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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태백 제팔 - 7. 유학자의 삶의 무게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태백 제팔 - 7. 유학자의 삶의 무게

건방진방랑자 2021. 6. 2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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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유학자의 삶의 무게

 

 

8-7. 증자가 말하였다: “선비는 모름지기 드넓고 또 굳세지 않을 수 없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도다. ()을 어깨에 메는 나의 짐으로 삼으니 또한 무겁지 아니 하뇨? 죽어야만 끝날 길이니 또한 멀지 아니 하뇨?”
8-7.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고, 유가의 세속적 휴매니즘 정신의 고매함을 잘 드러내는 명구라 하겠다. 여기서 사()는 일정한 위를 가진 관리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반교양인의 뜻으로 확대되어 있다. ‘()’인간세를 널리 유익하게 한다[홍익인간(弘益人間)]’(삼국유사』 「고조선)()’이며, 지식인의 포용적 삶의 자세를 나타낸다. ‘()’는 의지의 굳셈을 나타낸다. 자기가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을 관철시키는 의지의 철저성을 나타낸다. 포용력과 결연한 의지가 구비되어야 비로소 선비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그러한 홍의(弘毅)함을 잃지 않는 삶의 자세! 과거 유자들의 보편적 가치관이었다. 실로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내가 다녔던, 서울 혜화동 한양성곽 아래 자리잡은 보성고등학교에는 아주 훌륭한 한문선생님이 계셨다. 호가 설악산인(雪嶽山人), 우리나라에서 김부식(金富軾)삼국사기최초로 우리말로 완역한 대한학자였다. 김종권(金鍾權) 선생님은 내가 한문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특별히 귀여워해 주셨다. 김 선생님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3) 담임선생님이셨는데 인자하고 자상하기가 그지 없었다. 우리가 1학년이 되었을 때 선생님께서 우리 교실 뒤에다가 주자권학문(勸學文)이라고 하시면서 우성시(偶成詩)의 대련을 크게 족자로 만들어 걸어 놓으셨다. 학부형 중의 한 분이 이것을 써서 선물했다고 했다.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一寸光陰不可輕 일촌의 광음(시간)이라도 가벼이 보내지 말라.

 

나는 키가 작아 7번이었는데, 교실 오른쪽 첫줄 맨 끝에 앉았기 때문에 바로 내 머리 뒤로 족자의 막대기가 늘어져 덩그렁 덩그렁 소리를 냈다. 그 위에 써있는 글씨를 내가 어찌 외우지 않을 수 있으랴! 일촌광음불가경!

 

未覺池塘春草夢 연못가 푸릇푸릇 봄풀 꿈이 아직 깨지도 않았는데
階前梧葉已秋聲 섬돌 앞 뜨락 오동나무 잎이 이미 가을소리를 내는구나!

 

그리고 김종권 선생님께 어느날 이 장에 있는 증자의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너무도 가슴이 찌잉하는 감동이 느껴졌다. 그날로 집에 가서 나는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을 붓글씨로 써서 책상머리 앞에 붙여 놓았다. 집에 오면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 학교에 가면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나는 결코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이런 훈도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래도 요만큼이라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교육이란 결국 분위기 조성의 문제일 것이다. ‘훈도(薰陶)’란 향기가 천천히 스미는 과정이다. 1때 내 머리 뒷켠에 걸려있었던 일촌광음불가경이라는 절구의 암시가 지금 이 시간까지도 나에게 일촌의 광음도 아껴쓸 줄 아는 생활습관을 길러주었고, 책상머리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이라는 논어의 문구가 홍의(弘毅)한 삶의 자세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도록 만들어주었다면, 교육의 본질이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중ㆍ고교 교사 선생님들께서 한번 깊게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이것은 좀 여담이기는 하지만 여기 보통 주희의 권학문으로 알려져 있는 이 유명한 우성시(偶成詩)는 주희의 작품이 아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 절구를 좋아했기 때문에 대만에 유학가자마자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나온 주자대전(朱子大全)을 사서 이 시의 출처를 아무리 뒤져보았어도 찾을 길이 없었다.

 

2에 우성(偶成) 2편이라는 것이 실려있으나, ‘복독이유공서암유제감사흥회지어운체추차원운(伏讀二劉公瑞巖留題感事興懷至於隕涕追次元韻)’이라는 것이고 전혀 문제의 우성시와 관련 없다. 그리고 주희집 (朱熹集)외집(外集)권학문(勸學文)이 실려있기는 하나,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 있다 말하지 말고, 금년 배우지 않고 내년 있다 말하지 말라. 일월은 가는구나, 나를 기다려주지 않나니. 오호라! 늙고 나면 누구의 허물이랴[물위금일불학이내일(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물위금년불학이내년(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일월서의(日月逝矣), 세불아연(歲不我延). 오호노의(嗚呼老矣), 시수지건(是誰之愆)]?’라는 것으로 매우 소박한 언어로 되어있다. 하여튼 주희의 문집 속에서 이 문제의 우성시를 찾을 길은 없었고, 이것은 내 가슴속에 숙제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최근 일본학계에서 놀라운 발표들이 쏟아져 나왔다.

 

1989년에 야나세 키요시(柳瀨喜代志)이른바 주자의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우성시고(偶成詩考)’라는 논문 속에서 이것은 주자의 시가 아니라, 근세 초기의 일본 선승의 골계시를 모은 골계시문(滑稽詩文)중에 수록된 기소인(奇小人)이라는 시며, 작자명은 알 수가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파문을 던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여튼 이 시가 주희의 작품으로서 등장한 것은 메이지시대 일본의 한문교과서를 시초로 하는 것이다宮本正貫, 中學漢文讀本, 文學社, 明治 34[1901]; 國語漢文同志會 編, 中學漢文讀本, 六盟館, 明治34; 國語漢文硏究會 編, 新編漢文敎科書, 明治書院, 明治 38년 등. 그러니까 1901년 이전에는 문헌상 주자의 작품으로서 이 권학시는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심보감』 「권학편에 이 시가 수록되어 옛날부터 주자의 시로서 전해내려오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권학편1901년 이후에 증보된 것이다. 원래의 명심보감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야나세의 발표 이후로 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잇달았는데 최근의 연구성과는 아사쿠라 히토시(朝倉和)국문학고(國文學考)(廣島大學國語國文學會, 2005. 3.)에 실린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시의 작자는 칸츄우 츄우테이(觀中中諦)일까?’라는 논문이다. 아사쿠라에 의하면 이 시는 오산문학(五山文學)카마쿠라 말기로부터 무로마찌(室町)시대에 걸쳐 쿄오토(京都)ㆍ카마쿠라(鎌倉)의 오산(五山)을 중심으로 일어난 선승(禪僧)들의 한문학(漢文學)의 대가인 임제종의 선승 칸츄우 츄우테이(觀中中諦, 1342~1406)진학재(進學齋)라는 시며, 실제로 칸츄우가 진학재라는 자기의 서재에 편액으로 걸어놓았던 것이라고 한다. 그는 11세기의 송유, 소문사학사(蘇門四學士) 중의 한 사람인 장뢰(張耒, 1054~1114)가 지은 진학재라는 서재를 본따서 자기의 서재를 이름하고 장뢰가 쓴 진학재기(進學齋記)의 정신을 흠모했다 한다. 그 후 이 시는 같은 임제종의 선승 이쇼오 토쿠간(惟肖得巖, 1360~1437)이 선배의 시를 따서 자기의 진학헌(進學軒)’이라는 요사(寮舍)에 걸어 놓았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전승된 시가 선승들간에 골계시로 둔갑하기도 했 고, 그러다가 메이지시대 때 일본 한문교과서에 주희 이름으로 등장하면서, 중국ㆍ한국에까지 크게 유행케 된 것이다.

 

근자에 주희의 작으로서 한ㆍ중ㆍ일에서 가장 많이 암송되었던 권학시의 정체가 결국 일본 무로마찌 시대의 임제종 선승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모택동까지도 즐겨 암송하여 휘호를 남긴 이 시의 진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은 왜곡할 수 없는 학문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최근에 대륙에서 나온 주자전서(朱子全書)(上海古籍出版社,安徽敎育出版社)에는 주자일문변위고록(朱子佚文辨僞考錄)에 이 시가 수록되어 있고, 상기의 사실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이란 너그럽고 폭넓은 것이다. ‘()’는 의지의 강인함이다. 강하게 참는 것이다. ()하지 않으면 그 무게를 감당할 길이 없고, ()하지 않으면 먼 곳에 이를 수 없다.

, 寬廣也. , 强忍也. 非弘不能勝其重, 非毅無以致其遠.

 

()’이라는 것은 사람마음(人心)의 온전한 덕()이니, 반드시 그것을 몸(Mom)으로써 체현하여 힘써 행하고자 한다면, 가히 무겁다고 할 만하다. 한 숨이라도 아직 끊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순간까지 조금이라도 이 뜻이 나태해지는 것을 용납치 아니 한다면, 가히 멀다고 할 만하다.

仁者, 人心之全德, 而必欲以身體而力行之, 可謂重矣. 一息尙存, 此志不容少懈, 可謂遠矣.

 

정이천이 말하였다: “넓기만 하고 굳세지 아니 하면 규구(規矩: 행위와 사물의 준칙)가 없어 바르게 어렵고, 굳세기만 하고 넓지 아니하면 좁고 비루하여 인()에 거할 수가 없다.”

程子曰: “弘而不毅, 則無規矩而難立; 毅而不弘, 則隘陋而無以居之.”

 

또 말하였다: “넓고 크고, 또 강하고 굳센 연후에나, 능히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곳에 이를 수 있다.”

又曰: “弘大剛毅, 然後能勝重任而遠到.”

 

 

많은 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 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등의 구절 때문에 무조건 예수만 믿으면 짐을 벗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보다 오리지날한 예수의 로기온 파편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 하다’(10:38)로 되어있다. 물론 양면이 다 있을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죽는 순간까지 예수가 걸머멘 십자가를 나도 똑같이 걸머메고 따라가는 것이다. 어찌 짐 벗고 룰루랄라 하는 것만이 신앙의 본질이겠는가? 마지막 한숨의 순간까지 인()의 짐을 벗지 않고 살아가는 유자의 삶이나, 십자가를 걸머지고 죽음의 행진을 하는 참된 기독교신앙인의 삶에는 모종의 공통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 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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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철학 /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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