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은 전쟁터와 같다
주희는 성인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 인간이므로 누구나 육체와 본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성인도 육체적 욕망에서 기원하는 인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고, 나아가 성인이 아닌 일반인도 본성에서 유래하는 도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주희가 말하는 성인이란 도심을 인심의 지배자로 만든 사람이며, 성인이 아닌 일반인은 거꾸로 인심을 도심의 지배자로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인이 되려는 사람은 반드시 삶의 모든 지평에서 출현하는 두 가지 마음의 양태, 즉 도심과 인심을 명확히 구별하고, 나아가 도심으로 하여금 인심의 주인이 되도록 만들어야만 합니다. 그런 까닭에 「중용장구서」 후반부에서 주희는 ‘정일(精一)’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두 가지가 마음속에 섞여 있는데도 다스릴 줄을 모른다면, 위태로운 것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미묘한 것은 더욱 미묘해져서 천리의 공정함이 끝내 인욕의 사사로움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정(精)은 두 가지 사이를 살펴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고, 일(一)은 본심의 올바름을 지켜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에 힘써서 조금도 단절됨이 없도록 하여, 반드시 도심으로 하여금 자신의 주인이 되도록 하고 인심이 매번 도심의 명령을 듣도록 한다면, 위태로운 것은 편안해지고 미묘한 것은 드러나게 되어,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는 경우나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경우에 모자라거나 지나치는 잘못이 없게 될 것이다. 「중용장구서」
二者雜於方寸之間而不知所以治之, 則危者愈危, 微者愈微, 而天理之公, 卒無以勝夫人欲之私矣. 精, 則察夫二者之間而不雜也; 一, 則守其本心之正而不離也. 從事於斯, 無少間斷, 必使道心常爲一身之主, 而人心每聽命焉, 則危者安, 微者著, 而動靜云爲, 自無過不及之差矣.
이자잡어방촌지간이부지소이치지, 즉위자유위, 미자유미, 이천리지공, 졸무이승부인욕지사의. 정, 즉찰부이자지간이부잡야; 일, 즉수기본심지정이불리야. 종사어사, 무소간단, 필사도심상위일신지주, 이인심매청명언, 즉위자안, 미자저, 이동정운위, 자무과불급지차의.
주희의 정일(精一) 공부는 정(精) 공부와 일(一) 공부가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 공부는 내 마음에 동시에 출현한 도심과 인심을 명확히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 공부는 도심으로 하여금 인심을 지배하도록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정 공부가 먼저 이루어져야 일의 공부도 가능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지요. 제사 음식이 앞에 놓여 있는데 몹시 배가 고픕니다. 이때 어른들 몰래 그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과 동시에 누가 보지 않더라도 제사 전에 먹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 ‘먹고 싶은 마음’이 인심이라면, ‘먹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바로 도심에 해당되지요. ‘먹고 싶은 마음’과 ‘먹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명확히 구별하는 것이 바로 주희가 말한 정 공부이며, 도심의 마음이 인심의 마음을 이거 통제하도록 만드는 공부가 바로 일의 공부입니다. 만약 정과 일 공부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면, 다시 말해 ‘먹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보다 강해진다면 ‘먹고 싶은 마음’을 충분히 통제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주희는 정일 공부를 하면 “위태로운 것[人心]은 편안해지고 미묘한 것[道心]은 드러난다”고 설명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왜 주희는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를 통해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강조했을까요? 앞에서 미발의 함양 공부를 강조했을 때 주희는 미발의 상태에서 인간의 본성이 온전히 갖추어져 있다고 긍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그는 육체적 욕망의 계기, 즉 형기지사(形氣之私)의 계기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지요. 다시 말해, 수양 과정에서 육체적 욕망의 개입과 갈등이 문제가 되리란 것을 신중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반면 ‘인심도심설’에서 주희는, 인간이 존재론적으로 본성의 계기와 아울러 육체의 계기를 동시에 갖추고 있는 존재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인에게도 육체적 욕망에서 일어나는 인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주희의 단호한 지적, 그리고 성인도 단 한순간 제대로 사유하지 못하면 곧 광인(狂人)이 될 수 있다는 그의 경계심은, 미발의 함양 공부에서 보여준 낙관적 견해와는 전혀 다른 긴장감을 표출한 것입니다. 아마 만년의 주희는 인간의 윤리적 행위는 이런 심각한 갈등과 자기 번민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점을 보다 분명하게 자각했던 것 같습니다.
말기의 주희 | |
도심(道心) | 인심(人心) |
性命之正 | 形氣之私 |
微妙而難見 | 危殆而不安 |
마음의 두 양태로 표현하며 精ㆍ一 공부를 해야한다고 봄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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