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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주희 - ‘월인천강’의 비유가 가진 난점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주희 - ‘월인천강’의 비유가 가진 난점

건방진방랑자 2022. 3. 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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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의 비유가 가진 난점

 

 

그러나 주희의 이런 관점은 후세에 숱한 비판을 일으킵니다. 그 가운데 주희의 유학 사상에 대한 정약용(丁若鏞)의 비판을 살짝 음미해보기로 하겠습니다.

 

 

후세의 학문은 형체가 없는 것, 형체가 있는 것, 영명한 것, 어리석은 것 등 모든 만물을 하나의 이()에 귀속시켜, 다시는 크고 작고 중심적이고 부수적인 차이를 없게 만들었다. 이른바 하나의 이로부터 시작되어 만 가지로 흩어져 다르게 생성되지만 끝내는 다시 하나의 이로 합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조주선사(趙州禪師)가 말한 모든 존재들은 하나로 귀속된다는 불교 이론과 조금의 차이도 없다. 맹자요의

後世之學, 都把天地萬物無形者有形者靈明者頑蠢者, 竝歸之於一理, 無復大小主客. 所謂始於一理, 中散爲萬殊, 末復合於一理也. 此與趙州萬法歸一之說, 毫髮不差.

후세지학, 도파천지만물무형자유형자영명자완준자, 병귀지어일리, 무부대소주객, 소위시어일리, 중산위만수, 말복합어일리야. 차여조주만법귀일지설, 호발불차.

 

 

물론 주희는 정약용의 비판을 들을 기회가 전혀 없었지요. 두 학자 사이에는 60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이 가로이 있었으니까요. 정약용의 비판 논점은 공맹 이후의 학문, 주자학이 불교 선사들의 세계관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시들이 만법(萬法)은 하나로 귀결된다고 말했듯이, 주자학자들도 이일분수(理一分殊)라는 개념을 통해 다양한 만물과 하나의 이치라는 형이상학을 구성했다고 본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다양한 개체들은 겉으로만 차이가 날 뿐, 결국 하나의 초월적 이()에 의해 모두 동일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따라서 정약용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물의 차이를 없애고 하나로 귀속시켜버린 주자학의 시선이 관념적이라고 비판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바야흐로 이() 중심의 관념적 세계관에서 개체 중심의 경험적 세계관으로 서서히 변화되어가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의 집대성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희는 불교의 본성 이론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사유를 계속 모색했습니다. 마침내 그 노력은 부족하나마 그가 말년에 중용장구서에서 정리한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로 꽃을 피우게 되지요. 그는 내면에 잠재된 본성에 침잠하기보다 인간의 마음에서 출현하는 상반된 두 가지 마음의 충돌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월인천강(月印千江)’이란 형이상학적 비유가 이제 전쟁터라는 윤리학적 비유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인심도심설에서 주희가 기존의 자기 본성 이론 자체를 모두 폐기 처분한 것은 아닙니다. 도심이란 것은 바로 본성이 실현되어 나온 마음을 의미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인심도심설을 통해 주희가 어느 정도 고독한 자기 내면으로부터 탈출한 것은 사실입니다. 인심이나 도심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 갈등하고 대립하는 마음들이기 때문이지요. 주희의 인심도심설이 완전히 개화하려면 시간이 좀더 필요했습니다. 조선의 남쪽 땅 강진이란 곳에서 18년 넘게 유배 생활을 했던 정약용에 이르러서야 주희의 이런 가능성이 가장 분명한 형태로 만개하게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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