말해주어야 하니 이것이 바로 묻기를 절실하게 하고[切問] 가까운 것부터 생각하여[近思], 고원(高遠)한 경지로 점차 나아가게 하는 소이(所以)이다.”

張敬夫曰: “聖人之道, 精粗雖無二致, 但其施敎, 則必因其材而篤焉. 蓋中人以下之質, 驟而語之太高, 非惟不能以入, 且將妄意躐等, 而有不切於身之弊, 亦終於下而已矣. 故就其所及而語之, 是乃所以使之切問近思, 而漸進於高遠也.”

 

 

남헌선생 장경부의 주석이 정곡을 얻고 있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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