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과 이이의 후배들, 인간과 동물의 본성은 같다
앞에서 보았듯이, 젊은 유학자 기대승의 반발로 시작된 논쟁이 바로 ‘사단칠정논쟁’입니다. 이때 이황은 사단의 마음과 칠정의 마음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윤리적으로 선한 마음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물론 사단의 마음이 다른 마음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이(理)에 의해서 작동하는 것으로 설명되어야만 하겠지요. 바로 이 점을 젊은 유학자 기대승이 집요하게 문제 삼았습니다. 어떻게 기(氣)를 떠나서 이(理)의 작용을 설명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지요. 사실 주희에게 이는 작용하는 것이라기보다 모든 것에 편재하는 순수한 이치였습니다. 이 점에서 기대승의 문제 제기는 범주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이이도 기대승에 이어서 이황의 이런 입장을 여러 각도에서 비판합니다. 사단의 마음은 단지 칠정의 마음 중 윤리적으로 선한 마음만을 지칭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결국 사단이든 칠정이든 모두 동시에 이와 기라는 두 범주에 지배된다는 입장입니다.
이황, 기대승 그리고 이이로 이어지는 논쟁을 통해 조선 유학은 주희 철학 체계의 핵심 주제인 이기(理氣)의 문제를 깊이 숙고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 말기까지 지속된 또 하나의 논쟁이 조선 유학계에 조용히 일어나게 됩니다. 바로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 또는 ‘호락논쟁(湖洛論爭)’이라고 불리는 논쟁입니다. ‘인물성동이논쟁’은, 이 논쟁이 ‘인간의 본성과 동물의 본성이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라는 쟁점으로 벌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반면 ‘호락논쟁’은 논쟁자들이 거주하던 지역의 이름을 따와서 붙여진 명칭입니다. 인간의 본성과 동물의 본성이 다르다고 주장했던 유학자들은 주로 충청도 지역에 살았는데, 이곳을 보통 ‘호서(湖西)’ 지역이라고 불렀습니다. 반면 인간의 본성과 동물의 본성이 같다고 주장했던 유학자들은 주로 한양 부근에 살았는데, 당시 이곳을 ‘낙하(洛下)’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호락논쟁’이란 명칭은 ‘호서’의 ‘호(湖)’와 ‘낙하’의 ‘락(洛)’에서 따온 것입니다.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은 1712년 이간(李柬, 1677~1727)과 한원진(韓元震, 1682~1751)의 논쟁에서 시작됩니다. 이 논쟁을 통해 조선 유학은 드디어 개체의 규정 문제에까지 이기론을 적용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논쟁이 가능했던 것은 주희의 형이상학 체계가 가진 특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희에게서 이(理)는 모든 개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통일성의 원리였습니다. 반면 기(氣)는 모든 개체의 개체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구별의 원리였지요. 따라서 주희는 모든 개체가 이라는 차원에서는 서로 구별되지 않고, 오직 기라는 차원에서만 구별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혹시 기억나는지요? 주희가 이와 기의 관계를 물과 그릇의 관계로 비유했던 것 말입니다. 사실 주희는 개체성과 개별성에 주목하기보다는 통일성에 주목했던 유학자입니다. 이 때문에 그를 형이상학자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만약 누군가 다양한 모양의 그릇에 사로잡혀 그 안에 담겨 있는 물을 둥근 물이나 네모난 물로 각각 규정하려 했다면 주희는 그를 심하게 질책했을지도 모릅니다.
주희의 입장에서 보면, 오직 기의 차원에서만 인간과 동물이 구별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과 동물의 본성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물을 담고 있는 둥근 그릇과 네모난 그릇처럼 모양은 다르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은 똑같은 물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원칙적으로는 인간의 본성과 동물의 본성이 다르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은 동물의 본성과 같다는 이간의 주장은 주희의 입장을 그대로 계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잠시 이간의 말을 들어볼까요?
이(理)가 비록 하나의 근원이라 할지라도 기(氣)는 고르지 못합니다. 음양오행 중 바르고 소통하는 것을 얻어서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 것을 얻어서 동물이 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추세입니다. (…) 사람과 동물 사이에 바르고 소통하는 기와 치우치고 막힌 기라는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만이 홀로 이를 완전히 얻었고 동물의 경우는 반은 얻고 반은 얻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이런 이치의 오류에 대해서는 논할 여유가 없습니다. 『외암유고(巍巖遺稿)』 (4권) 「상수암선생별지(上遂巖先生別紙)」
盖理雖一原, 而氣則不齊. 得二五之正且通者爲人, 偏且塞者爲物, 亦自然之勢. (…) 謂有正偏通塞之不同則可. 謂有人獨盡得, 而物則半得半不得之說, 則其理得失, 姑未暇論.
개리수일원, 이기즉불제. 득이오지정차통자위인, 편차색자위물, 역자연지세. (…) 위유정편통색지불동즉가. 위유인독진득, 이물즉반득반부득지설, 즉기리득실, 고미가론.
지금 살펴본 이간의 주장은 주희의 존재론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어진 개체들이 어떤 개별성을 보이든 간에 개체에 내재된 이(理)는 항상 동일하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네모난 그릇이든 둥근 그릇이든 거기에 담겨 있는 물은 항상 동일한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주희가 생각하는 월인천강(月印千江)의 형이상학이 강조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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