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천송반야경』의 유일한 조형과 대승불교의 출발
『도행반야경』은 현존하는 『8천송반야경』의 유일한 조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도행반야경』을 번역한 지참(支讖, 지루가참의 약칭)은 월씨국에 『8천송반야경』의 산스크리트 원본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 원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8천송반야경』의 원형의 모습을 우리는 『도행반야경』에 의해 추론할 수 있을 뿐입니다. 현존하는 한역본 『도행반야경』을 거꾸로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면 『8천송반야경』의 원래 모습을 알 수 있겠다는 것이죠. 그러나 과연 지루가참이 산스크리트 원본을 문자 그대로 직역했을 것인가?
사계의 대학자인 카지야마 유우이찌(梶山雄一, 1925~2004)【경도대학 철학과 출신의 불교학자. 경도대학 문학부 교수로서 경도학파를 이끌었다. 대승불전에 있어서의 공(空)사상 연구의 제1인자】는 『8천송반야경』의 유일한 고본이 『도행반야경』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으나, 양자 사이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지참(支讖)은 『8천송반야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중국적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맥락을 과감하게 첨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도행반야경』은 번역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창조라는 것이죠.
『도행반야경』의 내용이 궁금한 사람은 동국역경원에서 나온 김수진 번역의 『도행반야경』을 참고하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10권30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의 제3품, 제1의 「도행품(道行品)」, 제2의 「난문품(難問品)」, 제3의 「공덕품(功德品)」이 반야경의 프로토타입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 3품을 합하여 보통 서분(序分)이라 말합니다. 이 서분이야말로 모든 반야경의 기원을 이룩하는 원초형이라고 말하는 사이구사 미쯔요시(三枝充悳, 1923~2010)【동경대학 철학과 졸업. 뮌헨대학 철학박사. 쓰쿠바대학에서 교편 잡다. 훌륭한 불교학자】 교수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아~ 얘기하다보니 이야기가 너무 전문적으로 흘러 재미가 없어진 감이 있군요.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대장경 전체를 펼쳐놓고 얘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여러분께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다 전달되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먼저 왜 반야경 얘기를 하게 되었는지를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간결하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야경의 성립은 ‘대승불교의 출발’을 의미한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을 여러분께 상기시켜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반야경이 성립하면서 대승불교라는 것이 생겨났다고 말할 수도 있겠고, ‘대승불교’라는 어떤 새로운 불교운동이 일어나면서 반야경전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대승불교’라는 게 도대체 뭔지, 그리고 또 소승(小乘)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반야경전들과 『반야심경(般若心經)』과의 관계가 무엇인지, 한국의 선불교 얘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반야 얘기로 튀었는지, 이런 것들이 충분히 얘기되어야만, 여러분들이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알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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