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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애노희락의 심리학, 제2부 체질에 따른 약점과 그 극복, 제11장 인의예지와 체질 - 1. 인과 예의 충돌 본문

책/철학(哲學)

애노희락의 심리학, 제2부 체질에 따른 약점과 그 극복, 제11장 인의예지와 체질 - 1. 인과 예의 충돌

건방진방랑자 2021. 12. 2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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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인의예지와 체질

 

 

앞에서 각 체질별로 가장 타락한 모습에 대해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박정희의 변신을 이야기할 때였다. 그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이 부분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이 내용은 인의예지라는 유교의 기본 덕목과 관련된다. 동양적인 가치관에 중점을 두는 독자에게는 인의예지와의 관련 부분을 언급하는 것이 체질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1. ()과 예()의 충돌

 

 

유교에서는 인간의 덕목으로 인의예지를 꼽는다. 이 모두가 어느 정도 이상의 경지에 가면 서로 부딪히는 일이 없겠지만, 낮은 경지에서는 좀 다르다. ()과 예(), ()와 지()가 서로 부딪히는 경향이 있다.

 

()은 직관적으로 작용한다. 또 인은 나와 가깝고 멀고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 아이가 우물가로 기어가는 걸 어른이 보면 아무 생각이 필요 없다. 그냥 달려가서 아이를 구한다. 내 아이냐 남의 아이냐를 따지지 않고 자연스레 일어나는 감정이다. ()는 좀 다르다. 내 부모와 남의 부모에게 대할 예가 다르다. 당연히 달라야 한다. 부모님이 나에게 의존하는 부분이 이웃 젊은이에게 의존하는 바와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예는 경험적이다.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결국 수양이 낮은 경지에서 인에 너무 치우치면 예를 무시하기가 쉬워진다. 반대로 예에 너무 치우치면 인을 무시하게 된다.

 

예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구는 사람을 비인(鄙人)이라고 한다. ()비열(鄙劣)하다라고 할 때 쓴다비열은 ()’로 더 많이 쓰는데 뜻은 비슷하다. ()의 뜻은 더럽다, 인색하다, 어리석다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요즘 흔히 쓰는 말 중에 고르자면 치사하다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태양인이 타락하면 빠지기 쉬운 모습이 바로 비인이다. 자신의 직관대로 행동하는데, 그것을 주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박정희의 변신을 설명하기 가장 좋은 단어가 바로 비열이다. 자기 나름대로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변신이 주변 사람에게 끼칠 영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가족과의 관계나, 부하를 다루는 면에서도 그런 면이 보인다. 북에서 협상 차 내려 보낸 밀사를 간첩으로 몰아서 죽이는 경지에 가면 예를 무시하는 것이 아주 두드러진다그 밀사가 친형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자신의 판단이 가까운 사람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에게 크게 의존하는 사람에게 신경을 쓰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필요로 하면 중시하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내친다.

 

반면에 대국민 이미지는 상당히 신경 쓴다. 농촌에 가서 같이 어울려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이나 공장 노동자를 격려하는 모습은 무조건 지어낸 모습만은 아니다. 신분을 크게 따지지 않는 소탈함, 대중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돌아서서는 바로 농촌을 파괴하고, 노동자를 탄압했다. 많은 사람과 소탈하게 어울리되 딱 거기까지다. 진짜로 정을 주거나 상대의 처지를 헤아리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예가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비열함은 항상 남의 앞에 서려고 할 때 더욱 심해진다. 강한 것만을 추구하면 제멋대로 하는 마음이 점점 강해져, 결국은 비열함이 심해지는 것이다. 이때까지 설명한 용어들을 쓰자면, 예를 버린다는 것은 벌심(伐心)이 강해진다는 것이고, 항상 남의 앞에만 서려 한다는 것은 절심(竊心)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사심(邪心)벌심(伐心)태행(怠行)절심(竊心)이 동시에 강해져서 나타난 결과가 비열함이다.

 

 

다음은 반대로, 예는 그럭저럭 지키되 인을 무시하는 사람이다. 인을 버리고 심하게 욕심을 부리는 사람을 탐인(貪人)이라 한다. 탐욕(貪慾)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태음인이 타락하면 탐인이 되기 쉽다. 남들과 나누려 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를 다 챙기고 나야 자기 가족을 챙기고, 자기 가족을 다 챙기고 나야 주변 사람을 챙기고, 주변 사람을 다 챙기고 나야 대중을 생각한다. 그런데 그 라는 것이 문제다. 어느 정도를 챙겨야 충분한가는 한도 끝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당나라 때 원재(元載)라는 탐욕이 심한 관리가 죽었는데, 죽은 뒤 창고를 뒤지니 후추가 팔백 가마가 나왔다고 한다. 후추라는 게 양념으로 조금씩 쓰는 것이니, 가족이 평생을 써도 한 가마를 먹기가 힘들 것이다. 그걸 팔백 가마를 모아두었으니, 한시(漢詩)를 쓰는 사람들이 인간의 욕심이 과연 끝이 없다고 할 때마다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대략 천 년 정도 빈정거림을 당한 셈이다. 전두환, 노태우의 퇴임 시 비자금이 몇 천억이었다던데, 이 이야기는 또 얼마나 오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는지.

 

욕심은 모든 것을 지키려 할 때 심해진다. 수구성이 강해지면 욕심이 커진다는 것이다. 치심(侈心)의 뿌리가 사실은 지나친 방어심리라고 설명한 바 있다. 남들이 자신을 못 건드리게 하려고 어깨에 필요 없이 힘을 주는 것이 치심(侈心)의 숨은 동기다. 후추를 팔백 가마나 쌓아놓는 심리가 이해가 되는가? 치심(侈心)이 강해지면 도를 넘는 짓을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인을 버린다는 것은 교심(驕心)이다. 두루 넓게 살피지 못하고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것만을 전부라고 우기는 것이다. 모든 것을 지키려 함은 치심(侈心)이다. 교심(驕心)치심(侈心)이 모두 심해지면 나타나는 모습이 탐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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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사상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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