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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3장 싯달타에서 대승불교까지 - 초기 수행자들의 엄격한 계율과 한계 본문

고전/불경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3장 싯달타에서 대승불교까지 - 초기 수행자들의 엄격한 계율과 한계

건방진방랑자 2021. 7. 14.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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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수행자들의 엄격한 계율과 한계

 

 

나는 싯달타를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karman)이라든가, 윤회(輪廻, saṃsāra)라든가, 열반(涅槃, nirvaṇa, 니원泥洹이라고도 음사한다) 같은 것은 한국사람들에게 김치와도 같이 인도사람들의 생활 속에 배어있는 아주 기본적인 사유의 틀이고 감정의 원천이지요. 이러한 기본적인 틀에 대하여 싯달타는 조금 혁명적인 생각을 한 것뿐이죠. 그러나 싯달타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위대한 초기 경전들이 결집되었다는 것이고, 또 그 경전의 내용들이 계속 발전적으로 부정되고 확대되어 나갔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죠.

 

싯달타 대각자의 말씀을 직접 들은 사람들,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그러나 이들은 이들 나름대로 한계가 있었습니다. 초기승단의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 요즈음처럼 시건방을 떠는 스님들이 아니었어요. 요즈음 스님들은 끄덕 하면 자기가 성불했다 하고, 대각했다 하고, 비구의 권위를 내세워서 자기존재감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고, 신도들이 엎드려 절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주지니 총무원장이니 조실이니 방장이니 하면서 권좌에 앉기 위해 벼라별 추저분한 싸움을 벌이는 것이 다반사가 되어버렸지만, 초기승단의 비구들은 매우 소박하고 성스러운 맛이 있는 집단이었습니다. 겸손하고 함부로 성불을 운운하지 않는 도덕적 집단이었습니다.

 

도덕적이라 하는 것은 계율이 매우 세분화되고 엄격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출가자와 재가자의 구분이 확실했으며 출가자는 비구(比丘, bhikṣu, 여성출가자는 비구니比丘尼bhikṣuṇī)라 했는데, 비구는 빌어먹는다는 뜻입니다. 비구는 반드시 탁발수행을 해야 하며 물건을 사취할 수가 없습니다. 비구가 된다는 것은 계를 받는다는 것인데, 비구가 지켜야 할 계율이 250가지나 되었습니다(팔리율은 227계조戒條). 요즈음 스님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서 수행했습니다. 그러니 이들의 삶의 목표는 시건방지게 금방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대각자인 싯달타가 남겨놓은 가르침에 따라 훌륭한 삶을 사는 것이 대체적인 수행방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성문(聲聞)ㆍ독각(獨覺)의 소승시대에는 내가 부처가 된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경외감을 유지하지, 함부로 자기도 불타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지요. 결국 모르니까 까부는 거예요.

 

초기불교시대에 수행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위를 아라한(阿羅漢, arhan)이라고 했는데, 한역한 것을 보면 응공(應供)’이라고 했습니다. 공양이나 존경을 받을 만한 응당의 가치가 있는 성자(聖者)라는 뜻이죠. 이것을 줄인 말이 나한(羅漢)’ 이죠. 아라한들이 자신을 부처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초기불교는 부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들로부터 시작된 것인데, 이들의 삶의 목표는 부처님 말씀을 잘 배우고 따르고 계율을 잘 지켜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엄격한 수행을 하다 보니 그들은 소수화되었고 고립화되었고, 범인들이 사는 세계로부터 격리되는 성향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만큼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범접치 못할 본보기는 되었을지언정, 민중과 더불어 구원을 얻는 삶을 향유하지는 못했습니다.

 

 

 

 

인용

목차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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