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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술이 제칠 - 27. 많이 듣고 많이 보는 것이 지식을 쌓는 길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술이 제칠 - 27. 많이 듣고 많이 보는 것이 지식을 쌓는 길

건방진방랑자 2021. 6. 26.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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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많이 듣고 많이 보는 것이 지식을 쌓는 길

 

 

7-2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대저 소상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지어내는 녀석들이 많다. 나에게는 그러한 삶의 태도가 전혀 없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듣는다. 그리고 그 중에서 훌륭한 것을 택하여 따른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보면서 문제를 인식한다. 이것이야말로 앎의 올바른 차서(次序)일 것이다.”
7-27. 子曰: “蓋有不知而作之者, 我無是也. 多聞擇其善者而從之, 多見而識之, 知之次也.”

 

여기 지어낸다[作之]’는 많은 주석가들이 창작의 의미로 취하는데 공자에게 있어서는 역시 악곡의 창작이 가장 중요한 삶의 테마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지어낸다!’ 이것은 공자의 세태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학인들의 저술이나 예술창작에 대해서도 같은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는 작하지 않아. 나는 우선 많이 듣는다. 그리고 그 중에서 훌륭한 것을 가려 따른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다니면서 많이 본다. 여기 ()’이라는 것을 주희의 주 때문에 무조건 로 읽고 기억한다라고 주석하는데, 그것은 매우 협애한 해석이다. ()의 자형은 본시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을 포함하여, 판별하고 식별하는 인간의 인식능력과 관련되는 것이다. 여기서 공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문견(聞見)의 중요성인데, 본다는 것의 중요성은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인식과 문제의 발견에 있다. 송유들이 자꾸만 서당공부 같은 것을 모델로 삼고 있기 때문에 기억함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공자가 평생 호학의 방법론으로 삼은 것은 필드웍(fieldwork)’이었다. 실제로 듣고 보는 것이었다.

마지막 지지차(知之次)’를 고주 때문에 모두 생이지지(生而知之)’하는 것의 다음 수준에 오는 지식, 즉 생지에 대한 학지(學知)로 보는데, 나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지지차(知之次)’는 문자 그대로 앎의 차서(次序), 앎의 단계, 앎의 방법을 의미한다. 넓은 문건의 구체적 방법을 통하여 최종적 창작의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 앎의 바른 순서라는 것이다. 공자는 작()을 부정하지 않았다. 엉터리 작을 혐오했을 뿐이다.

 

 

은 지()라고 발음한다. 부지이작(不知而作)’은 그 이치를 알지도 못하고 마구 지어내는 것이다. 공자께서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와 같이 마구 지어낸 적은 없다라고 하신 것은 대저 또한 겸손의 말씀이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참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는 것을 우리가 규탐할 수가 있다. ‘()’는 기록하는 것이다여기의 ()’를 모두 기억한다로만 번역하는데, 여기서는 분명히 기록한다는 뜻이다. 가서 보고 채록한다는 것이다. 희가 발음을 로 한다고 했을 때도 기록한다는 뜻을 반영한 것이다. 무엇을 따를 것인가,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기록해 놓으면 좋은 것, 나쁜 것이 모두 다 기록되어 나중에 참고에 대비할 수가 있다. 이와 같이 해놓는 것은 실제로 그 리()를 아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러한 삶에 버금가는 지식이라고는 할 만한 것이다.

, 音志. 不知而作, 不知其理而妄作也. 孔子自言未嘗妄作, 蓋亦謙辭, 然亦可見其無所不知也. , 記也. 所從不可不擇, 記則善惡皆當存之, 以備參考. 如此者雖未能實知其理, 亦可以次於知之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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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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