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 칠조개
子使漆雕開仕. 對曰: “吾斯之未能信.” 子說.
說, 音悅.
○ 漆雕開, 孔子弟子, 字子若. 斯, 指此理而言. 信, 謂眞知其如此, 而無毫髮之疑也. 開自言未能如此, 未可以治人, 故夫子說其篤志.
○ 程子曰: “漆雕開已見大意, 故夫子說之.”
又曰: “古人見道分明, 故其言如此.”
謝氏曰: “開之學無可考. 然聖人使之仕, 必其材可以仕矣. 至於心術之微, 則一毫不自得, 不害其爲未信. 此聖人所不能知, 而開自知之. 其材可以仕, 而其器不安於小成, 他日所就, 其可量乎? 夫子所以說之也.”
○ 『孔子家語』 「七十二弟子解」曰: “漆雕開, 蔡人, 字子若. 少孔子十一歲, 習『尚書』, 不樂仕. 孔子曰: ‘子之齒可以仕矣. 時將過,’ 子若報其書曰: ‘吾斯之未能信.’ 孔子悅焉.”
○ 『韓非子』 「顯學篇」曰: “漆雕之議, 不色撓, 不目逃. 行曲則違於臧獲, 行直則怒於諸侯. 世主以爲廉而禮之.”
해석
子使漆雕開仕. 對曰: “吾斯之未能信.” 子說.
공자께서 칠조개로 하여금 벼슬하게 하려 하시니, 칠조개가 “벼슬하는 것에 대하여 자신할 수 없습니다.”라 말하니, 공자께서 기뻐하셨다.
說, 音悅.
○ 漆雕開, 孔子弟子, 字子若.
칠조개는 공자 제자이니, 자는 자약이다.
斯, 指此理而言.
사(斯)는 ‘이 이치’를 가르쳐 말한 것이다.
信, 謂眞知其如此, 而無毫髮之疑也.
신(信)은 참으로 이와 같음을 알아 터럭만큼의 의심도 없는 것이다.
開自言未能如此, 未可以治人,
칠조개는 ‘스스로 이와 같이 능하지 못하여 남을 다스릴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故夫子說其篤志.
부자께서 그의 독실한 뜻을 기뻐한 것이다.
○ 程子曰: “漆雕開已見大意,
정명도가 말했다. “칠조개는 이미 큰 뜻을 드러냈기 때문에
故夫子說之.”
부자는 그것을 기뻐한 것이다.”
又曰: “古人見道分明, 故其言如此.”
또한 “옛사람은 도를 봄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 말이 이와 같다.”라고 말했다.
謝氏曰: “開之學無可考.
사량좌(謝良佐)가 말했다. “칠조개의 학문을 고찰할 수 없다.
然聖人使之仕,
그러나 성인이 그로 하여금 벼슬시키려 했으니,
必其材可以仕矣.
반드시 재주가 벼슬할 만했을 것이다.
至於心術之微, 則一毫不自得,
그러나 심술(心術)의 은미함에 이르러선 터럭만큼의 자득함이 없어
不害其爲未信.
자신할 수 없다고 여겼으니 해가 없다.
此聖人所不能知, 而開自知之.
이것은 성인이 알지 못하는 것인데 칠조개가 스스로 그것을 알았다.
其材可以仕, 而其器不安於小成,
그 재주가 벼슬할 만하지만 그 그릇은 작은 성취에 안주하지 않았으니,
他日所就, 其可量乎? 夫子所以說之也.”
다른 날의 성취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 부자는 그것을 기뻐한 까닭이다.
『공자가어』 「72제자해」에서 말했다.
“漆雕開, 蔡人, 字子若.
“칠조개는 채나라 사람이고 자는 자약이다.
少孔子十一歲, 習『尚書』, 不樂仕.
공자보다 11살 어렸고 『상서』를 익혔으며, 벼슬하길 즐기지 않았다.
孔子曰: ‘子之齒可以仕矣. 時將過,’
공자가 ‘자네 나이가 벼슬할 만하네. 때가 장차 지나려 하네.’라고 하니,
子若報其書曰: ‘吾斯之未能信.’
자약은 그 글에 답장을 보내 ‘저는 벼슬하는 것에 대해 자신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으니,
孔子悅焉.”
공자가 기뻐했다.”
『한비자』 「현학편」에서 말했다.
“漆雕之議, 不色撓, 不目逃.
“칠조개 학파의 의론은 얼굴색을 바꾸지 않으며 눈을 피하지 않았다.
行曲則違於臧獲,
행실이 바르지 않으면 노예에게도 피했지만,
行直則怒於諸侯.
행실이 곧으면 제후에게도 화를 냈다.
世主以爲廉而禮之.”
그러니 군주들이 쳥렴하다 여겨 예로 대우해줬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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