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형과 활용형
샤를마뉴가 프랑크 왕국을 제국으로 건설할 무렵, 유럽의 북쪽에서는 또 다른 변화의 바람이 서서히 불고 있었다. 메르센 조약으로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라는 서유럽의 기본형이 형성될 무렵, 그 바람은 폭풍우로 변해 남쪽으로 밀어닥치고 있었다. 바로 2차 민족대이동, 그러니까 노르만의 민족이 동이 시작된 것이다.
게르만이 그렇듯이, 노르만 역시 하나의 단일민족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당시 북유럽과 스칸디나비아 일대에 살았던 여러 민족을 총칭하는 이름이다 (노르만이라는 말 자체가 ‘북쪽 사람’이라는 뜻이다), 4세기에 시작된 게르만 1차 민족대이동이 서유럽 세계의 ‘기본형’을 확립했다면, 9세기에 진행된 2차 민족대이동은 서유럽 세계의 ‘활용형’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활용’의 주된 결과는 바로 영국과 러시아의 원형이 생겨난 것이다【이쯤에서 당시 유럽 세계의 판도를 한번 그려보는 게 좋겠다. 프랑크가 분열되면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원형이 생겼다. 그 동쪽, 즉 중부 유럽에는 아직 뚜렷한 국가 형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부족국가 형식의 여러 왕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남유럽은 기본적으로 이슬람권이었다. 이슬람 세력은 에스파냐를 중심으로 사르데냐와 코르시카, 시칠리아, 나아가 이탈리아 남부까지 장악하고 있었다(이탈리아 중부의 교황령까지는 진출하지 못했다). 동유럽은 물론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였으므로 남은 곳은 브리타니아와 북유럽뿐인데, 여기에 각각 영국과 러시아,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형성된 것이 바로 2차 민족대이동 시기다(중부 유럽의 판세도 이 무렵에 결정된다). 따라서 대략 10~11세기부터는 오늘날과 비슷한 유럽국가들이 유럽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이렇게 500년의 시차를 두고 서유럽 세계를 완성하는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이 생겨난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 역사가들은 북유럽의 인구 증가가 민족이동의 원인이라고 말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그 인구 증가를 낳은 원인을 또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 역시 문명의 전파라는 큰 흐름 속에서 봐야 한다. 1~2세기에 로마가 팽창하면서 로마 북부의 게르만족에게 문명의 빛이 전해졌다. 뒤이은 로마의 약화는 문명의 중심이 (적어도 서유럽에 관한 한) 이미 게르만족으로 이전되기 시작했음을 뜻하며, 결국 로마는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게르만족의 침략에 의해 멸망했다. 이렇게 해서 문명의 중심이 지중해 세계에서 북쪽으로 옮겨오자, 문명의 주변도 더욱 넓어지고 그 빛은 다시 더 북쪽으로 회절했다. 프랑크가 과거의 로마 제국과 같은 역할이었다면, 노르만족은 로마 시대의 게르만족과 같은 역할이었던 셈이다.
▲ 노르만족의 이동 500년 전 게르만족의 민족이동에 이어 노르만족의 민족이동이 이루어짐으로써 유럽 세계는 완성된다. 이때부터는 오늘날의 유럽을 충분히 그려볼 수 있다. 그림은 바이킹으로 알려진 노르만의 함선(왼쪽)과 노르만 병사들(위쪽)의 모습이다.
차이가 있다면 북유럽의 지리적 여건은 문명의 중심지 노릇을 하기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과거의 게르만족은 로마의 라틴 문명을 흡수해 더 풍부한 문명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지만, 스칸디나비아는 중부 유럽에 비해 좁은 오지였다. 그래서 노르만의 민족이동으로 북유럽은 새로운 문명의 중심지가 되는 대신 이미 형성된 서유럽 세계에 동참하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오토 1세를 괴롭힌 이민족은 북쪽의 노르만족만이 아니라 동쪽의 마자르족도 있었다. 여기서도 오토는 샤를마뉴의 업적을 재현한다. 샤를마뉴가 게르만족의 이동을 끝냈다면, 오토는 노르만족과 마자르족의 이동을 저지한 것이다. 955년 오토 1세의 강력한 수비망에 걸려 더 이상의 서진이 불가능해진 마자르는 그냥 그 지점에 눌러앉기로 했는데, 그렇게 해서 생긴 나라가 중부 유럽의 강국인 헝가리다(앞서 말했듯이 마자르는 훈족의 후예다. 그래서 오늘날 유럽에서 헝가리어는 유일한 아시아어에 속하며, 핀란드어, 바스크어와 함께 인도 유럽어 계열이 아닌 언어다).
또한 마자르족처럼 오토의 빗장 수비로 더 이상의 남하가 불가능해진 노르만족은 동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 지역은 무주공산이 아니라 예로부터 슬라브족이 살고 있던 터전이었으므로 충돌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원래 기후가 춥고 땅이 척박한 데다 문명의 수준과 인구밀도가 낮았던 슬라브족이 떼거지로 밀고 들어오는 노르만족을 당해낼 순 없었다. 별다른 싸움 한 번 없이 노르만족은 슬라브족을 남쪽으로 내쫓고 그 지역에 첫 번째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게 된다. 이것이 노브고로드 공국의 시작이다. 또한 노르만족의 일파는 여기서 다시 남하해 오늘날 모스크바의 자리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는데, 이것이 바로 키예프 공국, 러시아의 원형이다.
한편 노르만에 밀려 남쪽으로 쫓겨난 슬라브족은 중부 유럽 일대에 살고 있던 슬라브족과 살림을 합쳤다. 더 남쪽은 비잔티움의 영토이므로 더 이상 갈 데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새 터전에 몇 개의 나라를 이루고 살았다. 이 슬라브족의 나라들이 훗날 보헤미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로 발전하게 된다(불가리아도 슬라브족의 나라였으나 당시에는 비잔티움 영토 내에서 속국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인용
'역사&절기 > 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양사, 4부 줄기 - 4장 하늘 하나에 땅 여럿, 그리스도교 대 그리스도교 (0) | 2022.01.08 |
---|---|
서양사, 4부 줄기 - 3장 원시 서유럽, 영국의 탄생 (0) | 2022.01.08 |
서양사, 4부 줄기 - 3장 원시 서유럽, 환생한 샤를마뉴 (0) | 2022.01.08 |
서양사, 4부 줄기 - 3장 원시 서유럽, 원시 프랑스 (0) | 2022.01.08 |
서양사, 4부 줄기 - 3장 원시 서유럽, 중세의 원형 (0) | 2022.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