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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1장 유머는 나의 생명!, 중국 상인들과의 우정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1장 유머는 나의 생명!, 중국 상인들과의 우정

건방진방랑자 2021. 7. 1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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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인들과의 우정

 

 

중국인 친구들에 대한 터치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중국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그저 그런 인물들이지만, 연암이 연출하는 필드안에 들어오는 순간, 빛나는 엑스트라가 된다.

 

예속재(藝粟齋)는 골동품을 다루는 점포로 수재(秀才) 다섯 명이 동업을 하는데, 모두 나이가 젊고 얼굴이 아리따운 청년들이다. 또 가상루(歌商樓)는 먼 곳에서 온 선비들이 운영하는 비단점이다. 연암은 가상루에 들러 사람들을 이끌고 예속재로 가기도 하고, 예속재의 친구들을 꼬드겨 가상루로 가기도 한다. 연령은 10대에서 4, 50대까지 걸쳐 있다. 그런데도 다들 동갑내기들처럼 허물이 없다. 속재필담(粟齋筆談)상루필담(商樓筆談)은 그들과 주고받은 우정의 향연이다.

 

연암이 그들과 접선하는 코드는 매우 단순하다. 붓글씨와 필담. 성경잡지(盛京雜識)에 나오는 이야기다.

 

 

배생이 또 빈 필첩을 꺼내며 써주기를 청한다. 짙은 먹물을 부드러운 붓에 찍어 쓰니 자획이 썩 아름답게 되어, 내 스스로도 이렇게 잘 쓸 줄은 생각도 못했다. 여러 사람들이 크게 감탄과 칭찬을 하는 바람에 술 한잔에 글씨 한 장씩 쓰곤 하니, 붓 돌아가는 모양이 마음대로 종횡무진 누빈다. 밑에 있는 몇 장에는 아주 진한 먹물로 고송괴석을 그리니, 모두들 더욱 기뻐하고 종이와 붓을 다투어 내놓으며 빙 둘러서서 써주기를 청한다.

裴生又出空帖 請書墨 濃毫柔 字畫大佳 余亦不自意如此 諸人大加稱賞 一觴一紙 筆態恣橫 下方數頁 以焦墨畵古松恠石 諸人益喜 爭出紙筆 環立求書

 

 

붓 하나로 이렇게 사람들을 휘어잡을 수 있다니.

 

가끔 음악도 곁들인다. 그들이 연암을 위해 비파를 뜯어주기도 하고, 연암이 그들을 위해 후출사표(後出師表)따위를 소리내어 읽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밤새 노닐다보면 새벽닭이 울고, 연암과 친구들은 교의(交椅, 의자)에 걸터앉은 채 꾸벅꾸벅 졸다가 코를 골며 잠이 든다. 훤히 동틀 무렵에야 놀라 일어나면 모두들 서로 걸상에 의지하여, 베고 눕기도 하며, 혹은 의자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연암은 홀로 두어 잔 해장술을 기울이고는 사관으로 돌아온다.

 

연암은 이 과정에서 최대한 눈높이를 낮추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 이야기들을 통해 이국 장사치들의 인생살이를 듣고 거기서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는 이렇게 묻는다. 대체 무엇 때문에 부모처자와 떨어져 천만 리 먼 타향에서 장사치로 떠도는가?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장사꾼이 되지 않을 경우, 늙고 병들어 죽을 때까지 불과 좁은 고장을 한걸음도 떠나지 못한 채 마치 여름 벌레가 겨울엔 나오지 못하듯이 이 세상을 마칠 테니, 그렇다면 차라리 하루 빨리 죽느니만 못할 거라고, 그래서 남들은 비록 장사를 하류로 치지만, 유유히 사방을 다니어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뜻에 맞는 대로 나아가고 물러설 수 있으며, 방편을 따라 자유롭게 살 수 있으니 장사치로 떠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들은 유목민(nomad)’의 자유에 대해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돋보이는 건 장사치들의 우정론이다. 가족과 고향을 떠난 노마드들에게 친구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그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우정이야말로 인생의 최고덕목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연암과 나이, 국경, 신분을 넘는 진한 우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제 좋은 바람이 불어와 덕망 높은 선생을 우러러 뵙고 촛불을 밝혀 마음껏 토론하니, 어찌 꿈엔들 생각이나 해본 일이겠습니까. 이는 실로 하늘이 맺어준 아름다운 만남이라 할 것입니다.” 천생연분이라고? 이틀밤의 정담으로 만리장성을 쌓은 듯, 애틋하기 그지 없다.

 

연애하는 것도 아닌데 좀 심한 거 아니냐 싶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연애가 특별한 감정으로 공인(?)된 건 어디까지나 근대 이후이다. 도시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사람들이 개인으로 파편화되면서 이른바 내면 이니 자의식이니 하는 기제들이 특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오직 연애만이 그 자리를 채워줄 수 있다는 표상의 전도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아울러 우정을 비롯한 다른 종류의 윤리적 관계들은 모두 이 연애의 주변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의 시대에 있어서 우정은 절대 연애의 보완물이 아니었다. 자신을 알아주는 지기를 위해 생을 송두리째 바치는 숱한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라. 그것은 충이나 효 같은 도덕적 정언명령과도 전혀 다른 종류의 윤리적 테제였다. 가장 드높은 파토스를 수반하는 공명과 촉발의 기제, 그것이 우정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들과 연암이 지금 나누고 있는 정서적 교감은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헤어지는 대목은 그야말로 한 폭의 수묵화다. 그날 아침 심양을 떠날 때 가상루에 들리니, 배생이 홀로 나와 맞고 또 한 친구는 마침 잠이 깊이 들었다. 연암은 손을 들어 배를 작별하고 예속재에 이르니, 전생과 비생이 나와 맞는다. “목수환(목춘)이 한 청년을 데리고 왔다. 청년의 손에는 포도 한 광주리가 들려 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예물로 포도를 가지고 온 모양이다. 나를 향하여 공손히 읍한 뒤에 가까이 다가와서 내 손을 잡는데 마치 알고 지낸 듯 친밀한 느낌이다. 하지만 갈 길이 바빠 이내 손을 들어 작별하고 점방을 떠나 말을 탔다. 그러자 청년은 말 머리에 다가와 두 손으로 포도 광주리를 받쳐 들었다[穆春携一少年 手持一籃葡萄 蓋少年爲見余 持葡萄作面幣也 少年向余肅揖 前執余手 如舊交 但緣行忙 因擧手作別 出舖乘馬 少年至馬首 雙手捧過葡萄籃子 성경잡지].” 연암은 말 위에서 한 송이를 집어든 뒤, 손을 들어 고마움을 표하고 길을 떠났다. 얼마쯤 가다 돌아보니 여러 사람이 여전히 점방 앞에서 연암이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다. ‘청년의 이름이 라도 물어볼걸’, 연암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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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열하일기

문체반정

박지원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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