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정신분열을 대하는 내쉬와 융의 차이
융의 자서전을 휘감는 분위기는 바로 이것이다. ‘나는 내가 어떤 자아로 분열되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 아마 융과 내쉬의 결정적인 차이도 이 부근에서 발원할 것이다. 내쉬의 분열이 무의식과 의식의 단절로 인해 심화된 것이라면 융의 분열은 자신의 분열을 ‘정상성’의 일부로 인정했다. 융은 무의식의 잠재성을 최대한 의식의 활동으로 끌어올리려 했으며, 의식의 시선으로 무의식의 활동을 최대한 가까이서 관찰하려 하는 태도가 정신의학의 시선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아까지도 나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일찍부터 받아들인 융의 경우는 오히려 자기 내부의 분열을 즐겼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로 규정한 까닭도 무의식의 자기실현 과정을 ‘의식’의 프리즘으로 생생히 복원해내는 것을 필생의 과제로 삼은 까닭이었다. 내쉬가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와 ‘필요 없는 정보’로 두뇌 활동을 철저히 구별하면서 의식의 ‘체’에 걸러지지 않은 잔여물을 관찰할 기회를 스스로 박탈했다면, 융은 ‘체’를 치는 행위 자체가 의식의 활동임을, 우리는 매 순간 의식의 검열로 무의식의 활동을 철저히 감시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융은 의식의 ‘체’에서 떨어진 고운 밀가루뿐 아니라 체를 빠져나가지 못한, 즉 의식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자신의 버려진 무의식을 ‘꿈’에서 찾으려 했다. 그리하여 그것이 ‘나만의 비정상성’이 아니라 ‘인류의 집단 무의식’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으로까지 스스로의 이론을 밀어붙였다.
내쉬에게 정신분열이 무의식으로부터 도피하려 했던 천재의 자기파멸적 결과였다면, 융은 자신의 분열조차 ‘정상성’의 징후로 판독하면서 그 분열의 힘을 오히려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긍정적 성과물로 이해하려 노력했다. 즉 융은 무의식의 ‘어두운 부분’까지도, 무의식에 ‘가장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까지도, 자신의 일부로 기꺼이 인정함으로써 무의식의 각종 공격으로부터 일종의 심리적 항체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환자들을 돌보면서 더욱 정교하게 이론화되었다. 그에게 환자들은 ‘정상인과 뭔가 다른 비정상인’이 아니라 정상인의 비정상성과 비정상인의 정상성을 역설적으로 확인케 해주는 ‘우리 안의 타자’였다.
정상인이 자신의 비정상성을 최대한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게 방어하는 것에 비해 ‘비정상인’으로 분류되는 정신질환자들은 오히려 비정상 가운데 내재한 정상성을 보여주는 거울이었던 것이다. 융은 환자들의 각종 증상을 인류의 ‘정상성’의 발현 결과로 보았기 때문에 환자들로부터 항상 ‘인류의 무의식’에 관한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융은 인류의 역사와 신화 연구를 통해 정신 분열의 징후를 ‘집단적 신화’의 차원에서 해석하여 ‘통시적 보편성’을 발견해내려 했고, 현실 속에서는 임상 경험과 사례를 통해 ‘공시적 보편성’을 발견해 가고 있었다.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 등 융의 핵심적인 개념도 이러한 종횡무진의 사례 분석에서 나온 열매였다.
융은 정신병에서 미지의 섬뜩한 무엇, 새롭고 특이한 무언가를 본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존재의 바탕을 발견했다. 융은 자기 자신을 질병의 ‘판단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질병을 판단하는 순간 그는 의사의 권위를 덧씌워 환자의 질병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융은 환자가 연출하고 있는 무의식의 연극 속에서 그 자신을 한 명의 배우로 참여시키고자 노력했다. 모두가 무의식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거나 무의식의 ‘추악함’과 마주하지 않으려고 할 때, 융은 환자들의 총천연색 ‘망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보았다. 융에게 무의식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예술작품이었다.
어떤 환자는 제수이트에게 박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환자는 유대인이 자기를 독살하려 한다고 믿고 있으며, 제3의 환자는 경관이 자기를 뒤쫓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사람들은 환상의 내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이를테면 그냥 일반적으로 ‘피해망상’이라는 식으로 말해버렸다. (……) 프로이트가 1909년 취리히로 나를 방문했을 때 나는 바베트의 사례를 그에게 제시했다. 나중에 그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이토록 추한 여성과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함께 지내는 일을 참아낼 수가 있었단 말이오?” 나는 좀 멍해져서 프로이트를 바라보았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생각은 결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그런 아름다운 망상을 가지고 그토록 재미있는 일들을 이야기해주었으므로, 나는 그녀를 어떤 의미에서는 친구 같은 노파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녀의 괴기한 헛소리의 혼돈 속에서도 인간적인 모습이 나타났다.
-칼 융, 조성기 역, 『기억, 꿈, 사상』, 김영사, 2002, 242~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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