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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4장 『반야바라밀다심경』 주해 - 제1강 관자재보살에서 도일체고액까지, 관자재, 관세음의 뜻과 기자 이상호 본문

고전/불경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4장 『반야바라밀다심경』 주해 - 제1강 관자재보살에서 도일체고액까지, 관자재, 관세음의 뜻과 기자 이상호

건방진방랑자 2021. 7. 1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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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재, 관세음의 뜻과 기자 이상호

 

 

원래의 이름은 ‘Avalokiteśvara’인데 이것은 보는 것, 관찰하는 것(avalokita)이 자유자재롭다(iśvara)’는 뜻이니까, 사실 관자재보살이라는 현장(玄奘)의 번역이 원의에 충실한 번역입니다. 그러나 라집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라는 번역을 선호했습니다. 묘법연화경을번역할 때도 라집은 관세음과 더불어 관음(觀音)’이라는 역어를 썼습니다. 관세음보살과 관자재보살은 완전히 같은 말입니다. 관자재보살은 원어에 충실한 번역이지만 우리 민중은 라집의 관세음보살이라는 표현을 사랑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소리를 본다가 되어 좀 이상하지만 인도인에게 본다는 것은 심안의 감지, 통찰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주석가들에 의하면 관세음본다보다도 보여준다의 의미가 강하다고 합니다. 세상의 고통스러운 소리들, 그 현실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보살! 그래서 11면의 얼굴을 지닌(온갖 소리를 동시에 들어야 하니까) 보살이 바로 관세음보살이지요. 나는 관세음보살생각하면, 고발뉴스 이상호 군이 생각나요. 이상호 군이야말로 우리시대의 관세음보살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도 기자생활을 오래 해보았지만 기자들은 우선 특권의식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언론이라는 강고한 벽 속에 있어 다치지 않는 존재, 그래서 타인에게 위압적일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사실을 전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기자는 많아도, 이상호처럼 세상의 아픈 소리를 들어야만 기자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숨겨진 소리, 보통사람들에게 가려져서 안 들리는 소리, 그 소리를 항상 찾아나섭니다. 기자는 모름지기 이 시대의 아픔을 대변해야 한다는 사명감 아래 그토록 용감하게 자신을 현장에 던지고 사는 기자는 많지 않습니다. 세월호 속에 사라진 슬픈 소리도 이상호의 대변이 아니었더라면 이토록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상호는 그러한 삶의 자세 때문에 본인이 항상 아픕니다. 고통스러운 소리를 들으면 같이 고통스럽기 때문이죠. 그러한 이상호를 박해하고 그의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 자신이 고소를 당하고 보니 그가 수없이 고소를 당하면서 얼마나 깊은 시련을 겪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이제야 나도 철이 드는 거죠.

 

존경스러운 불교학자 카마타 시게오(鎌田茂雄, 1927~2001동경대학에서 화엄학을 전공하고 동경대학 교수가 되어 많은 학생들을 지도했습니다. 그는 한국불교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죠. 조선불교사(朝鮮佛敎史)등의 저술이 있습니다반야심경(般若心經)을 강론하면서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관세음보살이 뭐 별것이겠냐, 바로 너 자신이다! 네가 스스로 관세음보살이 되지 않으면 이 경전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 이 세상의 아픔을 절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소리는 들리기 시작하는 거다!”

 

주어는 관자재보살이고 동사는 ()’입니다. 행은 실천한다정도의 뜻일 것입니다. ‘()’은 심오하다는 뜻으로 반야바라밀다

수식합니다. 그러면 이런 뜻이 되겠지요.

 

 

관자재보살이 심오한 지혜의 완성을 실천할 때에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여기 때에라는 것은 결코 특정한 시점을 나타내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자재보살은 통시간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나는 초시간적이라는 말은 쓰지 않겠습니다. 대승불교는 시간 속의, 역사 속의 불교이기 때문이죠). 모든 때에 걸쳐서 관세음보살은 심반야바라밀다를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깨달음의 내용은 일시적 명제가 아니라 보편적 명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제의 구속이 없습니다.

 

 

 

 

인용

목차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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