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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향당 제십 - 13. 임금을 섬길 때의 공자 모습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향당 제십 - 13. 임금을 섬길 때의 공자 모습

건방진방랑자 2021. 6. 27.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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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임금을 섬길 때의 공자 모습

 

 

10-13A. 임금께서 요리된 음식을 보내주시면, 반드시 자리를 바르게 하고 앉아서 본인이 먼저 조금씩 맛을 보시었다. 임금께서 날고기를 보내주시면, 반드시 익혀서 조상제단에 바치시었다. 임금께서 산 짐승을 보내주시면, 반드시 집에서 기르셨다.
10-13A. 君賜食, 必正席先嘗之; 君賜腥, 必熟而薦之; 君賜生, 必畜之.

 

앞에서 이미 ()’의 문제는 이야기를 하였다. 자리를 깔고 그 위에 앉는 것이다[, 猶坐也. 황소]. ‘상지(嘗之)’는 단지 맛을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조금씩 일부를 떼어 먹는 것이다. 독이 있는지 없는지, 집으로 가져오는 과정에서 상하지나 않았는지, 자기 몸으로 확인한 다음에 자기 집안의 권속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자기가 먼저 먹은 음식은 사당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 식구들과 같이 나누어 먹는 것이다. 일가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독성을 자기 몸으로 실 험하는 정신은 모든 리더십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날고기가 오며는 잘 익혀서 가묘의 선조들에게 먼저 드린다. 가묘의 선조들도 하나의 식구라는 개념 속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이러한 행태가 쉽게 수긍이 간다. 어른에게 먼저 드리는 것이다.

 

살아있는 가축이 오며는 집에서 기른다. 황소는 다음의 제사 때 희생으로 충당할 때까지 기른다로 되어있다. 요새 감각으로는 그냥 기른다고 하면 보다 참신한 느낌이 들 것이다. 신주는 생명의 존중으로만 맥락을 잡았다.

 

 

요리된 하사 음식은 먹다 남은 찌꺼기일 수도 있으므로 조상께는 올리지 않는다. ‘정석(正席)’선상(先嘗)’은 모두 임금을 실제로 대하듯이 하는 것이다. ‘선상(先嘗, 먼저 맛을 보았다)’이라고 했으니, 그 맛본 나머지 음식은 당연히 즉시 나누어 먹어야 하는 것이다沃案, 제사 후에 제사음식을 다 같이 곧바로 나누어 먹는 것은 동서고 금이 동일하다. 희랍의 신전에서도 신에게 동물의 피를 보이고 일부를 태워 향을 나게 하여 신이 흠향케 하고, 나머지는 각자 제사 지낸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가서 모두 즐겁게 동네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다. ‘()’은 날고기이니, 익혀서 그것을 조상님께 올리는 것은 임금께서 하사하심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축지(畜之)’라고 한 것은 인군(仁君: 어진 임금)의 은혜를 생각함이다. 연고가 없으면 감히 죽이지 않는다沃案. 이 말은 예기』 「왕제편에 자세히 나와있다. ‘諸侯無故不殺牛, 大夫無故不殺羊, 士無故不殺犬豕.

食恐或餕餘, 故不以薦. 正席先嘗, 如對君也. 言先嘗, 則餘當以頒賜矣. , 生肉. 熟而薦之祖考, 榮君賜也. 畜之者, 仁君之惠, 無故不敢殺也.

 

 

요즈음은 음식물이 하도 풍성하여 여기 같이 나누어 먹는다는 뜻이 젊은이들에게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 왜 그렇게 김빠지고 식어빠진 제사밥을 나누어 먹는가 하고. 그러나 옛날에는 모든 사람이 굶주리고 살았다. 서민들은 먹는다 해도 항상 배가 고픈 상태에서 살았다. 그래서 먹는 것이 어디선가 오고, 그것을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10-13B. 임금을 뫼시고 식사를 한자리에서 하실 때에는, 임금께서 제()를 올리기 시작하면 곧 임금보다 먼저 밥숟갈을 뜨시었다.
10-13B. 侍食於君, , 先飯.

 

이것은 임금과 디너를 같이 할 때의 매너이다. 임금이 앞서 말한(10-8J) ()를 시작하면 동시에 공자는 임금보다 먼저 식사를 시작한다. 그것은 공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독시(毒試: 독이 있나 시험하는 것)의 예이다(고주의 입장). 정현 주는 음식이 제대로 된 것인지를 먼저 맛보는 행위라고 했다[若爲先嘗食然也].

 

 

()’은 부안(扶晩) 반이다. ○ 『주례천관(天官) 선부(膳夫)에 이런 말이 있다: “왕은 하루에 한 마리의 희생을 써서 제식을 올리고 한 번의 성찬(盛饌)을 한다. 이때 선부(膳夫: 왕의 맛있는 식사를 관장하는 직책)는 제품(祭品: 제하기 위해 덜어낸 음식)을 바치고, 또 자기가 음식을 모두 맛본다. 그런 연후에 임금이 식사를 시작한다.” 그러므로 임금의 식사를 뫼시는 사람은 군이 제할 동안에 자기는 덩달아 제를 하지 않고 먼저 먹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임금을 위해서 먹을 만한 것들인지를 시험하는 선부의 노릇을 하는 셈이다. 객례(客禮)로서 기다렸다가 먹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沃案. 뫼시고 식사하는 신하는 어디까지나 주에 종속되는 것이지 객이 아니라는 것이다.

, 扶晩反. ○ 『周禮,“王日一擧, 膳夫授祭, 品嘗食, 王乃食”. 故侍食者, 君祭, 則己不祭而先飯. 若爲君嘗食然, 不敢當客禮也.

 

 

주희의 설명이 명료하다.

 

 

10-13C. 공자께서 편찮으시었다. 임금께서 병문안을 오시었다. 이때 공자는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게 하고 누우셨고, 평상복으로 뵐 수 없으므로 조복을 그 위에 얹었고 그리고 또 큰 허리띠(각대)를 걸쳐 놓으셨다.
10-13C. , 君視之, 東首, 加朝服, 拖紳.

 

임금이 공자집으로 직접 병문안 왔을 때의 예법이다. 평상복으로 뵐 수도 없고, 조복을 제대로 차려입을 수도 없으므로 이렇게 하신 것이다. ‘동수(東首)’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고주에 인용된 포함의 설은 남쪽 창 아래[處南牖之下], 신출의 정현 주는 북벽의 아래[北墉下也]. 나는 신주를 따랐다.

 

 

()’는 거성이다. ‘는 도아(徒我) 반이다. 동수(東首)’는 동쪽의 생하는 기운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병이 중하여 드러누워 있기 때문에 새로 옷을 입고 띠를 맬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 그렇다고 평상복을 입은 채 임금을 알현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조복을 몸에 덮었고, 그 위에 또 대대(大帶)를 걸쳐놓은 것이다.

, 去聲. , 徒我反. 東首, 以受生氣也. 病臥不能著衣束帶, 又不可以褻服見君, 故加朝服於身, 又引大帶於上也.

 

 

공자시대의 임금과 신하 관계의 자유로움을 말해준다. 우리나라 조선 왕조 때만 해도 임금이 신하집으로 병문안을 못 간다는 원칙은 없었으나 거의 그런 일이 없었다. 어의나 승지를 보내었고 본인이 직접 행차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춘추시대는 군신관계는 보다 자유롭다. 안자춘추에 보면 제나라 경공이 밤에 술 마시다가 술친구 하기 위해 안영(晏嬰) 집을 찾아가는 장면도 있다. 이러한 장면이 드라마적 날조가 아니라, 리얼한 고사에 기초하고 있다고 사료된다.

 

 

10-13D. 임금께서 명하여 부르시면, 말에 마구를 채우는 것을 기다리지 않으시고, 그냥 앞서 걸어 나가시었다.
10-13D. 君命召, 不俟駕行矣.

 

공자시대에는 말 위에 타는 습속이 없었다. 모두 수레를 타는 것이다. 그래서 안장을 얹는다든가 멍에를 얹는다는 식으로 번역하면 안된다(말은 소와 달리 멍에를 얹지 않는다). 참으로 본받을 만한 공자의 진지한 삶의 태도이다. 먼저 급히 걸어나가면 수레가 따라왔을 것이다. 그러면 올라탔다. 운동도 되고 성의도 보이고 시간도 절약되고 하여튼 공자는 삶의 세목(細目)에 사려가 깊은 사람이다. ‘()’는 마구를 채우다는 동사로 새겨야 한다.

 

 

임금의 명령에는 급히 달려나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먼저 도보로 걸어나가면 마구를 채운 수레가 따라왔다. 이 한 절은 공자가 임금을 섬기는 예를 기록한 것이다.

急趨君命, 行出而駕車隨之. 此一節, 記孔子事君之禮.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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