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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올선생 중용강의, 저자 - 5. 천지 코스몰로지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저자 - 5. 천지 코스몰로지

건방진방랑자 2021. 9. 1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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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5. 천지 코스몰로지

 

 

통일제국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기에, 자사작은 아니다

 

, 28금천하 거동궤 서동문 행동륜(今天下 車同軌 書同文 行同倫)’이란 말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아스팔트가 없었으므로 비가 오면 수레바퀴 자국이 깊게 남습니다. 그 바퀴사이의 너비가 안 맞는 마차는 그 길로 다니기가 힘들죠. 그래서 수레바퀴를 높이고 바퀴와 바퀴사이의 간격을 통일해서 수레바퀴가 많이 빠져도 쉽게 다닐 수 있게 했습니다. 옛날 길은 길 자체가 모두 철도(Rail Road)입니다. 즉 흙이 파여서 레일이 생긴 것이지요. 그래서 진시황(B.C 259~210)이 수레의 통행을 수월하게 하려고 이 제국에 존재하는 모든 수레바퀴간 너비를 얼마로 한다하고 결정해 버린 거예요. 그리고 이 거동궤(車同軌)이사(李斯)의 혁명적인 사업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다음 서동문(書同文)이란 것은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육국의 여러 가지 글씨체를 소전(小篆)으로 통일시키는 문자 혁명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서()라는 것은 서체를 말하고 문()이라는 것은 문장이 아니고 글자(Character)입니다.

 

마찬가지로 행동륜(行同倫)은 풍습을 일치시킨 것입니다. 인간의 행동방식까지도 일치를 시킨 것이지요. 그런데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일들은 진시황 이후에 일어난 것이 분명한데, 과연 이 중용(中庸)이 자사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도저히 자사의 작()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26에 보면 천지(天地)를 얘기하면서 재화악이부중(載華嶽而不重)’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스케일이 엄청난 말이지요. ()나라의 촌놈들이 서역에 있는 화악(華嶽)’을 알았을 리가 없습니다. 자사의 작품이라고 한다면 공간적으로도 어색하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말이 가능하려면 전 세계에 대한 인식, 즉 대륙 통일이라는 사건을 바탕으로 한 세계관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중용의 천지 코스몰로지

 

그리고 26천지지도가일언이진야(天地之道可一言而盡也)’라고 시작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우습게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많은 고증학자들이 치밀한 분석을 해도, 서복관(徐復觀) 선생이고 누구이고 간에 이 천지(天地)’라는 글자를 분석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내가 최초로 천지론(天地論)’적 텍스트 크리티시즘을 한 것입니다.

 

논어(論語)에는 천()과 지()가 따로 나오기는 하지만 천지(天地)’라는 말은 없고 맹자(孟子)와 같은 거대한 책에도 天地라는 말이 딱 두 번밖에 안 나옵니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에 보면 유명한 호연지기(浩然之氣)’ 장이 있는데 색우천지지간(塞于天地之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其爲氣也 至大至剛以直養而無害, 則塞于天地之間]. 그런데 이 색우천지지간(塞于天地之間)’이라는 말은 그냥 천지지간(天地之間)’이라는 구절(Phrase)를 빌린 것일 뿐이지 천지 자체에 대한 설명은 아니지요. 단지 주어인 대장부의 기가 천지(天地)에 가득 찬다는 얘기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천지(天地)라는 말에는 반드시 후대에 확립된 음양(陰陽)이라는 인식구조가 깔려 있어요. 음양론적 철학의 인식이 없이 천지(天地)라는 말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논어(論語)맹자(孟子)에 천지(天地)라는 말이 안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중용(中庸)이라는 책을 보면 천지(天地)라는 말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점은, ‘중용(中庸)이 성립할 시기에 사상적으로 다른 패러다임을 반영하는 인식방법이 생겼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장에 보면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도 천지(天地)라는 개념을 정확히 말하는 경우는 아닙니다. ()이라는 말이 있었고 지()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천지(天地)라는 말이 있었을 법은 하지만 천지(天地)라는 것이 하나의 사상체계로서 독립된 개념으로 모든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바탕이 되는 패러다임으로 존재한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리고 맹자(孟子)진심(盡心)에 보면 상하여천지동류(上下與天地同流)’라는 말이 나오지만 이것은 단순한 언급일 뿐 어떤 우주론적 체계 안에서의 발설일 수 없습니다. 맹자(孟子)에 나타나 있는 천지(天地)에 대한 언급은 이게 전부에요.

 

더 말할 게 없습니다. 나는 단적으로 말합니다. 맹자(孟子)라는 서물(書物)에는 천지(天地)코스몰로지가 없다! 맹자(孟子)에는 인간의 덕목에 대한 아규먼트(argument)는 있어도 그 아규먼트가 전혀 천지론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여러분에게 텍스트 크리티시즘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중용(中庸) 30의 제일 처음에 仲尼祖述堯舜라는 말이 있는데, 이런 말도 맹자(孟子) 계열에서 나올 법한 얘기입니다. 그 다음에 헌장문무(憲章文武)’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무는 문왕, 무왕을 말하는데 주나라를 세운 사람들로서 유교의 정통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공자는 나는 동주(東周)를 세우겠다[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고 했죠. 다시 말해서 공자는 하((() 중에서 주나라를 나의 패러다임의 본질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을 잘 보세요. 공자의 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중용(中庸)30의 말이 상율천시 하습수토(上律天時, 下襲水土)’입니다. , 공자의 사상을 한마디로 천지코스몰로지를 가지고 정리해 버린 것이죠. 그런데 이것은 사실 공자사상에 대한 이만저만한 왜곡이 아닌, 참으로 웃기는 얘기입니다. 공자는 전혀 천지사상과 관련이 없거든요. 이런 중용(中庸)의 성격은 공자나 자사로부터 아주 후대에 이른 뒤의 저작임을 분명히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중용(中庸)이라는 책의 탄생은 천지코스몰로지가 보편화된 이후의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나는 이 천지코스몰로지가 텍스트 크리티시즘에 명료한 기준을 제공한다고 봐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천지(天地)라는 말을 가지고 텍스트에 서열을 정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천지론에 관해서 논문을 쓸 때에는 김용옥의 학설로 반드시 인용하고 써 먹어야 합니다. 이것은 내 장사의 밑천이므로 심각한 얘기입니다.(齋生大笑). 시간이 없어서 아직 책으로 발표를 안 했을 뿐, 강의에서 말한 것도 책과 동일한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것을 마치 자기 얘기인 양 훔쳐다 막 쓰지만 외국책들을 보면 그러한 출전에 대한 인식은 문헌이 되었든 말이 되었든 정확합니다. 내 사상을 활용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도둑질은 하지 마세요.

 

맹자(孟子)에는 천하(天下, Under the Heaven=Human World=Society)라는 말이 부지기수(71)로 나옵니다. 맹자(孟子) 사상은 전부 천하(天下), 즉 현실적인 인간사회에 대한 관심입니다. 그에 비해 천지는 우주적 코스몰로지죠. , 천지는 인문과학이고 천하는 사회과학이에요. 맹자(孟子)는 어떤 의미에서 인문과학자가 아니고 사회의 제 문제들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들의 덕목에 대해서 연구하고 주장한 사회과학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진심(盡心)이나 고자(告子)편에는 인간의 성()에 대한 깊은 논의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맹자(孟子)는 사회학자예요. 천하에 대한 관심은 천지에 대한 관심보다 훨씬 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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