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진출의 계승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라고 했던가? 항로 개척을 통해 전 세계로 향하는 문들을 모두 열어놓은 에스파냐가 곰이라면 그것을 바탕으로 네덜란드와 영국은 세계 지배에 나서서 알짜 수익을 거두었다. 원래 일하는 자와 누리는 자가 늘 달랐던 게 인류 역사 아닌가?
아무리 ‘가문의 내력’이라지만 펠리페 2세의 통혼은 정도를 지나친 감이 있었다. 그는 포르투갈 왕녀, 영국 여왕, 프랑스 왕녀, 합스부르크 왕녀와 네 차례나 결혼을 했는데, 이것이 모두 성공했더라면 그의 대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이 다시 부활하는 것은 물론 서유럽 세계는 16세기에 왕실들의 혼맥을 통해 정치적 통합을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펠리페가 통혼의 결실을 거둔 것은 포르투갈을 상속받아 합병한 것뿐이었다. 특히 1554년에 왕비로 맞아들인 영국의 메리 1세(Mary Ⅰ, 1516~1558)는 아버지 카를 5세의 이모인 캐서린의 딸이었고, 넷째 아내인 합스부르크 왕녀 안나는 카를 5세의 외손녀였으니, 펠리페는 항렬의 위와 아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통혼했던 셈이다【왕실의 근친혼은 동서고금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우리 역사의 경우 유명한 사례로는 김유신과 김춘추가 있다. 김춘추는 젊은 시절 김유신의 누이동생과 결혼했는데, 나중에 김유신 덕분에 왕위에 오르자 그 보답으로 자기 딸을 김유신에게 시집보낸다. 두 사람은 처남-매부이자 장인-사위가 된 것이다. 또한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사촌누이를 주고 왕건은 그 대신 자기 딸을 경순왕에게 보냈는데, 이때도 처남-매부이자 장인-사위 관계가 성립된다. 유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은 조선 사회부터 왕실의 근친혼은 사라지지만, 그 때문에 왕실의 외척 세력이 힘을 얻게 되었고, 이들이 왕권을 위협하면서 사대부 정치의 폐해를 조장했다. 그 절정이 19세기 초·중반의 세도정치(勢道政治)다】.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에 설욕한 시기가 펠리페와 에스파냐의 최전성기였다. 이때 에스파냐는 대서양 항로를 독점한 것은 물론 지중해 무역에서도 패자가 되었다. 펠리페가 특별히 엄청난 공과 돈을 들여 육성한 당시의 에스파냐 함대에 영국인들이 무적함대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절정의 기쁨을 맛보기가 무섭게 에스파냐는 쇠퇴기로 접어든다. 영국은 1588년 노예무역과 약탈을 일삼던 해적 두목 출신 드레이크(Sir Francis Drake, 1543 경~1596)가 에스파냐 무적함대를 무찔러 자신들이 지은 이름을 무색케 했다(무적함대를 긴 함대는 어떤 함대라고 불러야 할까?). 이 사건을 계기로 에스파냐는 쇠퇴의 늪에 빠져들지만 실상 에스파냐의 몰락을 부른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에스파냐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전통적인 적대감으로 가톨릭이 득세한 데다 교황과 결탁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로 종교적 보수화가 극에 달했다. 따라서 서유럽 각국이 새로운 국민국가를 형성해가는 와중에도 에스파냐에서는 제대로 된 관료 집단이 성장하지 못했으며, 서유럽 과거의 봉건 왕조보다도 뒤진 국가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그나마 에스파냐를 버티게 해준 것은 신대륙에서 오는 막대한 이익이었는데, 이마저도 왕실의 사치와 방탕, 프랑스와의 지루한 다툼, 튀르크와의 전쟁 등으로 인해 바닥날 지경에 이르렀다. 국가 재정이 부실해지자 신대륙에서 오는 금과 은은 점차 에스파냐에서 사용되지 못하고 다른 나라들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플랑드르의 상인들은 에스파냐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을 이루고 네덜란드라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다. 이로써 에스파냐는 서유럽의 전진기지이자 최대의 부유한 영토를 잃고 말았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영국과 치른 전쟁이었다. 시대착오적인 국가 운영, 종교 정책, 외교 정책(통혼)을 무기로 삼은 펠리페 2세는 영국에서 자신의 아내이자 독실한 가톨릭교도인 메리 1세가 죽고 엘리자베스 1세(헨리 8세와 앤 불린의 딸)가 즉위하면서 영국 국교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자 즉각 응징을 계획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적함대의 참패였다. 이제 곰을 부리는 자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에스파냐에서 독립한 네덜란드와 무적함대를 격침시킨 영국이 바로 곰의 주인들이었다.
사실 펠리페 2세가 네덜란드를 계속 유지하려면 우선 종교 정책을 변화시켜야 했다. 에스파냐는 본국에서 가톨릭을 유지하더라도 최소한 네덜란드에서만큼은 유연성을 보여야 했다. 중세 말기에 상인들이 지배하는 자치도시체로 출발한 플랑드르적 전통에다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이 가장 큰 결실을 거둔 지역이 바로 네덜란드가 아니던가? 펠리페의 종교 탄압은 네덜란드의 상인들은 물론 전통적인 귀족들마저도 적으로 만들어버린 악수였다.
가톨릭 귀족으로 성장했고 젊은 시절 에스파냐 궁정에서 카를 5세와 펠리페 2세를 위해 일한 적이 있는 네덜란드 총독 빌렘(Willem, 1533~1584)【그의 가문은 오라녜(Oranje) 공국의 지배 가문이었으므로 그를 흔히 오라녜 공 빌렘이라고 부른다. Oranje를 영어식으로 읽으면 ‘오렌지’가 되기 때문에 영어명은 ‘오렌지 공 윌리엄’이다. 과일 오렌지(orange)와 철자가 같은데, 가문 명칭과 과일 이름이 어떤 관계인지는 확실치 않다. 오라녜 가문에 관한 기록은 12세기부터 전해지지만 과일 오렌지는 15세기 말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에서 처음 유럽에 들여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네덜란드 축구 대표팀이 오렌지색 유니폼에 ‘오렌지 군단’이라는 별명을 가진 것에서 보듯이 오렌지와 네덜란드의 각별한 관계를 보면 오라녜 가문과 과일 오렌지는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이다】은 ‘침묵공’이라는 별명답게 웬만하면 참으려 했다. 그러나 펠리페는 총애하는 측근을 총독으로 앉혔으면서도 믿지 못하고 계속 다른 측근 인사들을 네덜란드에 보내 간섭했다. 더구나 네덜란드에 온 에스파냐인들은 토착 귀족들과 자주 마찰을 빚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빌렘의 꼭지를 돌게 만든 것은 펠리페의 신교 박해였다.
1567년 펠리페는 군대를 파견해 네덜란드의 신교도들을 철저히 색출하기 시작했다. 이를 피해 신교도들이 국외로 도망가는 일이 잦아지자 마침내 빌렘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게 되었다. 국민이 국가를 버린다면 국가가 존립할 수 없지 않은가?
일단 망명자들을 따라 국외로 망명한 빌렘은 신교도들로 군대를 편성해 네덜란드 탈환 작전에 나섰다. 조국을 수복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쉬운 일은 아니었다. 원래부터 신교도가 우세한 홀란트 주는 쉽게 점령했으나 남부의 가톨릭 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어쩔 수 없이 빌렘은 신교도들의 북부 7주만을 규합해 위트레흐트 동맹을 결성했다. 그래도 국가 수립의 대세에는 지장이 없었다. 1581년 동맹은 독립을 선언하고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을 이루었다(빌렘은 1584년 가톨릭교도에게 암살되었으나 그의 후손들은 19세기에 네덜란드 왕가를 이루어 오늘날에까지 이르고 있다).
플랑드르 시절부터 모직물 공업과 해외 무역에는 일가견이 있었던 네덜란드는 독립을 이루자마자 곧바로 해외 진출에 나섰다. 때는 바야흐로 과거에 플랑드르 상인들이 지배했던 지중해 무역 정도가 아니라 에스파냐가 개척해놓은 항로를 통해 전 세계가 하나의 무역권으로 변모해가는 시대였다. 지중해 중개무역을 통해 갈고 닦은 항해술과 새로 개척된 대서양 항로가 결합되면서 네덜란드는 보잘것없는 영토의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에스파냐에 뒤이어 일약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해외 무역의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 에스파냐의 젖소 독일은 교황청의 콧소였지만 네덜란드는 에스파냐의 젖소였다. 그림은 당시의 풍자화인데, 소는 네덜란드를 뜻하며, 소를 탄 사람은 필리려 2세가 젖을 짜기 위해 네덜란드에 파견한 알바 공작이다. 오른에는 네덜란드 총독 빌령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서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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