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사(人事)는 정으로 이뤄지는가
대충 애성(哀性)과 애정(哀情)이 비교가 되었는데, 성과 정에 대한 깊은 이야기들은 다른 감정들, 즉 노(怒), 희(喜), 락(樂)을 이야기하면서 계속 조금씩 나올 것이다. 하지만 성(性)과 정(情)을 처음으로 비교하는 것이니까, 왜 인사(人事)가 성이 아니라 정으로 행해지는가에 대한 생각을 조금 적어보기로 하자.
조선시대에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이라는 재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절대 속이지 못할 사람’이라고 평했다 한다. 워낙 똑똑하고 직관이 강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이라는 재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차마 속이지 못할 사람’이라고 했다 한다. 워낙 사람이 어질고 바른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덕형보다 이원익을 더 높이 평가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천기(天機)를 느끼는 것은 그 부분이 어두운 다른 체질로는 따라가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 천기(天機)를 느끼고 그대로 전해준다고 해서 사람들이 쉽게 그걸 따라가지는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고집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정(情)을 가지고 노력해서 하는 모습을 보면 차마 미안해서 어느 정도씩은 따라주게 마련이다. 인간 사이의 일은 그래서 정에 의해서, 노력에 의해서 하는 것이 더 잘 이뤄지는 것이다.
애성(哀性)과 애정(哀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할 때, 태양인이 천시(天時)를 다 읽고 말해준다고 해도 사람들이 이를 다 따라가지는 못한다. 어떤 식으로 일을 해도 못 따라가는 사람들이 나오고, 반대로 가는 사람들도 나오게 마련이며, 결과가 나온 뒤에는 불만이 있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것이 태양인의 애성(哀性)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절대’ 불만을 안 가지게 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소양인의 애정(哀情)으로는 감당이 된다. ‘저렇게 열심히 일한 사람을 봐서 불만이 있어도 좀 참자.’ 이렇게 되는 것이다. 소양인의 애정(哀情)이 폭발하면 차마 보기가 너무 애처로우니까 (눈물이라는 건 정말 무서운 무기다). 조금 덧붙이자면, 애정(哀情)을 꼭 폭발시켜야 일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언뜻언뜻 비치는 애정(哀情)만으로도 사람들이 끌려가게 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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