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 문제에서
자, 그럼 질문이다. 태음인과 소양인 중에는 어느 쪽이 파병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을까? 일단 전쟁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가 대세니까, 양쪽 모두 반전(反戰)의 입장을 전제하고 생각해보기 바란다.
앞에서도 이런 식의 질문을 한 번 던졌던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또 함정에 빠지지는 않았기를 바란다. 정답은 ‘그런 부분은 체질에 따라 갈라지는 것이 아니다’이다. 다만 같이 파병에 반대하더라도 태음인과 소양인의 논리가 다르며, 찬성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내세우는 이유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소양인부터 보자. ‘평화와 안전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이다. 따라서 침략 전쟁에 파병하는 것은 보편적 도덕을 위배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대표적인 파병 반대 논리다. 찬성논리는 이렇다. ‘독일이나 프랑스도 다 자국 이익 때문에 반대할 뿐이다. 아직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둘 다 일반론을 중시하는데, ‘일반적’이라는 표현보다는 ‘보편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래야 좀더 ‘타당’해 보이니까. 그런데 파병 자체가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잘 안 따진다. ‘아마 국익에 도움이 될 걸?’ 이런 게 일반 정서니까 굳이 따지려 하지 않는다.
태음인은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먼저 파병 찬성 쪽이다. ‘북핵 위협이나 대미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특수 상황에서 도덕만을 따질 수는 없다.’ 특수라는 단어가 강조된다. 다음은 반대하는 쪽을 보자. ‘이런 XX, 폭탄에 팔다리 잘려나간 애들 사진 좀 봐라. 그런 사진을 보고도 파병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니?’ 개인적인 특수한 경험을 강조한다. 또는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어본 우리나라가 침략 전쟁에 어떻게 나가냐?’ 역시 특수성을 강조하는 논리다.
소양인 | 보편성 | 태음인 | 특수성 |
좀 길기는 하지만, 경험론적 접근이 아주 강조되는 태음적인 논리의 전형을 하나만 더 보자.
‘미국은 인디언의 학살을 통해 자기들은 별로 피를 흘리지 않고 대국을 건설했으며, 자국의 영토가 외국의 침공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인류 역사상 그 정도의 대국을 이뤘던 나라들은 그 건설 과정에서 많은 피를 흘렸기에 어느 정도는 전쟁에 대한 염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그런 것이 없다. 게다가 다른 나라의 보복을 받아본 경험이 없어서 국제적 신의의 배신의 결과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나라이다. 따라서 파병으로 미국의 호의를 사서 대북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받는 것은 언제 부도가 날지 모르는 악성 어음에 불과하다. 오히려 미국이 국제 여론을 무시한 전쟁의 대가가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편이 북한 침공 위협을 줄이는 유일한 길이다.’
역사상 다른 제국들과 미국의 차이점의 강조. 계속 ‘특수한 상황’이라는 쪽에 초점을 맞춰간다. 아무래도 태음인의 논리가 다양하기도 하고 길어지는 경향도 있다. 개인적 경험들을 근거로 내세우니까 각자 자기가 느낀 바에 따라 제각각이 되는 것이다. 또 상대가 보편론을 들고 나올 때는 이야기가 더 길어진다. 특수한 경우를 내세워 사람들이 보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보편이 아님을 증명하려 하니까, 사람들에게 이해시켜야 할 부분이 많아진다. 구체적 상황도 다 설명해야 하고, 결국 논리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