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벌할 때, 유대인들은 그를 도와 첩자나 용병구실을 했다. 그래서 알렉산더대왕은 그 대가로 이 새로 만든 도시의 일정구역을 유대인의 거주지역으로 만들어주고 유대인들에게 유리한 생활조건을 허락하고 그들의 활동을 장려했다. 유대인들은 유리한 삶의 조건만 있으면 이동하는 데 익숙해 있다. 곧 대량의 유대인 이주가 이루어졌고, 알렉산드리아는 유대이즘과 헬레니즘이 교차ㆍ융합하는 코스모폴리스(cosmo-polis)가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에 이주하여 온 유대인들은 개방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문화수준이 높았다. 그리고 그들은 헬레니즘의 모든 것을 편견없이 흡수하였다. 알렉산드리아는 헬라화된 유대인들이 만들어간 도시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시대에는 이 세계적인 문명도시 인구의 절반 가량이 유대인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국제적인 무역을 장악했기 때문에 매우 부유했다. 예수시대에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명절이나 축제도 이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의 참여가 없이는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AD 70년 예루살렘의 함락 이후에도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커뮤니티는 건재했다. 아니, 더 많은 사람들이 다이애스포라를 찾아 알렉산드리아로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알렉산드리아는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는 유대이즘의 주요거점이 됨과 동시에 자연적으로 초기기독교운동의 대본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 초기기독교는 원래부터 유대인공동체운동으로서 출발한 것이었으며 따라서 유대인들은 그것을 유대교의 한 분파로서 인식했다. 알렉산드리아에 오래 거주한 유대인들은 히브리말을 하지 못하고 헬라말을 했다. 엘에이(L.A.)에 사는 교포들이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고 영어만 잘하는 것과도 같은 현상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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