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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선생 중용강의, 20장 - 24. 중용의 상하편이 나뉜다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20장 - 24. 중용의 상하편이 나뉜다

건방진방랑자 2021. 9. 19.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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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중용의 상하편이 나뉜다

 

 

凡事豫則立, 不豫則廢. 言前定則不跲, 事前定則不困, 行前定則不疚, 道前定則不窮.
그 하나는 곧 ()’을 말합니다. 모든 일이라는 게 미리 준비해 두면 서고, 미리 준비하지 못하면 어그러진다. 미리 정하면 차질이 없고, 일을 미리 정하면 곤경에 처하는 일이 없고, 행동을 미리 정하면 결함이 없고, ()를 미리 정하면 막히는 일이 없다.
 
凡事, 達道達德九經之屬. , 素定也. , 躓也. , 病也. 此承上文, 言凡事皆欲先立乎誠, 如下文所推是也.
모든 일이란 달도(達道)와 달덕(達德), 그리고 구경(九經)의 종류를 가리킨다. ()는 평소에 정하는 것이다. ()은 넘어진다는 것이다. ()는 병이다. 이 장은 윗 문장을 이어 모든 일이 모두 성()을 세워야 함을 말했다. 아랫 문장은 성()을 미루어 가는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주자 주()예 소정야(豫 素定也)”라고 했는데, ‘()’는 평소에 미리미리 정해두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미리미리 평소에 준비해 두면 제대로 서고, 미리 준비를 해두지 않으면 폐()하게 된다.”

 

언전정즉불겁 사전정즉불곤 행전정즉불구(言前定則不跲 事前定則不困 行前定則不疚)’ ((() 그다음에 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전정즉불궁(道前定則不窮)’ ‘((()’()!

 

 

 

在下位不獲乎上, 民不可得而治矣. 獲乎上有道, 不信乎朋友, 不獲乎上矣; 信乎朋友有道, 不順乎親, 不信乎朋友矣; 順乎親有道, 反諸身不誠, 不順乎親矣; 誠身有道, 不明乎善, 不誠乎身矣.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다스릴 수 없을 것이다.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는 방법이 있으니, 우선 가까운 붕우에게서 신임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에게서 신임을 얻지 못한다. 붕우에게서 신임을 얻는 길이 있으니, 자기 부모에게 불순하면 친구에게 신임을 얻지 못한다. 부모에게 순()하는 길이 있으니, 자기 자신을 반성해 보아서 성실함이 없으면 어버이를 따를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성()하게 하는 데에는 길이 있으니, ()에 밝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성()하게 할 수 없다.
 
此又以在下位者, 推言素定之意. 反諸身不誠, 謂反求諸身而所存所發, 未能眞實而無妄也. 不明乎善, 謂不能察於人心天命之本然, 而眞知至善之所在也.
여기서는 또한 아래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소정(素定)’의 뜻을 미루어 말한 것이다. ‘반저신불성(反諸身不誠)’은 몸에서 돌이켜 구하였지만 보존되고 발설한 것이 진실무망(眞實無妄)하지 않은 것이다. ‘불명호선(不明乎善)’은 인심(人心)과 천명(天命)의 본연을 살펴 참으로 지극한 선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재하위 불획호상 민불가득이치의(在下位 不獲乎上 民不可得而治矣)’ 여기서 불가득(不可得)’ 전체가 무엇을 할 수 없다(can not)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말은 아랫자리(윗사람과 평민 사이의 자리)에 있으면서, 항상 (((()’를 미리 미리 정하여 위로부터는 신임을 얻고 아래로 서민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獲乎上 有道 不信乎朋友 不獲乎上矣 信乎朋友 有道 不順乎親 不信乎朋友矣 順乎親 有道 反諸身不誠 不順乎親矣 誠身 有道 不明乎善 不誠乎身矣

여기에 최초로 ()’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중용(中庸)의 상편과 하편을 잇는 고리가 생긴 것입니다. 중용(中庸)을 상·하로 나눈다면 재하위(在下位)’ 이전은 상편이고 이후부터가 하편에 해당됩니다. 이제 성론(誠論)’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자기 몸에 돌이켜서 성()하지 못하면 부모에게 불순(不順)하다.

 

성신 유도 불명호선 불성호신의(誠身 有道 不明乎善 不誠乎身矣) 몸 성히 잘 지내거라!”라고 할 때의 그 성이 한자에서 온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의미상으로 볼 때, 중용(中庸)에서 말하는 바로 이 ()’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뒤에 나오는 천지론(天地論)’적인 의미로 풀이해 보면, 천지운행의 질서가 늘 꾸준이 그러하듯이 네 몸의 질서도 제대로 흐르다 말다 그러지 말고 항상 제 상태를 유지하거라는 뜻으로 풀이가 된다는 것이다. , “몸을 잘 닦아서[修身], ()한 몸을 유지하거라!”는 뜻이다. 천지의 질서와 내몸의 질서를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느끼는 이런 삶의 태도가 조선인의 현대 언어에도 면면히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소홀히 놓쳐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우리의 둔해져 버린 감수성을 회복시키는 첫 걸음은 우리들이 늘 사용하고 있는 일상 언어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하는 데에 있다. 말이 갖고 있는 중요성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자산을 되찾는 다는 것은 없는 것, 현실적으로 부재하는 것을 재생시키는 게(물론 이런 과제도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한 일은 아니겠으나 너무도 막막하고 단계적으로 볼 때 훨씬 뒷 단계의 과제이다) 아니라,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그 수많은 것들을 인()하게 센시티브하게 다시금 보는 것이다근본적으로 명호선(明乎善)’이라는 데로 가고 있는데, 대학(大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지도 재명명덕(大學之道 在明明德)’이라고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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