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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2부 1792년 대체 무슨 일이? - 3장 대체 소품문이 뭐길래!, 이옥과 이덕무 작품으로 본 소품체의 특이성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2부 1792년 대체 무슨 일이? - 3장 대체 소품문이 뭐길래!, 이옥과 이덕무 작품으로 본 소품체의 특이성

건방진방랑자 2021. 7. 8.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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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과 이덕무 작품으로 본 소품체의 특이성

 

 

그 가운데서도 대표주자라면, 단연 이옥(李鈺)이덕무(李德懋)일순위로 꼽힐 것이다.

 

 

어린아이가 거울을 보다가 깔깔대며 웃는다. 뒤쪽까지 터져서 그런 줄로만 알고 급히 거울 뒤쪽을 보지만 뒤쪽은 검을 뿐이다. 그러다가 또 깔깔 웃는다. 그러면서도 어째서 밝아지고 어째서 어두워지는지는 묻지 않는다. 묘하구나, 구애됨이 없으니 스승으로 삼을 만하다. 선귤당농소

小孩兒窺鏡, 啞然而笑, 明知透底. 而然急看鏡背, 背黝矣. 又啞然而笑, 不問其何明何暗. 妙哉無礙, 堪爲師.

 

문인이나 시인이 좋은 계절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시 쓰는 어깨에선 산이 솟구치고, 읊조리는 눈동자에 물결이 일어난다. 어금니와 뺨 사이에서 향기가 일고, 입과 입술에선 꽃이 피어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분별하여 따지는 마음을 숨김이 있으면 크게 흠결이 된다. 이목구심서

騷人韻士, 佳辰媚景, 詩肩聳山, 吟眸漾波. 牙頰生香, 口吻開花. 少有隱機, 大是缺典.

 

 

둘 다 이덕무(李德懋)의 것이다. 앞의 글은 어린아이의 발랄함에서 때묻지 않은 자재로움을 보는 것이고, 뒤의 글은 시인과 경치가 어우러져 어깨가 산이 되고 얼굴이 꽃이 되는 무아(無我)’의 경지를 간결하게 제시하고 있다. 들뢰즈/가타리 식으로 말하면, ‘-되기’ ‘-되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삼가(三嘉)에 묏자리를 함께한 열 개의 봉분이 있었다. 전하는 말에, ‘어떤 여자가 시집을 가서 곧 과부가 되어, 장례를 지내고 또 시집가서 다시 과부가 되니 아홉 번 시집을 가서 아홉 번 과부가 되었다. 이에 아홉 지아비를 한 곳에 나란히 묻어두고 자기가 죽어서 옆에 묻히어 모두 열 개의 봉분이 되었다고 하니, 또한 기이하다. 부장(附葬)제도가 있은 이래로 이런 경우는 없었다. 다만 구원(九原, 무덤)에서 다시 살아난다면 누구와 함께 살아갈 것인지 알 수 없다. 구부총(九夫冢)

 

 

이옥(李鈺)봉성문여(鳳城文餘)67편 가운데 하나다. 삼가에 유배되었을 때 그곳 풍속을 두루 스케치한 글을 모은 것이다. ‘문여(文餘)’란 문의 나머지, 곧 정체(正體)가 아닌 자투리글이란 뜻이니 소품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이 글은 제목부터가 충격이다. 구부(九夫), 곧 아홉 지아비라니, 속된 말로 상부살(喪夫煞)이 낄 대로 낀 과부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판소리 여섯 마당 가운데 변강쇠 타령이란 작품이 있다. 작품의 여주인공인 옹녀는 상부살을 타고나 지아비들이 줄초상이 날 뿐 아니라, 가슴만 만져도, 손목만 쥐어도, 나중에 아예 치마만 스쳐도 남자들이 급살을 맞는다. 과장이 좀 심하다 싶었는데, 이 글을 보니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이 여인의 팔자 또한 옹녀 뺨치는 수준 아닌가.

 

물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런 기구한 여인네의 운명을 주목하는 이옥(李鈺)의 시선이다. 이옥은 특이하다 할 정도로 팔자 기박한 여인네들의 삶과 비애를 즐겨 다루었다.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를 다룬 소설 심생전(沈生傳)은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아마도 중세적 글쓰기의 장에서 여성적 목소리가 가장 다양하게 흘러넘친 건 단연 이옥의 글에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되기’, 혹은 슬픈 사랑기계이옥!

 

그리고 그건 단순히 이옥이라는 남성의 트랜스 젠더적 기질의 소산만은 아니다. 그는 이언(俚諺)에서 단호하게 선언한다. “대저 천지만물에 대한 관찰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사람에 대한 관찰은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묘한 것이 없고, 정에 대한 관찰은 남녀의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진실된 것이 없다[夫天地萬物之觀, 莫大於觀於人; 人之觀, 莫妙乎觀於情; 情之觀, 莫眞乎觀乎男女之情].”남녀의 정을 단지 하위개념에 묶어두거나 아니면 아예 봉쇄시켜버리는 중세 철학의 구도를 단숨에 전복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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