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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3장 싯달타에서 대승불교까지 - 열반적정과 삶의 종교 본문

고전/불경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3장 싯달타에서 대승불교까지 - 열반적정과 삶의 종교

건방진방랑자 2021. 7. 1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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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적정과 삶의 종교

 

 

다음의 제4명제를 분석해보죠.

 

열반적정(涅槃寂靜, śāntaṃ nirvāṇam)

 

열반적정이라는 명제는 제법무아(제법에는 기실 아가 없는 것이다)라는 명제와 또다시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한 측면과도 같은 것이죠. 제행무상과 일체개고가 한 쌍이라면, 제법무아와 열반적정은 또다시 한 쌍이 되지요. 제법이 무아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열반에 들게 되어 고요하고 편안한 삶을 살게 된다, 이 말이지요.

 

열반(涅槃)’이라는 말은 니르바나(nirvāṇam)’라는 말의 음역입니다. ~ , 제가 가사를 쓰고 제 친구 박범훈이 곡을 만들고 박애리가 노래 부른 니르바나라는 작품이 유튜브에 올라가 있는데 그것을 보셨나요?(20186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초연, BTN 제작, 297, ‘박범훈 니르바나로 치면 나온다). 이 노래처럼 니르바나의 의미를 심오하고 신나게 전달하고 있는 작품이 없어요. 박범훈의 작곡, 박애리의 노래가 다 최상을 달리고 있습니다. 꼭 보세요! 가사가 같이 나오기 때문에 정말 재미있어요. 베토벤의 나인 심포니를 능가하는 우리음악의 힘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니르바나니로다(nirodha)’라는 것과 같은 어근의 말인데, ‘끈다[]’는 의미죠. 뭘 끄나요? 불을 끄는 것이죠. 불이란 무엇일까요? 번뇌를 일으키는 욕망의 불길이지요. 우리는 화난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분노 등의 심리현상을 불과 동일시하는 것은 세계인간언어의 공통인 것 같죠? ‘불같이 화가 난다.’ 오늘 아침 고소소식을 접한 도올도 역시 화가 났겠죠. 불이 훨훨 타오르겠죠. 그대로 두면 신장이 타고 두뇌가 타겠지요. 눈이 타고, 귀가 타고, 코가 타고, 혀가 타고, 몸이 타고, 의지가 타지요(초기경전 마하박가의 표현).

 

주변에서 뭐라 그러겠어요? 참아라! 참아라! 가라앉혀라! 꺼라! 꺼라! 조용해져라! 고요해져라!

 

불교를 이론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흔히 열반을 죽음과 연결시키죠. 그래서 불교계에서는 사람 죽는 것을 열반에 든다(入寂, 入滅)’고 해요. 그런데 사실 이런 해석은 엉터리 해석이에요. 죽으면 누구나 적정(寂靜, 적막하고 고요하다)해집니다. 열반을 강조하기 때문에 불교를 죽음의 종교(Religion of Death)’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나 불교는 죽음의 종교가 아니라, 삶의 종교(Religion of Life)입니다. 열반은 죽음의 상태가 아니라 삶의 상태, 즉 번뇌의 불길이 다 사라진 고요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죠. 제법이 무아인 것처럼 깊게 투철하게 확철하게 깨달은 사람은 열반의 상태에 들어가서 고요한 삶을 살게 된다는 뜻이지요.

 

자아! 4법인을 한번 정리해봅시다.

 

 

움직이는 모든 현상은 항상됨이 없다.
인과에 의해 끊임없이 변한다.
모든 것이 고()! ~ 고통스럽다!
모든 다르마는 아()가 없다. 주체가 없다!
자기동일성의 지속이 없다!
번뇌의 불길을 끄자!
그러면 고요하고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게 불교의 알파 - 오메가입니다. 불교의 전부입니다. 불교에 관한 모든 명제는 이 4가지 구라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아니! 불교가 이렇게 쉽단 말이오?

 

 

인용

목차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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