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외부 사물의 이치와 같다
정이는 주희가 평생 동안 가장 흠모했던 선배 신유학자였습니다. 정이는 불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불교 이론은 이치에 가깝기 때문에 양주(楊朱)와 묵자(墨子)보다 그 해가 더 심하다. 『하남정씨유서』 13:2.”
정이의 평가가 타당하다면 불교 이론 중 어느 부분이 유학 사상과 가장 근접했던 것일까요? 유학과 불교의 공통점은 모두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정밀한 이론을 가졌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맹자의 성선설이 유학 사상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가 곧 유학 사상에 본성 이론을 도입했기 때문이지요. 불교는 모든 외부적인 사태를 마음으로, 나아가 불성(佛性)으로 수렴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맹자 역시 유학의 다양한 가치 덕목들을 인의예지라는 마음의 본성으로 수렴하고 있습니다.
불교나 맹자의 유학 사상에서 인간의 본성으로 이해했던 내용이 서로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불교가 ‘맑고 깨끗한 마음[淸淨心]’을 인간이 가진 마음의 본성이라고 보았다면, 맹자는 ‘측은지심’ ‘사양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이라는 도덕 감정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보았지요. 그러나 이런 차이점이 있음에도, 이 둘의 수양론은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맹자가 자신의 마음이 지닌 본성을 내성적으로 직관하여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면, 불교 역시 수양을 하기 위해서 일체의 외적 관심을 끊고 벽을 바라보듯이 자기 내면의 불성, 곧 ‘맑고 깨끗한 마음’을 직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점에서 맹자와 마찬가지로 주희도 불교의 수양론과 유사한 내용을 주장했던 것은 아닐까요? 주희가 제안했던 미발의 함양 공부는 자기 내면을 고요하게 만들면서 그 속에 깃든 본성을 밝히려는 것이었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에서 불교의 수양론과 다른 공부 방법을 새롭게 제안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평생 동안 주희를 사로잡았던 하나의 문제였습니다. 정이가 “불교 이론은 이치에 가깝다”고 했던 말은 주희가 반드시 풀어야 할 화두(話頭)였던 셈이지요. 그래서 주희는 죽을 때까지 ‘격물치지(格物致知)’ 공부를 그토록 강조했던 것입니다. 격물치지 공부는 분명 내면적인 공부가 아니라 외향적인 공부였기 때문입니다. 주희는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이(理)를 계속 탐구하면 언젠가 초월적인 이 자체를 직관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격물치지 공부의 마지막 귀결점이 내 마음의 본성을 직관하는 데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격물치지 공부가 표면적으로는 외부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공부처럼 보이지만, 결국 미발함양 공부와 비슷한 귀결점을 갖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왜 이런 문제가 계속 주희의 유학 사상에서 일어나는 것일까요? 함양 공부가 불교적이라서 격물치지 공부를 강조했는데, 왜 자꾸 인간 내면의 본성으로 논의가 끌려 들어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주희가 불교에서 유래한 ‘월인천강(月印千江)’의 비유로 자신의 형이상학 구조를 구성했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에 따르면, 나에게 비친 달그림자나 사물에 비친 달그림자는 결국 모두 하나의 달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하늘에 떠 있는 하나의 달 때문에, 이제 나와 사물은 서로 환원 가능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격물치지의 공부가 처음에 의도했던 사물의 이가 인간의 본성[性]으로 환원될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지요. 흔히 주희의 이런 입장을 ‘성즉리(性卽理)’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곧 내 마음의 본성이 외부 사물의 이치와 같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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