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와 의학을 통한 이용후생
그의 관심은 이렇게 벽돌, 가마, 온돌에서 시작하여 수레, 말로 이동한다. 수레와 말은 공간적 한계를 가로지를 수 있는 이동수단이기 때문이다. “대개, 수레는 천리로 이룩되어서 땅 위에 행하는 것이며, 물을 다니는 배요, 움직일 수 있는 방이다. 나라의 쓰임에 수레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시급히 연구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조선에도 수레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조선의 수레는 바퀴가 온전히 둥글지 못하고 바퀴자국이 틀에 들지 않으니, 이는 수레 없음과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사대부들은 “우리나라는 길이 험하여 수레를 쓸 수 없다”고 한다. 언어도단! 수레를 쓰지 않으니 길이 닦이지 않는 것인데, 사태를 거꾸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결론은 “사방이 겨우 몇 천 리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인민의 살림살이가 이다지 가난함은, 한마디로 국내에 수레가 다니지 못하는 까닭”이다. 물산과 자원이 서로 통하지 않고 막혀 있으니, 물량이 달리면 융통할 길이 도무지 없는 것이다.
연암의 이용후생은 대략 이런 정도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 일상에 관한 연암의 관심은 그 스펙트럼이 꽤나 드넓은 편이다. 의학에 관한 것도 그 좋은 예가 된다.
「구외이문(口外異聞)」에는 흥미롭게도 『동의보감』에 관한 진술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책으로 중국에 들어가 다시 출판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오직 『동의보감』 25권만이 성행을 하였는데, 판본이 매우 정밀하고 오묘하다[我東書籍之八梓於中國者 甚罕 獨東醫寶鑑二十五卷盛行 板本精妙].”하고, 그 다음에 능어(凌魚)라는 청나라 학자가 쓴 서문이 실려 있다. 능어에 따르면, 『동의보감』의 체계는 “옛날 사람이 이루어 놓은 법을 좇되 능히 신령스럽게 밝히고, 두 나라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여 사람 몸에 온화하고 따뜻한 빛이 퍼지게 하였다[循古人之成法 而能神而明之 補缺憾於兩間 播煕陽於四大].” 동아시아 의학사에서 『동의보감』이 차지하는 위상을 가늠하기에 충분한 언급이다.
이어지는 연암의 말은 좀 서글프다. “우리 집안에는 훌륭한 의서(醫書)가 없어서 매양 병이 나는 사람이 있으면 사방 이웃에서 빌려서 보았는데, 지금 이 『동의보감』 판본을 보자 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책값 문은(紋銀) 닷 냥을 마련키 어려워, 못내 아쉽고 섭섭하지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余家無善本 每有憂病則四借鄰閈 今覽此本 甚欲買取 而難辦五兩紋銀 齎悵而歸].” 조선에서 나온 책인데 정작조선의 선비는 돈이 없어서 구입하지 못하는 아이러니!
조선시대는 의사도, 병원도, 약도 부족한 시대였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모두가 스스로의 몸을 조절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흥미롭게도 여행하는 동안 내내 단골로 출연하는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청심환’이다. 뭔가를 부탁하거나 호의를 표시할 때, 청심환을 주면 ‘효과만점’이다. 이쪽에서 주지 않으면, 오히려 중국인들 쪽에서 은근히(혹은 협박조로) 요구하기도 한다. 열하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 관내에 들렀을 땐, 중들이 청심환을 얻기 위해 연암을 도둑으로 몰기도 했을 정도다. 이 정도면 화폐이자 증여물로서 손색이 없다. 대체 중국인들은 왜 청심환에 그토록 열광하는 걸까? 이유인즉, 중국에도 청심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짝퉁이 수두룩한 데 비해, 당시 조선은 국가가 청심환 조제를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 청심환이야말로 ‘진짜배기’였다는 것.
아울러 연암이 자가요법으로 질병을 다스리는 대목들도 흥미롭다. 예컨대, 「일신수필(馹汛隨筆)」의 한 대목에선 더위를 잔뜩 먹은 날, “잠자리에 들 때 큰 마늘을 갈아 소주에 타서 마셨더니 그제야 배가 가라앉아 편안히 잘 수 있었다[臨臥時 磨大蒜頭 燒酒和服 腹始平穩睡].” 병의 치료는 전적으로 의사와 약물에만 의존하는 지금의 우리와는 아주 다른 일상의 메커니즘이 있었던 것이다. 의학 지식에 대한 남다른 애착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열하에 있을 때, 연암은 윤가전 등 중국 선비들에게 의서들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못해 의서를 구하지 못하고, 다른 책들에 들어 있는 의학 부분을 초록하여 「금료소초(金蓼小抄)」라 이름 붙였다. “내가 살고 있는 연암협 산중에는 의학서적이 없을 뿐 아니라 마땅한 약재도 없다. 이질이나 학질에 걸려도 대체로 어림짐작으로 치료를 하였는데, 때때로 우연히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있었기에, 지금 그 아래에 부록으로 함께 기록하여 보충함으로써 산속에 사는 경험 처방으로 삼는다[余山中無醫方 倂無藥料 凡遇痢瘧 率以臆治 而亦時偶中 則今倂錄于下以補之 爲山居經驗方].”는 것이 그의 명분이었다.
내용들이 아주 재미있다. 예컨대 “산속에서 길을 잃을 염려가 있을 때 향충 하나를 손에 쥐고 가면[山行慮迷 握嚮虫一枚于手中則不迷矣]” 된다거나, “비둘기를 방에 많이 두고 길러, 맑은 새벽에 어린아이로 하여금 방문을 열고 비둘기를 날려 보내게 해 비둘기의 기운을 얼굴에 쪼이면 감질(疳疾)의 기운이 없어진다[淸晨令兒開房放鴿 其氣著面則無疳氣]”거나, “양기를 돋우는 데는 가을잠자리를 잡아 머리와 다리, 날개를 떼어버리고 아주 곱게 갈아서 쌀뜨물에 반죽하여 환을 만들어 먹는다. 세 홉을 먹으면 자식을 생산할 수 있고, 한 되를 먹으면 노인도 젊은 여자와 사랑을 나눌 수 있다[壯陽方 取秋蜻蜓去頭翅足 硏極細 泔水和丸 三合 能生子 一升 老人能媚少姬]”거나, 기타 등등,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황당해 보이지만, 인간의 신체를 자연 및 우주와의 연속성 위에서 파악하고 있는 중세의학의 패러다임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아울러 그의 이용후생이 얼마나 견고한 일상의 지반 위에서 구축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 노새와 수레
중국의 거리에는 탈것들이 정말 다양하다. 자전거를 비롯하여, 인력거, 삼륜거, 수레 등등. 특히 노새와 당나귀가 끄는 수레들이 어엿하게 도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다. 그래서 참, 재미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도로는 너무나 획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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