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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序文). 큰 가뭄에 시름 앓던 유민들을 담아내다
己巳歲, 余在茶山草菴, 是歲大旱. 爰自冬春, 至于立秋, 赤地千里, 野無靑草. 六月之初, 流民塞路, 傷心慘目, 如不欲生. 顧負罪竄伏, 未齒人類, 烏昧之奏無階, 銀臺之圖莫獻.
時記所見, 綴爲詩歌. 蓋與寒螿冷蛬, 共作草間之哀鳴, 要其性情之正, 不失天地之和氣, 久而成編, 名之曰田間紀事.
해석
己巳歲, 余在茶山草菴,
기사(1809)년에 나는 다산초당에 있었는데
是歲大旱.
이 해에 크게 가뭄이 들었다.
爰自冬春, 至于立秋,
이에 겨울과 봄으로부터 입추에 이르기까지
赤地千里, 野無靑草.
가문 땅 천리에 들판엔 푸른 풀들이 사라졌다.
六月之初, 流民塞路,
6월 초에 유민들이 길을 가로막아
傷心慘目, 如不欲生.
상심케 하고 처참하여 더 살고 싶지 않은 듯했다.
顧負罪竄伏, 未齒人類,
돌아보면 죄를 짓고 유배 당한 처지라 사람에 나란히 서질 못했기에
烏昧之奏 1無階, 銀臺之圖 2莫獻.
고사리의 아룀을 올리질 못하고 유민도를 드리질 못했다.
時記所見, 綴爲詩歌.
당시에 본 것을 기록하고서 모아 시편을 만들었다.
蓋與寒螿冷蛬, 共作草間之哀鳴,
대체로 추운 쓰르라미와 차가운 귀뚜라미가 함께 풀 사이에서 슬피 울어대는 것을 지은 것이지만
要其性情之正, 不失天地之和氣,
성정의 바름을 요구하고 천지의 온화한 기운을 잃지 않은 것이다.
久而成編, 名之曰田間紀事.
묵혀두어 한 편을 짓고서 그걸 「전간기사(田間紀事)」라 이름지었다.
인용
- 오매지주(烏昧之奏): 오매((烏昧)는 식물의 이름으로 연맥(燕麥)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고, 고사리[蕨]의 일종이라는 설도 있다. 조재삼(趙在三)의 『송남잡지(松南雜識)』 「초목류(草木類)」에서는 오매란 "오늘날 물우(物尤)라 하는 것인데, 산에서 자라고 있으며 반하와 비슷하고 알 같은 뿌리가 있다. 흉년에 캐서 삶아 먹어 배를 채운다. 그러나 독이 있어 부황이 드는 자가 많다. 황산곡(黃山谷)의 「화채원(畫菜園)」에 이르기를, '사대부로 하여금이 맛을 모르게 해서는 안 되며 천하의 백성으로 하여금 이 빛이 있게 해서도 안 될 것이다'라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송(宋)의 명신 범중엄(范仲淹)이 강(江)ㆍ회(淮)지방에 대흉년이 들었는데 안무사(按撫使)로 나가 백성을 구제하고 돌아와 구폐(救弊) 10조를 개진하면서 오매를 함께 올렸다 한다. [본문으로]
- 은대지도(銀臺之圖): 중국 북송의 희녕(熙寧) 6년 (1073) 7월부터 7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사람들이 살기가 어렵게 되었다. 동북지방에 유민들이 길을 메워 그 형상이 갖가지로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정협鄭俠이 이 정경을 목도하고 임금에게 직접 간할 수 없는 형편이어서 유민의 처참한 정황을 그림으로 여실히 그려, 급보(急報)라 가칭하고 역마 편에 은대사(銀臺司)로 올렸다. 임금은 그 그림을 보고 탄식을 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다.(『송사宋史』 「정협전鄭俠傳」 권321) '은대(銀臺)'는 승정원에 해당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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