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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향당 제십 - 11. 다른 사람과 친교를 맺을 때의 공자 모습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향당 제십 - 11. 다른 사람과 친교를 맺을 때의 공자 모습

건방진방랑자 2021. 6. 27.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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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다른 사람과 친교를 맺을 때의 공자 모습

 

 

10-11A. 사람을 다른 나라에 보내어 그곳에 있는 붕우의 안부를 물을 때에는, 그 떠나는 사자에게 두 번이나 절하고 보내시었다.
10-11A. 問人於他邦, 再拜而送之.

 

황소는 다른나라의 군주에게 사신을 보내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공자가 직접 타국의 군주에게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이것은 공자의 사적 사절이며 외국에 있는 친구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유보남 설). 안부를 묻는다는 것은 사람만 보내는 것이 아니고 토산물의 예물을 같이 보낸다. 그리고 그 사신이 떠나기 전에 그 사신에게 재배(再拜)’를 했다는 것은 그 사신에게 절한다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 있는 친구에게 절한다는 뜻이다. 그 공경의 마음을 사절에게 담아 보내는 것이다.

 

옛사람들의 절하는 습관에 관해서도 좀 자세한 이해가 필요하다. 절이란 착지(着地)를 하는 우리식 큰절[稽首]이 있고 착지를 하지 않고 공수(拱手)만 하면서 허리를 굽혀 궁둥이와 머리가 수평이 되는 절이 있고, 단지 공수한 손만을 올리는 절이 있다. 착지를 하지 않는 절을 보통 공수(空首)라고 하는데, ()라 하면 보통 착지의 상황을 가리킨다. 배수(拜首)라 하면 손을 땅에 대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설이 분분하여 여기 재배가 무엇인지는 확정짓기 곤란하다. 실제로 고전의 용례에서 공수(空首)를 배()로 간주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의 배는 착지까지는 가지 않고 공수만 하면서 허리를 굽혀 궁둥이와 머리가 수평이 되는 일종의 공수(空首)였을 것이라고 유보남은 단정짓는다. 일배(一拜)는 기배(奇拜)라고도 하는데, 재배(再拜)는 실제로 사상견례(士相見禮)의 예식으로 그 친구를 만나듯이 하는 것이다. 아주 정중한 인사이다. 그러나 이때 사신이 공자에게 답배(答拜)를 하지는 않는다.

 

 

()’라는 것은 사자를 보내는 예식이다. 마치 친구를 친히 상견하는 듯이 하는 것인데 친구에게 공경을 표하는 것이다.

拜送使者, 如親見之, 敬也.

 

 

10-11B. 노나라의 실권자 계강자가 공자에게 약을 보내왔다. 공자는 그것을 절하고 정중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하시었다: “제가 이 약의 성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감히 마실 수는 없습니다.”
10-11B. 康子饋藥, 拜而受之. : “丘未達, 不敢嘗.”

 

너무도 솔직하고 멋있는 공자의 태도이다. 그리고 권력자에게 대해서 사소한 일이라도 소신을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그 제조과정에서 자기가 콘트롤하지 못한 탕약을 함부로 마실 수는 없다. 지금도 권력의 측근에 있는 자로서 청와대에서 선물 온 약에 대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몇 명이나 있겠는가? 이 명백한 맥락에 대하여 기존의 주석가들은 공자의 이미지를 공순하게만 만들고 싶어하기 때문에, ‘약을 마시지 않겠다는 구절을 명료히 해석하지 않는다. ‘감히 이 약을 맛보지 않겠다[不敢嘗]’라고 말한 것은 먹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우리말은 마시는 것도 먹는다고 표현한다. 서양식으로 꼭 마시고 먹는 것을 구분해 말할 필요가 없다. 마시는 것도 결국 먹는 것이다).

 

더구나 5-21에서 해설했듯이 계강자는 어찌되었든 공자의 숙원이었던 귀로(歸魯)를 성취시켜준 고마운 인물이다. 그리고 2-20, 6-6, 11-6, 12-171819에서 보여지듯이 공자에게 계속 배움을 청한 인물이다. 물론 이 대화들은 모두 귀로 후의 사건이다. 따라서 공자가 약을 받은 사건도 귀로 후의 사건이다. 계강자의 나이를 정확히 알 길은 없다. 추론컨대 한 40세 전후 40세 전후의 계강자와 70세의 노인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공자의 태도는 지엄하다 약에는 독성이 있어 그 약이 어떠한 질병을 치료할지 정확하게 모르는 상황에서는 일단 거절하는 것이 예()였다고 고주는 적당히 얼버무리고 있지만 그것은 낭설이다.

 

요즈음은 한약이 비닐봉지에 담겨져 있어 성분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리고 자기 약이 아닌데도 보약이라고 그냥 먹는 어리석은 자들이 많다. 나는 국가면 허를 소유한 한의사이다. 한약의 문제점은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다. 모르는 약은 가차없이 폐기시켜야 한다. 그리고 수고스럽다 할지라도 탕약은 반드시 약 봉지를 가져다가 자기가 대려서 베로 짜먹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약 대리는 것을 너무 수고스럽게 생각지 말고 그냥 스텐주전자에 한 시간 정도만 작은 불로 끓여 따라 먹어도(약재에 따라 끓이는 시간은 다양해야 한다) 비닐봉지 탕약보다는 훨씬 효능이 좋다. 그리고 약재의 오염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대부분이 중국약재에 의존하는데 그 진실성이 보장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농촌문제를 생각할 때, 우리나라 정부가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한국농토의 상당부분을 고가품 무농약 한약재배지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통문제만 잘 기획하면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한약은 세계적인 상품이고 한국의 토양은 특종한약재에 아주 적합한, 그러니까 효능이 높은 약재를 생산할 수 있는 토질을 보유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튤립 재배만 가지고도 먹고 산다는데, 우리나라는 왜 세계적인 고품격 한약재 생산국이 될 수가 없겠는가? 생각과 기획과 꾸준한 실천이 없이 국가대계를 즉흥적으로 만 일으켜 해결 하려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이 이 민족의 토대를 붕괴시키고 있다. 애석하다.

 

 

범순부가 말하였다: “대저 권력자가 먹는 것을 보내왔을 때, 반드시 맛을 보고 절을 한다. 그러나 약의 성분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면 감히 맛을 볼 수가 없는 것이고, 또 받기만 하고 그것을 먹지 않으면 보내는 사람의 성의를 헛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명료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즉슨, 마실 수 있는 것은 마시고, 마실 수 없는 것은 마시지 않는 그 명확한 삶의 태도가 여기에 다 들어있는 것이다.”

范氏曰: “凡賜食, 必嘗以拜. 藥未達則不敢嘗. 受而不飮, 則虛人之賜, 故告之如此. 然則可飮而飮, 不可飮而不飮, 皆在其中矣.”

 

 

범순부의 주석은 한 술을 더 떠서 결국 그 약을 돌려보냈다고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처리했을까 하는 것은 의문시된다. 다음의 양귀산의 해석이 더 명료하다.

 

 

양중립이 말하였다: “대부가 먹을 것을 선물로 보냈을 때 절하고 그것을 받는 것은 예이다.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맛보지 않는 것은 질병에 걸릴 것을 삼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을 반드시 정확하게 고하는 것은 정직이다.”

楊氏曰: “大夫有賜, 拜而受之, 禮也. 未達不敢嘗, 謹疾也. 必告之, 直也.”

 

이 한 절은 공자가 사람들과 교제할 때의 성의(誠意)를 기록한 것이다.

此一節, 記孔子與人交之誠意.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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